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이태원 참사=인재'…233명 사상 대형참사로 이어진 3가지 이유
"경찰인력, 광화문·용산 시위에 배치…책임소재 가려야"
(서울=뉴스1) 이비슬 박재하 구진욱 기자 = 233명의 사상자가 한꺼번에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좁고 가파른 지형, 안전 불감증, 미흡한 사전 대응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인재라는 평가가 나온다. 3년 만에 열리는 노마스크 축제에 폭 4m가량의 좁은 골목으로 수만명이 뒤섞이면서 통제 불능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는 뜻밖에 벌어진 재난이 아닌 충분히 예방 가능한 '인재'였다고 지적했다.
◇폭 4m 경사로 오도가도 못해…비극으로 끝난 축제
30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재난 전문가들은 △좁고 가파른 지형 △안전불감증 △미흡한 사전 대응을 이번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손원배 초당대 소방행정학과 교수는 "이번 사고는 안전의식이 결여된 시민과 행정기관의 예방 체계가 무너진 총체적인 인재"라고 평가했다.
손 교수는 "일정 면적에 통제되지 않은 다수의 인파가 집결하면서 도미노처럼 넘어져 다수의 인명사고가 발생했다"며 "좌우로 대피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피해가 급격히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일대는 술집과 클럽이 좁고 경사진 골목을 따라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코로나19 확산 전에도 주말이면 역 인근에 몰린 인파와 차들로 좁은 도로가 상습 정체를 빚기도 했다.
뉴스1이 취재한 사고 목격자들도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사람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며 깔렸다"고 증언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고가 발생한 내리막은 폭이 4m 내외로 5~6명이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수준이었다.
조성일 르네방재정책연구원장(전 서울시설공단 이사장)은 "2005년 발생한 상주시민운동장 압사 사고 당시에도 진입로가 경사져 있어 2명이 숨지고 죽고 70여 명이 다쳤다"며 "비슷한 사고들을 참고해 미리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던 점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 원장은 이어 "사고가 발생한 이태원도 좁고 경사진 골목길이라는 특성을 알고 있다"며 "경찰 병력을 충분히 배치했더라도 좁은 골목길 위주로 배치하지 않았다면 사실상 의미가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심리가 한 번에 분출되면서 확산한 안전불감증 또한 이번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전날(29일) 밤 이태원에는 3년 만에 첫 '야외 노마스크' 핼러윈을 맞아 10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렸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축제를 즐기기 위해 참석한 젊은 사람들도 이렇게 많은 인원이 올 것이라는 예상은 못 했을 것"이라며 "예상했다 하더라도 경찰의 통제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퀴어축제도 사전에 당부했지만 모여서 코로나19가 확산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방재당국 총력 대응에도 '비극'…"책임은 누가"
방재 기관별로 내놓은 안전 대책이 유효했는지 여부도 따져볼 문제다. 손원배 교수는 "시·구청·소방·경찰 간의 행정 협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이번 참사는 유족이나 부상자들이 어디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해야 하는지조차 불명확하다"고 설명했다.
용산구는 오는 31일까지를 '핼러윈 긴급대책 추진 기간'으로 설정하고 이태원 일대 방역·소독, 식품접객업소 지도점검, 주요 시설물 안전점검, 소음 특별점검, 불법 주·정차 단속, 청소대책 등을 추진했다.
용산경찰서도 이번 핼러윈 축제에 인파 약 10만명이 몰릴 것을 대비해 사고 이틀 전 '이태원 종합치안대책'을 발표했다. 31일까지 범죄 취약 장소에 경찰력 200명 이상을 배치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태원 인접 지구대, 파출소 야간 순찰팀 인력도 평소 대비 1.5배로 증원했지만, 참사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얼마나 많은 병력이 투입되었는지보다 과연 200명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었느냐가 중요하다"며 "질서유지, 돌발상황 대처, 감시·감독, 범죄예방과 같이 현장에서 대응한 직무가 과연 적절했는지, 얼마나 안전하게 배치했는지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29일에는 광화문에서 수만 명이 운집한 시위가 벌어져 경찰, 경비 병력이 대거 투입됐다. 당일 이태원에는 과거 인파 규모를 토대로 평소와 비슷한 수준의 병력이 배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안일하게 대처했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지만 이같은 사고를 예측하고 인원을 분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위원은 "행사에는 주관자가 있어 안전조치가 가능한데 각종 기념일 모임의 경우 이런한 조치가 전무하다"며 "1차적 질서 유지는 경찰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확산세가 줄어들면서 지역 축제 등에서 비슷한 참사가 재발할 위험이 높다며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성일 원장은 "이동 동선을 지정하거나 혼선을 사전에 방지했다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대규모 압사 사고가 발생하면 시설물이나 난간이 무너지거나 화재, 폭발 문제가 연쇄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향후 종합적인 재발 방지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승 연구위원은 "시민모임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진출입 유도 등 질서 유지를 위한 조치가 향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 지자체, 관계 수사기관은 참사 원인을 신속,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알려야한다"고 강조했다.
b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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