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노마드] 마크롱의 한국계 ‘IT 브레인’ 세드리크 吳는 누구
손진석의 글로벌 노마드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85831
2019년 6월 28일 저는 파리 12구에 있는 베르시(Bercy)란 곳에 있었습니다. 동네 이름이 베르시이기도 하지만, 흔히들 ‘베르시’라고 하면 프랑스에서 재경부를 중심으로 경제부처가 있는 정부 청사를 지칭합니다. 원래 프랑스 재경부는 오랜 세월 시내 중심부 루브르에 있었다가 베르시에 새로 건물을 지어 1989년 이사갔습니다. 센강 위로 우뚝 솟아 있는 건물의 명칭은 17세기 전설적인 재상이었던 장-밥티스트 콜베르의 이름을 따서 ‘콜베르 건물’이라고 합니다.
◇마크롱의 ‘IT 브레인’이 된 한국계 2세
이날 베르시의 ‘콜베르 건물’을 찾은 이유는 한국계 2세인 세드리크 오(40·한국명 오영택) 당시 프랑스 디지털부 장관을 인터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국계 혼혈 젊은이가 베르시에서 장관으로 재직한다는 건 확률상 매우 낮은 일이죠. 조선일보는 2019년 3월 세드리크가 장관이 된 이후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 그를 인터뷰했습니다.
비서의 안내를 받아 그의 집무실에 들어서자 센강을 내려다보는 전망이 일품이었습니다. 멀리 에펠탑이 보였습니다. 반갑게 저를 맞이한 세드리크는 “이곳은 특별한 공간”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 방이 2015년 마크롱 대통령이 재경부 장관 시절 쓰던 집무실이죠. 당시 에마뉘엘 마크롱과 저를 포함해 모두 5명이 (현재 프랑스 집권당인) 앙마르슈를 창당하기로 결의했던 장소도 바로 이곳입니다.”
세드리크는 마크롱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이는 IT(정보기술), 스타트업, AI(인공지능) 등 신(新)산업 정책을 이끄는 국무위원이었습니다. 2019년부터 올해 3월까지 만 3년을 재직했습니다. 그는 마크롱의 ‘IT 브레인’이자 최측근으로 꼽힙니다.
세드리크의 집무실에서 인상적인 건 천장이 매우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세드리크의 책상 뒤로는 현대 예술의 거장으로 패션 디자이너 겸 작가인 장 샤를 드 카스텔바작의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한국 정부 청사 장관실의 답답한 사무공간과 달리 예술적인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마크롱과 집권당 창당 도원결의한 사이
세드리크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일하다 1970년대 후반 프랑스 유학을 떠난 오영석(74) 카이스트 초빙교수와 프랑스인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부 도시 리옹에서 자랐습니다. 리옹에서 최고 명문고로 꼽히는 파르크고(Lycée du Parc)를 나왔습니다. 세계적인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가 나온 학교입니다.
경영학 분야 명문 그랑제콜 HEC를 나온 세드리크는 피에르 모스코비치 전 재경부 장관의 보좌관(2010~2014)을 거쳐 프랑스 제2의 방산업체 샤프란에서 근무했습니다. 2015년 마크롱 대통령이 재경부 장관으로서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무렵부터 그를 돕기 시작합니다. 원래 마크롱 대통령과 세드리크는 둘다 사회당이었고, 처음 만난 게 2012년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대선 캠프였다고 합니다. 그랬다가 마크롱 대통령이 중도우파 성향의 앙마르슈를 창당하자 사회당에서 옮겨왔고, 노선도 마크롱과 비슷한 중도우파 실용주의를 따르게 됩니다.
세드리크는 2017년 마크롱의 대선 캠프에서 자금 총책을 맡았습니다. 디지털부 장관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2년은 엘리제궁에서 디지털 분야 대통령 보좌관을 지냈습니다. 마크롱 대통령이 집권 초기 발표한 ‘AI 최강국 정책’도 세드리크의 작품입니다. 이 정도면 마크롱의 복심이라고 할 수 있죠.
세드리크는 디지털부 장관으로 임명됐을 때 “자부심을 느끼고 있고 대통령과 총리가 신임을 보여줘 고맙게 생각한다. 프랑스를 디지털화하는 일을 내일부터 시작한다”고 트위터에 썼습니다. 디지털부 장관을 하면서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립자,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를 비롯한 세계 IT 업계 거물들과 연락을 주고받거나 이들을 마크롱 대통령에게 소개해주는 사이가 됐습니다.
프랑스 정부의 한국계 장관은 전례가 있지만 모두 입양아 출신이었습니다. 플뢰르 펠르랭(49·한국명 김종숙) 코렐리아캐피털 대표가 올랑드 대통령 시절 중소기업·디지털경제부 장관과 문화부 장관에 임명됐습니다. 장 뱅상 플라세(54·한국명 권오복)씨도 올랑드 정부 시절 국가개혁 담당 장관을 지냈습니다.
◇집무실에 있는 마크롱의 친필 메시지
세드리크가 집무실 내부를 소개해줬습니다. 한켠에는 마크롱 대통령이 자필로 쓴 메모가 들어 있는 사진 액자가 있었습니다. 사진은 두 사람을 포함한 엘리제궁 회의 장면을 찍은 것이었구요. 마크롱 대통령의 자필 메모는 “처음부터 내 곁에 있어줬고, 앞으로도 계속 나와 함께할 세드리크, 고맙다”라고 돼 있었습니다. 마크롱이 정치 행보를 할 때 초기부터 함께 한 핵심적인 몇 명 중 하나라는 이야기죠. 매우 가까운 사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17년 5월 마크롱 대통령 취임식 때도 세드리크 가족은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사진도 찍었습니다. 세드리크는 대통령 디지털 보좌관 시절 지금은 6살이 된 아들 갸롱스(한국명 오성식)를 휴일 근무 때 엘리제궁의 집무실에 데리고 가서 마크롱 대통령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세드리크에게 ‘마크롱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많은 정치인들을 만났지만 그런 사람이 없습니다.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죠. 문학, 미술 같은 분야까지 믿을 수 없을 만큼 모르는 게 없어요. 마크롱 대통령의 젊은 나이에 주목하지만 그건 한국식 사고 방식이죠. 어떤 성과를 내느냐가 중요합니다.”
세드리크는 “대통령과 바로 바로 궁금할 때 서로 연락을 취해 물어볼 수 있는 사이이고 우리 둘 사이에는 신뢰와 존경이 있다”며 “그게 나를 일에 있어서 열정적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라고 했습니다. 세드리크에게 ‘어떻게 마크롱 대통령과 가까워질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마크롱은) 말수가 적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좋아하는데, 근면하고 성실한 나의 한국인으로서의 특성이 강점을 발휘한다”고 했습니다. 세드리크는 일요일 오후에 출근해 한 주를 시작한다고 했습니다. 엘리제궁 보좌관 시절에는 매일 새벽 1시까지, 장관이 되어서도 매일 저녁 9시까지 일하고 퇴근했습니다.
프랑스는 주 35시간 근무제를 택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평범한 월급쟁이한테 해당하는 이야기고, 그랑제콜 출신의 엘리트 계층은 밤낮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드리크는 일단 묵묵히 일을 열심히 한다는 점에서 마크롱 대통령으로부터 점수를 땄습니다. 세드리크는 저에게 “프랑스를 IT 강국, 디지털 강국으로 만들고 싶은 원대한 포부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프랑스에서 인터넷을 전혀 안 쓰는 인구가 1300만명이나 된다. 그들이 인터넷을 쓰게 만들겠다”고 했습니다. 그외에도 스타트업과 관련해 창업과 연계된 숫자도 줄줄 꿰고 있었습니다.
◇이순신·계백 장군의 이야기 듣고 자란 혼혈 소년
세드리크는 원래 군인이 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외증조부가 샤를 드골 장군과 프랑스 육군사관학교 동기라고 합니다. 어릴 적에 갖가지 병기를 꿰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18살 때 시력이 군인이 되기에는 너무 나빴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합니다. 그래서 진로를 틀어 돈을 버는 쪽으로 진로를 택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상경계 상위 5개 그랑제콜에 모두 응시해 그중 가장 명문으로 인정받는 HEC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그가 방산업체인 샤프란에서 직장 생활을 했던 것도 군대에 대한 관심이 작용했습니다.
세드리크의 집무실에서는 한국어와 프랑스어로 된 책이 한권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참전 유엔군 프랑스대대 전적’이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6·25전쟁 당시 파병된 프랑스군의 활약상을 정리한 책이었습니다. 한국과 군대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세드리크는 씩 웃더니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이순신 장군하고 계백 장군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자랐다. 신라의 화랑 관창의 이야기도 안다”고 했습니다.
세드리크는 어린 시절 혼혈 소년으로서 정체성 고민을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오영석 박사의 말을 들어보면 어릴 적 세드리크가 학교에 안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합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이 “중국 사람 같다’고 놀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오 박사는 어린 아들한테 “네가 다른 아이들보다 나은 것 아니냐. 넌 프랑스 사람도 되고 한국 사람도 되는 거다”라고 달랬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오 박사는 세드리크가 공부를 게을리하면 엄하게 혼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세드리크는 저와 인터뷰할 때 “아버지가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며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시면서 한국식으로 교육을 시키셨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런 이야기도 했습니다. “제가 다른 아이들과 생김새가 달랐죠. 하지만 그런 고민이 저를 내면이 강인한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모두 극복해냈고 보시다시피 (장관이라는) 큰 기회도 얻었습니다. 저는 정말 한국 아이처럼 강하게 컸습니다. 근면함, 충성심, 자신에 대한 강한 단련 같은 가치가 내재돼 있습니다. 요즘엔 한국을 모르는 프랑스인이 없다는 것도 제 마음을 편하게 해줍니다.”
세드리크는 한국에 자주 옵니다. 2019년 10월 한국을 찾았을 때 세드리크는 강화도에 있는 전망대를 방문해 아버지 오 박사로부터 대대로 황해도 벽성군에서 살아온 조상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한국 문화 좋아하는 프랑스 여성
축구광인 세드리크는 한국 축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인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 예선 3경기 중 2경기를 직접 경기장에서 관람했다고 했습니다.
세드리크는 아내 베랑제르(37)와 처음 만난 곳이 서울입니다. 베랑제르는 HEC 후배이고 프랑스인이지만 서울에서 처음 알게 봤다고 합니다. 세드리크가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던 2007년 연세대 교환학생이던 베랑제르를 만났다는 겁니다. 베랑제르가 한국에 원래부터 관심이 많았던 거죠. 세드리크는 아내에 대해 “나보다 한국을 더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세드리크는 “아내는 보통의 한국 사람보다 매운 한국 음식을 더 잘 먹는다”며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닭갈비”라고 했다. 베랑제르는 프랑스 대형 외식업체 빅마마그룹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파리 13구의 대형 식당 ‘라 펠리시타’를 비롯해 빅마마그룹 산하의 여러 식당의 총괄 지배인을 맡고 있습니다. 세드리크와 베랑제르는 첫째 갸롱스에 이어 둘째 티모테(3)까지 두 아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세드리크는 서울에 살며 파리를 자주 오가는 아버지 오 박사, 아내 베랑제르, 여동생 델핀(37·한국명 오수련)과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서 대화를 합니다. 델핀은 2017년부터 2년간 프랑스 하원 의원을 지냈고, 2019년 유엔여성포럼 사무총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유엔여성포럼 사무총장은 대사 직급의 외교관 신분이 주어지는데, 이때 나이가 34세라는 점에서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 정·관계에서 이들 한국계 남매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요즘은 유엔 세대평등포럼 사무총장으로 활동중입니다.
세드리크·델핀 남매의 아버지 오 박사는 “남매가 어릴 적 한국 명절마다 한복을 입혀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가르쳤다”고 했습니다.
델핀은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문학, 소르본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습니다.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에서 중동지정학으로 석사 학위를 땄습니다. 델핀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어 2007~2008년에 주한 프랑스 대사관 인턴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어 실력은 델핀이 세드리크보다는 좀 더 낫다고 합니다.
델핀은 여성 인권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1999년 프랑스 정부가 도입한 시민연대계약(PACS)을 통해 프랑스 남성과 함께 살면서 최근 딸을 낳았습니다. PACS는 동거를 하더라도 법률상 결혼한 부부와 거의 동등한 권리를 갖게 만든 제도입니다.
◇코로나 때 감염자 추적 앱 보급에 힘써
디지털부 장관으로서 세드리크는 프랑스의 IT 산업 발전에 기여하면서 동시에 코로나 사태에 대항해서도 활약했습니다. 그는 2020년 5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추적용 앱인 ‘스톱코비드(Stopcovid)’를 보급하려고 애썼습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에 유독 민감한 프랑스에서 스톱코비드를 많은 이들이 설치하게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의회에 나가서 “스톱코비드는 평화로울 때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전례 없는 위기를 맞아 바이러스가 다시 퍼지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걸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며 열변을 토했습니다.
스톱코비드가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불붙었지만 세드리크는 주무 장관으로서 스톱코비드 개발을 독려하고 의회와 국민 설득에도 앞장섰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스톱코비드 사용이 의회에서 통과됐고, 프랑스 언론은 스톱코비드를 추진한 주역으로서 세드리크를 집중 조명했습니다.
세드리크는 마크롱 대통령과 비슷하게 원래 사회당에서 출발했다가 중도 우파로 노선을 다소 수정했습니다. 정치와 연관된 활동을 처음 했던 게 24살 시절인 2006년 사회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도미니크 스트로스-칸(후일 IMF 총재가 됐다가 호텔에서 성폭행을 저질러 사퇴한 인물이죠) 캠프였습니다. 세드리크에게 제가 이념 노선을 물어보니 “(분배를 중시하는) 좌파적인 가치도 중요하지만 현실에 맞는 정책을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부를 제대로 분배하려면 경제적으로 더 튼튼한 나라를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철학이 마크롱 대통령과 내가 같은 부분”이라고 했습니다.
세드리크는 2020년 말 프랑스에서 아마존 거부 운동이 벌어졌을 때 디지털부 장관으로서 이런 운동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시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코로나 방역을 위한 영업 금지령으로 서점이 모두 문을 닫은 가운데 아마존을 통한 책 배송이 활발해지자 동네 서점을 살리기 위해 아마존을 보이콧하자는 운동이 벌어졌습니다.
안 이달고 파리 시장은 “아마존에서 물건을 사지 말아달라”며 “아마존은 지역 경제의 죽음, 서점의 죽음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유럽에는 미국 IT 공룡 기업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있는 편인데, 그중에서도 프랑스가 유독 심한 편입니다. 당시 세드리크는 아마존 거부 운동에 대해 “프랑스식 강박관념이며 상식적이지 않다”고 비판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미국 기업에 대한 지나친 피해 의식이며, 아마존에 타격을 가했다가 프랑스 전자 상거래 기업들도 피해를 입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취지였죠.
◇민간으로 돌아와 유럽우주기구(ESA) 자문관으로 변신
제가 세드리크를 인터뷰했을 때 ‘장관직을 마치면 무슨 일을 할 예정인가’를 물었습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나는 정치인이 아니다. (장관직을 마치면) 민간으로 다시 돌아가서 일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올해 4월 치러진 대선을 앞두고 3월 장관직을 마친 세드리크는 그보다 전에 마크롱 대통령에게 “대선이 시작되기 이전에 민간으로 돌아가겠다”고 알렸다는 게 프랑스 언론들의 보도입니다.
아버지 오 박사에 따르면, 세드리크는 요즘 파리에서 테크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를 설립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또한 마크롱 대통령이나 그의 측근 그룹과도 자주 만나며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고 하네요. 특히 세드리크는 알렉시 쾰러 대통령 비서실장과 매우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세드리크는 최근 유럽우주기구(ESA)의 자문관이 됐습니다. ESA는 파리에 본부가 있는 기구로서 유럽 각국이 공동으로 설립한 우주개발기구입니다. 그의 관심이 우주 산업으로도 확장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드리크는 최근 프랑스의 대표 뉴스채널 BFM에 출연해 ESA와 우주 정책 및 산업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세드리크는 아직 젊습니다. 잠재력이 상당한 젊은이라는 점에서 나중에 어떤 일을 하게 될 지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손진석의 글로벌 노마드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185831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尹, 예산 시정연설도 불참하나...정진석 “현재로선 총리가 할 듯”
- 中, 8일부터 한국인 관광객에 최대 15일 무비자 입국 허용
- 대전 다가구 주택서 화재…1명 숨지는 등 인명 피해
- 천하람 “이러니 지지율 19%” 정진석 “그 당 지지율이나 신경쓰라”
- 미국 10월 신규 일자리 1만2000개 그쳐... 허리케인이 노동시장 강타
- 라브로프 러 장관, 우크라 전쟁 이후 첫 EU 방문
- “부친 산소에 휴대폰 묻었다”던 명태균…검찰엔 “부친 화장했다”
- 울산HD, '홍명보 논란' 딛고 K리그1 3연패 달성
- “전기차 선두는 오직 테슬라?...중국이 판 뒤집을 가능성 커”
- 한동훈, 명태균 녹취에 침묵... 친한계 “뭘 알아야 대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