[르포]축제의 '환호'가 '절규'로…이태원 참사 현장 12시간의 기록
"이번 역은 이태원 이태원 역입니다."
안내방송이 나오자 조용하던 지하철에서 군데군데 신이 난 목소리로 속삭이는 대화가 들렸다. "2번 출구 맞아?!"
29일 오후 4시쯤 이태원역에 도착한 지하철 6호선 열차가 들썩였다. 열차 한 량에 앉아있던 백여명 중 대다수의 목적지가 이태원이었다. 앉아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일어났고, 한 열차에서 족히 400~500명은 돼 보이는 인파가 쏟아져나왔다. 에스컬레이터 줄은 한 바퀴를 돌아 길게 서 있어서 계단을 이용하는 게 더 빨랐다. 주요 상권과 가까운 1, 2번 출구 계단은 이미 축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참사를 겪으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이태원 거리는 재즈 음악이 흘러나오며 생기가 넘쳤다. 많은 사람이 몰려서 조금 북적였지만 이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지경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신난 목소리'가 '살려달라는 비명'이 되기까지 9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오후 6시쯤 기자가 시민을 만나며 인터뷰를 진행한 사이에 이태원의 혼잡도는 눈에 띄게 올라갔다. 참사가 난 이태원동 119-7 일대를 포함하는 이태원 거리를 150m 이동하는데 7~8분가량 걸렸다. 특히 사고가 난 골목 인근에서는 '내 발로 걷기'보다는 '남의 등에 떠밀려' 이동해야 했다. 기자의 뒤에서도 "밀고 갈까?"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이태원 거리는 메인도로인 이태원로를 제외하면 폭이 4~5m 수준으로 성인 네 명 정도가 서로 방향을 교차해서 지나가면 가득 차는 정도다. 좁은 골목을 마주보며 식당과 클럽 등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다. 이날은 이태원 대목을 노린 클럽 등에서 가게 입구 가까이에 철제 펜스를 쳐서 폭이 족히 1m는 더 좁아졌다. 그렇게 좁아진 폭에 10명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우측 통행'이라는 개념은 차츰 없어졌다.
해가 지면서부터는 이태원역 1번, 2번 출구로 이동이 불가능해졌다. 역 입구 인근부터 수백명의 인파가 이태원 거리로 향했다. 이태원역 삼거리를 기준으로 전후좌우 모두 수백명의 사람들이 사고가 난 이태원 거리를 목적지로 가고 있었다.
이태원역 2번 출구에서 해밀톤호텔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 이태원 거리로 향하는 골목은 그야말로 혼비백산이었다. 오후에 들려오던 재즈 음악 대신 강렬한 힙합 음악이 귀를 때리며 정신을 빼앗았다. 좁은 골목길에 좌판을 펴두고 얼굴에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핼러윈 소품을 파는 상인들, 그리고 그 틈새에서 전도하는 종교인과 지나가는 시민이 한 데 뒤엉켰다. 100m를 걷는 데 족히 10분은 소요됐다. 사람들은 이런 상황은 아랑곳 하지 않고 핼러윈을 즐겼다. 귀를 때리는 음악에 맞춰 환호성을 지르고 움직이기 힘든 인파속에서도 몸을 흔들어 댔다.
저녁 8시쯤 이태원 거리는 더 이상 걸을 수 없는 수준이 됐다. '자칫 잘못하면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사고가 난 현장은 좁은 골목의 내리막길이었고 수천명이 운집해있었다. 그리고 위태롭게 스마트폰을 잡고 한 손을 높이 올린 시민들이 많았다. 의도치 않더라도 '툭'하고 밀린다면 그대로 도미노처럼 넘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 순간까지 이태원 거리에는 질서를 통제하는 경찰이나 구청 관계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경찰은 불법 촬영, 마약 등 범죄를 제어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저녁 8시쯤 용산경찰서 관계자들은 이태원파출소에서 브리핑을 갖고 "불법 촬영이나 성추행 예방 포스터를 가게에 붙이며 계도할 것"이라며 "밤 10시에 마약 순찰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거리의 통행 질서를 유지하는 내용과 관련해서는 "이태원 삼거리 인근에서 인도가 아닌 도로로 통행하거나 도로 가까이에서 분장하는 시민들을 교통에 방해가 안 되도록 계도하겠다"고 밝힌 내용이 전부였다. 차와 사람이 만나는 도로 인근의 통제는 이뤄졌지만 정작 사고 현장에는 통제가 이뤄지지 못했다.
브리핑 직후 기자들은 경찰,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상인회) 관계자들과 계도 활동 취재에 나섰다. 실제로 계도는 이태원역 출구 인근과 도로 일대에서 대부분 이뤄졌다. 이태원 거리 중심가로 들어가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밀집해 있었다. 사고가 난 골목의 바로 옆 골목(이태원동 119-17일대)을 잠깐 찾았으나 카메라를 본 시민들이 밀집하면서 재빨리 빠져나와야 했다.
밤이 되면서 인도와 도로의 구분이 희미해졌다. 사람들은 쏟아져 나왔고 왕복 4차선 도로의 양 끝 차선이 사실상 인도가 돼버렸다. 너무나 많은 인파에 경찰의 교통 통제도 먹혀들지 않았다. 일부 시민은 반대편으로 건너가길 기다리면서 지하철 환풍구 위에 올라서는 위험천만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경찰과 소방, 상인회가 쳐둔 환풍구 주변 안전띠와 펜스는 무의미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주취자가 본격적으로 발생했다. 일부 시민은 도로 바로 옆 인도에 돗자리를 펴두고 술을 마시기도 했다. 이른 밤임에도 술에 취해 옆의 사람의 어깨를 빌리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인도와 도로 곳곳에는 음식물을 토해낸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밤 10시쯤. 좁은 골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비명을 듣고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한 현장에 도착한 때에는 소방과 구급대원, 경찰이 구조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100~200명은 돼 보이는 이들이 한 데 수십 겹으로 깔려 "살려주세요", "너무 아파요"라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미 가장 아래쪽에 깔린 일부 시민은 의식이 없어 보였다.
곧이어 경찰이 "비키세요!" "나가세요!"라며 현장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시민이 사건 현장을 지켜보면서 일대 질서가 혼란이 빚어진 것이다. 경찰과 소방은 주변 시민들을 강력하게 제재하면서 현장의 진입로를 확보했다. 소방이 현장에 의료용 산소를 뿌리며 피해자들의 호흡을 도왔다. 경찰과 소방 인력이 총동원되어 구조에 나섰지만, 워낙 좁은 공간에 많은 피해자가 밀집되어 몸이 엉켜있어서 구조에 난항을 겪었다.
구조가 시작된 지 30분쯤 지나자 계속해서 들것이 오르내렸고 피해자들이 실려 나갔다. 사건 현장은 처참했다. 유혈이 낭자했고, 비명은 그칠 줄 몰랐다. 소방과 경찰, 그리고 현장을 지켜보던 시민이 힘을 합쳐 구조에 나섰다. 소방이 구조된 피해자를 수미터 이동시켜 눕힌 뒤 심폐소생술(CPR)을 하고 산소호흡기를 채우는 조치를 계속했다. 그러나 한꺼번에 너무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탓에 소방 당국은 우선 조금이라도 생명반응이 있는 사람들을 먼저 병원으로 이송했다. 더 이상 손쓰기 어려운 사람들은 모포를 덮어두고 이송 후순위로 밀렸다. 기자가 보는 눈앞에서 세 분이 유명을 달리했다.
이후 현장은 철저하게 통제가 이뤄졌고 소방과 경찰은 구조 및 수색작업에 온 역량을 쏟아부었다. 30일 오전 2시 15분 사고가 난 현장 앞 도로에서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의 첫 브리핑이 이뤄졌다. "오전 1시 30분 기준 사망 59명, 부상 150명" 이들은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핼러윈을 맞아 축제를 즐기던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오전 2시 40분쯤 최 서장의 두 번째 브리핑이 이어졌다. "오전 2시 40분 기준 사망 120명, 부상 100명" 불과 한 시간 만에 사망자가 50명이 늘어났다.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최 서장은 "부상자 100명 가운데 사망자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는 환자가 있으나 그게 현재 몇 명인지는 파악이 어렵다"고 답했다.
사고 소식은 SNS(사회관계망서비스)와 언론을 통해서도 급속히 퍼져나갔다. '일부 사람이 마약을 한 상태로 거리를 걷다가 엉켜 사고가 발생했다'는 루머가 인터넷을 중심으로 떠돌았다.
하지만 30일 새벽 3차 브리핑에 나선 최을천 용산경찰서 형사과장은 마약 관련한 신고나 마약을 한 것 같다는 증언들에 대해서 "확인된 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오전 04시 기준 사망 146명, 부상 150명으로 피해는 더 늘어났다. 최 서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정확한 집계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또 시간이 지나면서 사망자 수가 많이 늘었다"고 언급했다.
소방은 29일 밤부터 30일 새벽까지 3차례에 걸친 수색을 펼쳤고 현장에서 추가적인 부상자나 사망자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렇게 참혹했던 밤이 졌다.
핼러윈을 맞아 수십만 명의 시민이 축제를 즐기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가 비명과 울음이 가득한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뒤바뀌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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