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독재국가들의 이상향 싱가포르는 3대 세습이 가능할까?

김원장 2022. 10. 30.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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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작은아씨들'에서 진화영이 떠난 싱가포르. 칠리 크랩과 2020년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난 센토사섬, 그리고 쌍용건설이 건설한 마리나샌즈베이가 있는 나라. 제주도 면적의 절반 정도 되는 크기에, 중국같기도 하고 동남아 같기도 한 이 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72,000달러(2021년 기준)다. 한국이나 일본 국민소득의 2배, 미국이나 덴마크보다도 잘 사는 이 도시국가는 그런데 사실상 독재국가다. 심지어 정권을 세습한다.


1. 리콴유에서 리셴룽까지 49년째 집권

국부로 불리는 '리콴유'총리는 1959년부터 1990년까지 31년간 집권했다. 큰아들 '리셴룽'은 34살에 통상산업부 장관대행에 오르며 총리 수업을 시작했다. 리셴룽이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등 총리 수업을 마칠 때까지 고촉통 총리가 대타 총리직(?)을 수행했고, 지난 2004년 총리직에 오른 그는 지금까지 18년째 집권 중이다(이들 부자의 집권 기간을 합치면 49년으로, 아직 조선 영조의 51년에는 못 미친다. 푸틴 대통령은 18년째, 시진핑 주석은 현재 10년째 집권 중이다).

선거제도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집권 여당인 인민행동당(PAP)이 워낙 강력하고(1965년 이후 총선에서 단 한 번도 진 적이 없는데 내각제라서 결국 여당에서 총리를 낙점한다), 눈부신 경제성장에 힘입어 국민들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지난 총선에서도 인민행동당은 93석 중에 83석을 챙겼는데 여당 패배로 인식될 만큼 의석을 독점해왔다.

2. 3대 세습은 '일단 정지'

리셴룽의 집권 20년이 다가오면서 다시 후계구도가 불거졌다. 자연스럽게 그의 아들인 35살 '리홍이'의 3대 세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견제구는 정작 동생에게서 날아왔다. 동생 리셴양이 형 리셴룽 총리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아버지 리콴유가 지향했던 가치는 어디로 갔는가"

리셴양은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 싱가포르에서 자신마저 형의 권력 기반에 두려움을 느낀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자연스럽게 그의 똑똑한 아들 '리셴우(하버드대 교수)' 가 리홍이의 라이벌로 떠올랐다. 리셴우는 할아버지 리콴유의 장례식 때 인상 깊은 조문사로 국민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그는 보란 듯이 큰아버지(리셴룽)의 권위주의 정부를 비판했다. 리셴우는 2017년 페이스북에 "싱가포르 정부는 소송으로 국민들을 다스리고, 말 잘 듣는 법원을 갖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원은 그에게 '법원모독죄'로 15,000싱가포르 달러(우리 돈 약 1,5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며 '말 잘 듣는 법원'이라는 그의 말을 증명해 줬다.

리셴룽 총리와 동생 리셴양의 후계를 둘러싼 집안 싸움이 계속되자 3대 세습에 대한 비판여론이 불거졌다. 결국, 총리는 현 재무장관인 로렌스 웡에게 낙점됐다(이 과정도 특이하다. 원로 정치인 헹스위킷 부총리가 19명의 내각을 인터뷰해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로렌스 웡이 낙점을 받았다).

하지만 리콴유 가문의 권력이 여기서 끝날 것이라고 믿는 싱가포르인은 많지 않다. 3세 '리홍이'가 총리수업을 마치고 차차기 총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아버지 리셴룽 총리도 오랜 총리 수업을 끝내고 52살에 집권했다.

미국은 14년 전 아프리카계 아버지를 둔 흑인을 대통령으로 뽑았고, 영국은 며칠 전 인도계 총리(그는 힌두교도다)를 선출했는데, 아시아에서 제일 부유한 이 나라는 여전히 '순결한 태생'이 총리 후보자의 중요한 덕목이다.

아버지 리셴룽 총리(좌)와 아들 리홍이. 리홍이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입장이지만 그는 여전히 차차기 주요 총리 후보 중 하나다. 아버지 리셴룽 총리도 후계수업을 받던 1987년 35살에 국방부 제2장관을 역임했다.


3. 강력한 처벌과 잘 정돈된 사회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연방으로부터 쫓겨나면서 얼떨결에 독립했다. 마실 물조차 부족한 이 나라는 다수의 화교와 소수의 말레이족 사이의 갈등을 잠재우고 스스로 생존해야 했다. 이때부터 강력한 공권력이 필수조건이 됐다.

리콴유는 대신 투명하고 공정한 보상이 이뤄지는 사회를 추구했다. 우수한 공무원들에게 막강한 권한과 매우 높은 임금이 보장했다(싱가포르 장관 연봉은 보통 5~9억 원 수준이다). 부정부패 없는 공무원들이 리콴유의 리더십을 일사분란하게 뒷받침하면서 투명하고 효율적인 정부가 만들어졌다. 민주주의보다 훨씬 효율이 높은 권위주의는 장기집권으로 이어졌고 이 기간 경제는 눈부시게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개인보다는 공동체와 국가를, 비판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국가중심 성장주의'가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싱가포르 국민들은 개인의 자유를 상당 부분 국가에 넘겨주고 대신 안전과 번영을 돌려받는다. 그렇게 (선진국이나 정치학자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도를 넘는 정부의 파워가 용인되는 사회가 됐다.

강력한 탄압에 비판 언론은 자취를 감췄다. 정부나 총리 비판은 쉽지 않다. 2022년 싱가포르의 세계언론자유지수(World Press Freedom Index)는 139등이다. 짐바브웨(137등)나 우간다(132등)보다 낮다.

좋게 말하면 '관리되는 민주주의', 나쁘게 말하면 '억압된 민주주의'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EIU/Economist Intelligence Unit)의 민주주의 지수(Democracy Index)에서 싱가포르는 6.23점(2021년 기준)으로 전체 167개국 중 66위를 기록했다. 싱가포르의 민주주의는 나미비아(55위), 몽고(62위)는 물론 수리남(49위)보다 낮은 수준이다. 여전히 태형이 남아있고 실제 집행된다(조선의 곤장처럼 엉덩이를 때린다).

4. 싱가포르 주식회사의 미래는?

싱가포르는 단연 아시아에서 국민소득이 제일 높다. 구매력 기준 국민소득(PPP)은 세계 2위, 개인의 순 금융자산(1억 8,000만 원 정도/2020년 기준)은 세계 6위 수준이다. 진짜 잘사는 나라다. 국가경쟁력은 세계 5위(IMD 2021), 삼성전자 같은 글로벌 제조업 하나 없는데 해외 투자가 밀려든다. 금융업과 관광업의 경쟁력을 배경으로 사실상 완전 고용이 실현된다.

그런데 이를 위해 최저임금을 없앴고, 노동조합의 설립은 어렵게, 근로자의 해고는 쉽게 만들었다. 법인세율이나 소득세율이 상대적으로 낮다 보니 복지 재정은 자꾸 쪼그라든다. 국민들은 노후 복지와 의료를 위해 매월 소득의 상당액을 정부 곳간에 저축하고(중앙연금기금·Central Provident Fund), 다시 이를 곶감 빼먹듯 타가는 구조다. 열심히 일하고 경쟁에서 이기면 분명하게 보상받지만 그렇지 못하면 낙오되기 쉽다. 코로나19 위기를 겪으면서 격차는 더 벌어졌다.

마리나 샌즈 베이(사진:로이터)


인간의 얼굴을 지워버렸다는 싱가포르의 자본주의는 언제까지 순항할 수 있을까? 인류 역사에 도시국가의 번영이 100년을 넘긴 적이 없다는데…지독한 인플레이션에도 불구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올해 싱가포르의 성장률은 3%다. 미국(1.6%)이나 독일(1.5%)의 두 배다.

'문명충돌론'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은 리콴유를 '20세기 최고의 거장 중 한 명'이라고 했다. 싱가포르 주재 미 대사를 지낸 버넌 월터스는"리콴유가 작은 섬나라의 지도자인 것을 늘 신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싱가포르는 하나의 거대 기업처럼 움직인다. 투명하고 효율적이다. 그 기업의 사장 자리는 두 번 승계됐다. 북한처럼 3대 세습이 가능할까? 잘살고 정권이 세습되니 전 세계 '독재국가'들이 모두 싱가포르 모델을 배운단다.

김원장 기자 (kim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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