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김혜수가 대배우인가를 스스로 입증하는 시간('슈룹')
[엔터미디어=정덕현] 그토록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든 살려내려 애썼던 세자(배인혁)는 결국 사망했다. 중전 화령(김혜수)이 세자를 향해 달려가는 그 절절한 장면은 시청자들의 마음 또한 절절하게 만들었다. 죽기 전 중전에게 들어야할 대답이 있다고 했던 세자. 그 말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화령은 세자가 죽기 전에 그 대답이라도 해주기 위해 달리고 또 달린다.
"어마마마. 약속해 주십시오. 무너지지 않겠다고. 그래야 제가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람이 되어서라도 곁에 머물겠습니다. 그러니 원손과 아우들을 지켜 주십시오." 이미 자신이 죽을 거라는 걸 직감한 세자가 그렇게 말했을 때, 화령의 마음은 무너졌다. 눈물이 솟아오르지만 애써 입을 막고 감정을 억누른 채 세자에게 단호한 어조로 세자가 원하는 약속을 거부했다. "난 그딴 약속 못 해. 빨리 털고 일어날 생각이나 하거라."
하지만 결국 죽음 앞에 놓인 세자를 향해 달려가는 화령의 마음은 가는 길이라도 편하게 보내주려는 마음뿐이었다. '조금만 버텨 주거라. 조금만. 엄마 대답 듣고 가야지.' 이미 세상을 떠난 세자 앞에서 화령은 완전히 붕괴됐다. 무너지지 않겠다 약속해달라 했지만 죽은 아들 앞에서는 철저히 무너졌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화령은 아들을 향해 기어가 그 약속을 해준다. "아가... 약속.. 하겠다. 걱정되어 헤매지 말고 편히 가거라."
tvN 토일드라마 <슈룹>의 이 장면은 왜 김혜수라는 배우가 대단한가를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드라마가 결국은 그 인물들을 통해 시청자들이 그 세계를 경험하게 하는 것이고, 배우는 배역을 통해 그 경험을 실감나게 시청자들에게 전이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김혜수가 <슈룹>에서 보여주는 연기는 가장 최적화된 것이 아닐까. 그의 자유자재로 펼쳐지는 연기를 통해 시청자들은 말 그대로 화령이라는 인물이 갖는 희노애락의 감정을 느끼고 있으니 말이다.
첫 회에 대비(김해숙)의 위협 속에서 자신과 자식들의 위험을 직감한 화령이 폐비 윤황후(서이숙)를 찾아가 빗속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에서 그 절절함이 전해졌다면, 2회에서 배동 시험 준비를 위해 자식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각자의 학문에 대한 관심사를 묻는 장면에서는 분할화면과 마치 SNS를 보는 듯한 연출 속에서 한껏 웃음이 묻어나는 상황을 보여준 김혜수였다. 성남대군(문상민)이 구해온 처방으로 가까스로 세자가 일어났을 때 한없이 행복해하던 그 감정은 금세 세자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자 안타까움으로 바뀌었고, 그 죄를 물어 중궁전에 갇히게 된 화령의 답답함 또한 고스란히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폐세자를 주청하는 신하들 앞에 화령이 나서 무시무시한 분노로 그들에게 불호령을 내리는 장면에서는 통쾌함마저 느껴졌다. "폐하긴 뭘 폐해! 지금 우리 세자가 죽기라도 바라는 것입니까?" 신하들 앞에 나선 화령은 대감 하나하나를 지목해 폐세자 요구의 부당함을 반박했다. "명분은 종묘와 사직이라고 하면서 지금 하는 짓거리를 보면 임금을 압박하여 얻고자 하는 것을 강탈하려는 도적떼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아픈 세자를 일으켜 세우는 것 그것이 종묘사직을 지키는 것이옵니다." 화령의 분노는 신하들의 행태에 대해 "이리 개떼처럼 몰려와 이 지랄을 하는 것은!"이라고 할 정도로 극에 달했다. 김혜수의 강렬한 눈빛과 거침없는 외침은 그래서 이 중전이 가진 감정의 결을 고스란히 느껴지게 해줬다.
중요한 건 이처럼 희로애락의 다양한 감정을 전하는 것에 있어서 그것이 널뛰지 않고 자연스럽게 여겨져야 한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서 김혜수의 독보적인 진가가 드러난다. 5회 단 한 편 속에서도 그가 느끼는 안타까움과 분노와 두려움 그리고 절통함 등의 감정들이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슈룹>이라는 작품에서 그가 가진 절대적인 존재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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