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심한 현금 결제 유도에 게임 접었습니다”

장영준 2022. 10. 30.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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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 “현금 결제 없이 게임을 할 방법이 있는지 모르겠다”

“현금 결제 없이 게임을 할 방법을 물어보면 진짜 뭐라고 대답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 게임을 해보지 않은 분에게 ‘몇만 원 먼저 결제하고 게임을 해라’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설마 게임 운영자들이 이런 걸 원하는 건가”

-모 게임 유튜버의 방송 중 발언 재구성-

게임 강국이라는 위상과는 별개로 국내 게임팬들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돈을 들여야 한다”는 차원의 비즈니스 모델, ‘P2W’(Pay To Win)에 따라 게임사사들이 현금 결제를 계속 유도하고 있고, 결국 게임에 들어가는 돈을 감당하지 못하는 유저들이 게임을 아예 접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다수의 게임사가 게임 내 승패를 결정하거나, 캐릭터를 육성하는 과정에 P2W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갑작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점점 더 과도해지고 있다는 겁니다. P2W를 이용해야만 게임 플레이가 원활하고, 결제 가격 또한 계속 높아집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 ‘캐릭터 치장 → 능력치 상승 → 기본 세팅 아이템’…현금 결제 성장기

게임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게 제공하는 게임사의 경우, 유저에게 ‘캐시 아이템’(현금 결제용 아이템 - 카드 결제도 가능하지만 통상 ‘현금 결제용’이라 부름)을 팔아 수익 구조를 확보합니다. 그러나 과거에는 승패 자체에 영향을 주는 아이템들을 현금 결제로 팔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엔 승패에 직접 영향을 주는 아이템을 판매하며 일부 유저들의 불평을 낳고 있습니다.

과거 게임사가 내놓았던 현금 결제 아이템을 보면, 주로 캐릭터 치장용이 많았습니다. 캐릭터에 다른 유저와 차별화된 옷을 입히거나 염색시키는 등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정도였는데요. 이런 치장용 아이템으로 돈을 벌게 된 게임사들은 점점 현금 결제 아이템의 폭을 넓혔습니다. 치장을 넘어 게임 플레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아이템을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게임 유저가 특정 캐릭터를 선택해 육성하는 ‘RPG’(Role-Playing Game)에는 캐릭터가 착용하는 옷이나 무기에 유용한 능력치를 더해주는 등 승리에 도움을 주는 캐시 아이템이 출시됐습니다. 축구나 야구팀 등을 운영하는 스포츠 게임은 선수의 달리기 속도, 장타 확률이나 구속을 높이는 캐시 아이템을 내놨습니다. 이외에도 게임사들은 롤플레잉, 액션, 아케이드, 전략 등 장르를 불문하고 P2W 방식을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P2W 형식을 기반으로 한, 이른바 ‘기본 세팅 아이템’이 등장했습니다. 기본 세팅 아이템은 게임 내에서 갖춰야 할 필수 아이템들을 지칭합니다. 만약 이 아이템들을 착용하지 않으면, 플레이 자체에 난항을 겪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가격인데, 모 유튜버는 인기리에 서비스 중인 한 RPG의 경우 기본 세팅 아이템을 맞추는 데 3천만 원 이상 든다고 밝혔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온라인 커뮤니티 갈무리)


■ “필수 퀘스트 같은 현금 결제, 안 하면 무시당해요”

이러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돈을 들이지 않고 게임 캐릭터를 키우는, 일명 ‘무자본 육성’에 대한 방법을 묻고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팬들은 ‘무자본 육성’이 실질적으로 어렵다고 합니다. 평소 RPG를 즐긴다는 선우 모 씨는 “인기 게임일수록 진입 장벽이 높아 P2W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 하는 게임에서 일명 ‘교복템’이라는 꼭 필요한 아이템이 있다. 이게 없으면 플레이 자체에 제약이 생긴다. 파티에서 제외되거나, 유저들 사이에 무시당한다. 현질(현금 결제)이 필수 퀘스트(온라인 게임에서 유저가 수행해야 하는 임무) 같다”고 밝혔습니다.

장르가 다른 스포츠 게임 유저 김 모 씨도 같은 생각입니다. 현재까지 게임에 700만 원가량을 들였다는 그는 “현금 결제를 안 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게임 내에서 확실히 차이가 난다”면서 “상대와 경기해서 이기려면 더 많은 돈을 들인 팀이 유리하다. 현금 결제를 안 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한 사람은 없을 거다”라고 현금 결제의 중독성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실제 유명 스포츠 게임이 내놓은 고가의 캐시 아이템은 9만 9천 원에 달합니다. 하지만 원하는 캐릭터를 선택해 구매할 수 없습니다. 할당된 확률에 따라 임의의 캐릭터나 게임 내 재화 등을 제공하는 ‘확률형 캐시 아이템(Loot Box, 무작위 뽑기 상자)’이기 때문입니다. 운에 따라 이 아이템으로부터 얻는 캐릭터나 재화의 가치 차이가 큰데, 일부 유명 인터넷 방송인은 수백만 원어치의 확률형 캐시 아이템을 구입해 소위 대박을 노리는 콘텐츠를 제작하기도 합니다.

이에 일부 유저들은 과도한 현금 결제 유도이며 사행성을 띤다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지적은 스포츠 게임에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유명 모 RPG, 아케이드 등 다양한 장르의 게임이 유저들 사이에 비판의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 사진 출처=게티이미지뱅크)


■ 현금 결제에 등 돌린 유저들, 게임개발자 “P2W 벗어나야”

주머니 사정을 고려할 수밖에 없게 된 게임 시장에 일부 유저는 등을 돌리기도 합니다.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2019년 42.1%에 달했던 PC 게임 이용률이 2022년 40.3%까지 내려갔습니다. 모바일 게임 시장 역시 상황이 비슷합니다. 데이터 조사 업체 아이지에이웍스가 지난 6월 내놓은 ‘모바일 앱 게임 시장 분석’ 리포트를 보면, 국내 모바일 게임 이용자는 2021년 6월(약 2,562만 명) 대비 2022년 5월(약 2,292만 명) 약 270만 명 감소했습니다.

현금 결제 유도에 지친 일부 유저가 향한 곳은 라이브 스트리밍 플랫폼입니다. 돈을 쓰며 게임을 하느니, 무료로 게임을 보며 즐기겠다는 것입니다. 얼마 전 RPG 게임을 삭제했다는 김 모 씨는 “현금 결제를 안 하면 더 이상 세질 수 없는 벽이 존재하더라”라며 게임 방송을 시청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습니다.

또 다른 게임팬 김 모 씨는 “과거 하던 게임은 1년에도 몇 번씩 캐시 아이템을 내놓으며 대놓고 현금 결제를 유도했다”면서 “어느 순간 너무 심하다는 생각에 게임을 접었고, 지금은 유명 유튜버 방송을 보면서 대리만족하고 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이와 관련해 게임개발자 조 모 씨는 유저들의 P2W 비판에 동조하며, 업계가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지금 서비스 중인 게임들은 P2W로 이뤄진 게 많다. 이걸 유저들도 인지하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돈으로 편하게 승리를 맛볼 수 있고, 이 과정에서 경쟁심리가 작용한다. 이걸 게임사가 이용해 계속 결제를 유도한다. 결국 게임업계 배만 부르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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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준 기자 (yj@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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