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채 안팔리는 금융사 “자금 마련 위해 팔 수 있는 건 다 판다”
올해 수요예측을 진행한 회사채 중 10건 중 1.5건은 목표 금액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요예측에서 미달이 발생한 회사채의 상당수는 이번 달에 발행된 것들이었는 데 이중에는 금융채도 포함돼 있다.
금융채로 자금마련이 어려워진 일부 중소형 증권사들은 자산 매각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부동산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증권(ABCP, ABSTB) 지급보증이 많은 증권사는 이미 유동성 압박이 시작됐다는 얘기도 들린다.
30일 금융정보업체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올초부터 이달 27일까지 발행된 회사채 264건 중 40건(15.15%)은 수요예측 경쟁률이 1 미만이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수요예측 경쟁률이 1 미만이라는 뜻은 회사채 발행 기업이 목표한 금액을 채울 만큼의 주문이 들어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특히, 올들어 수요예측에서 미달이 발생한 40건 가운데 14건(35.00%)은 이번 달에 발행된 물량이었다. 이 중에는 신용등급 상대적으로 높은 JB금융지주(AA+)와 메리츠금융지주(AA) 등 금융사 채권도 포함돼 있다.
회사채 시장은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등 세계 주요국 중앙은행이 올해 들어 기준금리를 빠르게 인상한 것에 더해 강원도의 레고랜드 사태가 겹치면서 경색됐다. 적자 늪에 빠진 한국전력이 한전채를 대거 발행하면서 채권시장의 자금이 한전채로 쏠린 것도 회사채 시장 냉각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한전은 올해 들어서만 23조원이 넘는 한전채를 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2년전(3조원)과 비교해보면 물량이 7배나 늘어났다. 한국전력공사(AAA)는 지난 28일에도 2년물 2900억원, 3년물 12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추가 발행했는데, 금리가 각각 5.90%, 5.99%로 6%에 육박했다. 우량채로 꼽히는 한전채의 금리가 급등하면서 한전채는 시중자금의 ‘블랙홀’이 됐다.
정부가 50조원+α 규모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발표한 이후에도 채권시장 자금 경색은 쉽게 풀리지 않고 있다. 지난 28일 서울 채권시장에서 91일물 기업어음(CP) 금리는 4bp 오른 연 4.58%로 연고점을 기록했다. 특히 일부 중소형 증권사는 연 8~9%의 금리로 CP를 발행해도 팔리지 않아 자금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문에 상장지수펀드(ETF) 등 보유자산을 매각하며 현금 확보에 나서는 등 사실상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유동성이 부족한 증권사는 CP나 전자단기사채로 자금을 돌려야 하지만 거래가 부진해 금리를 두 배로 올려도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다”며 “시장에 부동산 자산을 싸게 내놔도 팔리지 않아 돈이 될 만한 자산은 다 갖다 팔고 있다”고 말했다.
증권사들은 당장 유동성 부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향후 부실이 확대될 때를 우려해 현금을 무조건 많이 쌓아놓자는 분위기로 알려졌다. 부실이 현실화될 경우 자금확보는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소형 증권사 중에서 내년 1분기 말께 도산이나 회생절차를 밟는 곳들이 생길 수 있다”며 “부동산시장이 더 위축되면 건설·증권사뿐 아니라 캐피탈사 등 제2 금융기관 순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채영 기자 c0c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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