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다음날 현장, 경찰통제선 너머 여전한 참사의 흔적[이태원 핼러윈 참사]
온오프라인서 번지는 애도 물결
이태원 상점들 ‘금일 휴업’ 팻말
30일 오전 9시10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앞. 참사 현장에서 한 블록 떨어진 카페 골목에도 전날의 상흔이 남아 있었다. 가로·세로 각 10㎝ 크기의 선명한 혈흔 자국이었다. 경찰통제선 너머에는 바닥에 아직 채 마르지 않은 선혈도 고여 있었다. 그 위에는 파리떼가 엉겨 붙었다. 인근에서 의류업을 하는 한 상인은 “이 골목에서도 압사자가 나와 심폐소생술을 했으나 숨졌다”고 말했다.
핼러윈 축제가 열린 이태원 거리에는 벗어 던진 마스크와 귀신 가발, 피카츄 캐릭터 가면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클럽과 식당 등지에서 열린 행사를 홍보하는 전단지도 곳곳에 흔적을 남겼다. 채 뚜껑도 따지 않은 생수와 토닉워터, 깨진 유리병 조각들도 보였다. 한 켠에는 피에 젖은 수건이 휴지통에 버려져 있었다. 수습이 끝나지 않는 참사 현장 옆으로 옷가지를 비롯해 주인을 알 수 없는 유류품이 즐비했다.
김태헌씨(26)는 사고 소식을 접한 뒤 망연자실해 귀가하지 못했다. 그는 “어젯밤 이태원 중심가에 사람 너무 많아 우사단길 쪽으로 나와 술을 마셨다”며 “주변이 소란스러워 소방차와 순찰차 출동하는 것은 봤지만 대형사고가 났다는 것은 뉴스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어젯밤 친구들과 핼러윈 축제에 있던 미국인 테일러씨(40)는 “(나처럼) 체격이 좋은 남성도 헤집고 나오기도 어려웠다”며 “사람 위에 사람이 계속 쌓이는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됐다”고 말했다.
상인들 중에 사고를 미리 예견한 사람도 있었다. 토산품을 판매하는 한 상인은 “(어제) 초등학교 4~5학년 외손자들이 핼러윈이라고 놀러 왔었데 군중에 치여 다칠까봐 빨리 집에 데려가라고 며느리한테 넘겼다”면서 “이태원에서 장사를 40년쯤 했는데 (이번 인파는 규모가) 예사롭지 않다고 느꼈다. 아이들 담임 선생님이 안부 전화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인근 편의점 직원 서모씨(60)는 “보통 야간에 숙취해소제 구매자들이 있는데 오전 1시부터 거의 (손님이) 안 와서 일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역 상인들은 이번 사고를 무겁게 받아들였다. 의류업자 윤모씨(55)는 가게 앞에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애도하는 마음으로 금일 휴점합니다’라는 글을 붙이고 퇴근했다. 그는 “(코로나 여파로) 공실률이 높았던 이태원이 활성화 되어가는 시점에 발생한 참혹한 사고”라면서 “돈이야 나중에 벌어도 되지만 이런 일이 있으면 (지역 상인 간) 마음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휴점 공고를 붙였다”고 말했다. 새벽 4시까지 구호 활동을 했다는 전금분 이태원관광특구 상인연합회 부회장은 “(참사 관련) 공문을 내려서 뜻에 동조하는 대다수 상인들이 가게를 닫았다”고 말했다.
온오프라인에서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경기 안양시에 사는 정경호씨(63)는 사고 현장을 방문해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추모의 뜻으로 사제 복장을 하고 찬송가를 틀어둔 시민도 있었다. 이태원 주민 김현옥(42)씨는 “오늘 아침 정기예배 때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를 드리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현장을 지켜보던 시민들 중 “남일 같지 않다”며 눈물을 닦는 사람도 보였다. 인근에 폐점한 신발가게 앞에는 추모객들이 꽃다발을 두고 갔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태원을 위해 기도합니다’(PRAY FOR ITAEWON)라는 영문 문구에 해시태그(#)를 달아 참사를 애도하는 글이 잇따랐다.
권정혁 기자 kjh05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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