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풍향계] 정쟁 국감 끝나자 예산 전쟁…뒤로 가는 의회정치
[앵커]
윤석열 정부 첫 국정감사가 석연치 않은 뒷맛을 남긴 채 마무리 되고, 연이어 국회는 예산 정국에 들어섰습니다.
그러나 검찰 수사를 둘러싼 대치 속에 시작부터 협치는 요원한 모습인데요.
전쟁터로 변한 여의도에서 국민을 위한 본연의 '정치'도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최지숙 기자가 여의도 풍향계에서 짚어봤습니다.
[기자]
국회가 국정 운영 전반을 들여다보고 감사하는 국정감사가 엄중한 대내외적 상황 속에 지난 4일 막을 올렸습니다.
여야 할 것 없이 '정책 국감' 그리고 '민생 국감'을 다짐했는데요.
그러나 공언은 식언(食言)이 되고 말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논란으로 시작부터 다수 상임위원회가 파행을 거듭했는데, 지난 13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과 발표를 계기로 전선은 국감장 밖으로 확대됐습니다.
<양금희 /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지난 13일)> "고(故) 이대준 씨 생명도 구하지 못했고 월북으로 조작까지 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수사에 충실히 참여하시길 촉구합니다."
<송기헌 / 더불어민주당 의원(지난 14일)> "감사원이 윤석열 대통령실의 하수인으로 전락해 헌법을 유린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표적 수사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국감 후반부에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향한 검찰 수사가 도화선이 됐습니다.
이 대표의 측근인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체포와 구속 그리고 민주연구원 압수수색.
민주당은 국감에 앞서 용산 대통령실 앞으로 향했고, 협치의 종언을 선언했습니다.
<박홍근 /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지난 24일)> "협치는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야당 탄압에 골몰하는 윤석열 정권을 강력히 규탄하며 국민과 함께 싸워 나가겠습니다."
국감은 사실상 정부를 견제하는 야당의 무대이지만 민주당 역시 이렇다 할 한 방은 없었던 가운데, 김의겸 의원은 국감 막바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을 향해 '술자리 의혹'을 꺼내들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한 장관이 석 달 전쯤, 서울 청담동의 한 바에서 김앤장 변호사 수십 명과 술자리를 가졌다는 주장인데,
<김의겸 / 더불어민주당 의원(지난 24일)> "청담동 고급 바였고요, 김앤장 변호사 30명 가량이 있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 자리에, 청담동 바에 합류했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설익은 의혹 제기에 반격만 들어왔습니다.
<한동훈 / 법무부 장관(지난 24일)> "법무부장관직 포함해 앞으로 어떤 공직을 하든 다 걸겠습니다. 의원님 뭐 거시겠습니까? 지라시 수준도 안 되는 것으로 국무위원을 모욕해 놓고…"
김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포함해 여야는 앞다퉈 상대 당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정작 이를 심사할 국회 윤리특위는 아직 구성도 안 된 상황입니다.
정책 대결 대신 정쟁에 골몰했던 올해 국감에선, 해마다 배출되던 국감 스타도 자취를 감춘 채 결국 씁쓸히 막을 내렸습니다.
냉각 상태를 해소하지 못하고 국회는 곧바로 예산 정국에 돌입했습니다.
새해 나라 살림을 심사하고 확정하는 중요한 책무인데, 이마저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절반 넘는 자리가 텅 빈 국회 본회의장.
지난 25일 윤석열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민주당의 보이콧으로 헌정 사상 처음, 반쪽으로 진행됐습니다.
윤 대통령은 예산안 처리를 위한 초당적 협력을 당부했지만,
<윤석열 / 대통령(지난 25일) "국회에서 법정기한 내에 예산안을 확정해서 어려운 민생에 숨통을 틔워주시고…"
본회의장 바깥에서는 규탄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현장음> "윤석열 정권 규탄한다! 규탄한다! 규탄한다!"
야당이 대통령의 시정연설에 본회의장 입장조차 하지 않은 것은 헌정사상 처음입니다.
그야말로 협치가 붕괴된 현장이었습니다.
물러섬 없는 집권여당과 거대 야당의 끝 없는 대치 앞에, 정의당은 적대적 정치를 끝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이은주 /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지난 27일)> "적대적 정치는 정치의 힘을 가장 필요로 하는 힘 없는 약자에게서 공공 정책이 자신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빼앗고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올해도 예산안 처리가 법정 기한을 넘길 수 있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정부는 2010년 이후 처음 전년 대비 지출을 줄여, 재정 건전성 회복을 강조하고 있지만,
<윤석열 / 대통령(지난 25일)> "재정 건전화를 추진하면서도,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두텁게 지원하는 '약자 복지'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삭감된 예산의 회복을 벼르고 있습니다.
<박홍근 /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지난 27일)> "저소득층 공공임대주택, 청년 내일채움공제 예산 등 경제 어려울 때 더 고통스러운 분들에게 필요한 민생 예산 반드시 살리겠습니다."
국민의힘도 입법, 예산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주호영 / 국민의힘 원내대표(지난 27일)> "(예산안 처리가) 연말까지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 진짜 입법전쟁, 예산전쟁이라는 각오로 철저히 준비해주실 것을…"
법정 기한을 넘길 경우를 대비해, 정부는 이미 최소한의 예산을 전년도 예산에 준해 편성하는 '준예산' 집행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대화와 타협이 실종된 의회 정치의 위기 속에, 민생 현장의 고통은 턱밑까지 다다랐습니다.
최근 국회 본회의에서는 21대 국회 최연소 의원의 성토가 있었는데요.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여야의 정쟁을 부끄럽다고 지적하며, 특히 여권을 향해 "거짓말 해도 혼나지 않고 잘못해도 사과하지 않으면 계속 거짓말과 잘못을 하게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민생 현장을 책임져야 하는 정부·여당의 역할과 책임이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읽힙니다.
화해를 택하는 것은 대립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더 중요한 것을 지켜낼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여의도 풍향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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