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발행 자제…최대한 은행 대출로” 정부 공공기관에 지침
우량 공사채로 유동성 쏠린단 지적에
“회사채 발행하려면 국내보단 해외서”
산금채·은행채 등 발행도 동시에 축소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시장 경색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공공기관에 회사채 발행 자제를 요청했다. 한국전력·한국가스공사 등 신용도가 높은 공기업의 자금 조달을 은행 대출로 돌리고, 해외에서 회사채를 발행하도록 유도해 시장에 공급되는 채권 물량 압박을 풀어주자는 것이다. 산업금융채(산금채)나 은행채 등 다른 우량 채권의 발행 축소도 추진하고 있다.
30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공공기관에 회사채 발행을 최대한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만약 자금 조달이 필요한 경우 회사채 발행 대신 은행 대출로 유도한다. 대출이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책의 필요성도 살핀다. 회사채를 국내 시장보다는 해외에서 발행하는 것도 주문했다.
주 대상은 한전·한국가스공사 등 우수한 신용등급을 갖고 있는 공기업이다. 우량 공사채에 속하는 AAA등급의 한전은 올해 들어서만 23조원이 넘는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에 한전 등의 공사채가 시중 유동성을 흡수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앞서 금융당국은 범정부 차원에서 한전채 등 공공기관의 채권 분산 발행을 추진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막대한 한전채 물량이 채권시장의 근본적 원인 중 하나라는 데 공감대를 가지고 협의를 하고 있다”며 “해외 발행이나 은행 대출로 돌리는 방안 등을 협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채권시장의 자금 ‘블랙홀’로 지목돼온 산업금융채(산금채)나 은행채 발행 축소도 유도하고 있다. 국책은행들이 찍어내는 초우량 등급의 채권이 가뜩이나 수요가 말라버린 시장에서 투자 수요를 빨아들이며 일반 회사채를 소외시킨다는 지적이 계속된 데 따른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에 시장 경색 상황을 고려해 산금채를 비롯한 특수채(공공부문이 발행한 채권) 발행을 최소화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발행 물량과 일정도 확인하고 있다.
산금채와 함께 시중자금을 싹쓸이해온 은행채 발행도 축소된다. 금융당국은 지난 26일 5개 주요 은행과 회의를 열고 은행채 발행을 최소화하기로 협의했다. 금융위는 은행권에 대한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한시적 완화, 은행채 관련 일괄신고서 규율 완화 등을 통해 은행들의 적극적인 물량 조절을 지원하고 있다.
그간 시장 자금을 싹쓸이해온 초우량채 발행이 줄어들 경우 투자 수요가 일반 회사채 등으로 흐르게 되면서 ‘돈맥경화’ 현상이 완화될 것으로 금융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이는 최대 20조원 규모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의 유동성 공급 효과를 높이기 위한 측면도 있다. 금융당국은 이번 주 중 시작되는 3조원 규모의 채안펀드 1차 추가 캐피털 콜(자금 납입 요청)에도 산금채와 은행채 발행을 통한 자금 조달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채안펀드는 지난 24일 기업어음(CP)을 중심으로 매입을 시작했으며 시장에서 소화하기 어려운 회사채와 여신전문금융채 등도 사들일 예정이다.
채안펀드 출자 기관인 산업은행이나 시중 은행권이 자금 조달을 위해 또다시 채권을 발행할 경우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격’에 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금융당국 관계자는 “은행권이 캐피탈 콜에 응하며 은행채 발행이 아닌 기존에 확보한 여유 자금으로 해보겠다는 의사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산은 역시 채안펀드를 위한 추가 산금채 발행은 하지 않기로 했다.
당국이 50조원 이상의 유동성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한 가운데, 최대한 시장이 자체적으로 자금 경색을 해소하도록 유도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중앙은행이 물가 상승과 환율 방어 등을 위해 통화긴축을 하는 상황에서 추가로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할 단계는 아니라는 인식도 엿보인다.
한국은행은 최근 증권사·증권금융 등을 대상으로 약 6조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단기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결정하면서도, 본격적으로 발권력을 동원해 유동성을 대규모로 공급하는 금융안정대출과 SPV(기업유동성지원기구) 재가동 등은 거론하지 않았다.
회사채·기업어음(CP) 등에서 발생하고 있는 자금 경색이 저축은행·캐피털 등 다른 부문으로 번지지 않도록 위기를 관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부는 다음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가 끝난 뒤 거시경제금융회의를 개최하고 금융시장에 대한 FOMC의 영향과 함께 자금시장도 점검할 예정이다. 자금시장의 취약한 부분과 추가적인 대응책의 필요성 등을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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