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 프랑크 단짝, '살아남은 슬픔' 뒤로 하고 안네 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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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아남았지만 안네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니 나치의 만행을 더 많이 알려야 한다."
'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 프랑크(1929∼1945)의 단짝 친구이자 유대인 강제수용소 생활을 함께했던 하나 피크-고슬라어(간호사)가 생전에 했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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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네의 일기'에 소개된 소꿉친구… 늘 함께 다녀
한동안 헤어졌다가 1945년 강제수용소에서 재회
수용소 해방 직전 숨진 안네와의 추억 평생 간직
“나는 살아남았지만 안네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니 나치의 만행을 더 많이 알려야 한다.”
평생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묵묵히 견디며 안네와의 추억을 고이 간직했던 피크-고슬라어가 93세로 별세해 꿈에도 그리던 안네 곁으로 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안네 프랑크 재단은 28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안네의 일기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언급됐던 피크-고슬라어가 세상을 떠났다”며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사망 일시나 사인 등은 공개되지 않았다. 재단 측은 “2차대전 종전 후 이스라엘로 이주해 간호사로 평생을 살았던 고인은 고통스러운 과거를 떠올리기 힘들어하면서도 평생 나치의 만행을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며 “그는 생전에 ‘나는 살아남았지만, 안네는 그렇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엇이 벌어졌는지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껴왔다”고 덧붙였다.
피크-고슬라어는 1928년생으로 1929년생인 안네보다 한 살 많다. 유대계 독일인인 두 사람은 1933년 나치가 독일 정권을 잡고 히틀러의 노골적인 반(反)유대인 정책이 본격화하자 부모에 이끌려 나란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으며, 그곳에서 이웃으로 만나 처음 인연을 맺었다. 어린 시절엔 소꿉친구였고 이후 유치원과 학교도 함께 다녔다.
피크-고슬라어는 안네가 13살 되던 생일에 부모로부터 일기장을 선물받은 것을 기억한다. 붉은색 바탕에 흰색 체크무늬가 수놓아진 예쁜 책이었다. 거기에 차곡차곡 쓰여진 글들이 바로 훗날의 ‘안네의 일기’다.
두 사람은 결국 1945년 2월 독일 베르겐벨젠의 유대인 강제수용소에서 재회하게 된다. 안네는 한 해 전인 1944년 누군가의 밀고로 독일군에 붙잡혀 악명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됐다가 벨젠으로 막 이송된 처지였다. 둘 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가스실의 잔혹함을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둘은 서로 다른 구획에 수감돼 가끔 울타리를 사이에 둔 채 얼굴을 마주하는 게 전부였죠. 친언니를 잃은 직후 안네가 눈물을 쏟으며 ‘이제 내겐 아무도 없다’고 하소연하던 것이 떠오르네요.”(피크-고슬라어의 회상)
1945년 3월 발진티푸스에 걸린 안네가 목숨을 잃은 직후 연합군이 벨젠 수용소를 해방시켰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피크-고슬라어는 1947년 이스라엘로 이주해 간호사가 됐다. 안네와 피크-고슬라어 두 사람의 애달픈 사연은 1997년 미국 작가 앨리슨 레슬리 골드에 의해 ‘안네 프랑크의 추억’이란 제목의 소설로 재탄생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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