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超엔저' 日기업 실적 들었다놨다…월급만 안 올랐다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도쿄=정영효 2022. 10. 30. 09: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상장사 30%, 순익 상향조정…20%는 하향
엔·달러 환율 평균 134엔..1년새 24엔 급락
노동분배율 63%로 31년 만의 최저
순익 4배 늘 동안 급여는 1% 올라
상장사, 급여인상보다 주주환원
이 기사는 국내 최대 해외 투자정보 플랫폼 한경 글로벌마켓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올들어 엔화 가치가 30% 가까이 떨어지면서 일본 기업들의 실적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상장기업의 30%는 올해 순이익이 기존 예상보다 늘어날 것으로 내다본 반면 20%는 수익성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전반적으로 엔저(低)가 수익성을 높이지만 일본 기업들은 늘어난 이익을 임금인상에 쓰는데 매우 인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30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지난 28일 현재 2022회계연도(2022년 4월~2023년 3월) 실적 예상치를 발표한 도쿄증시 프라임시장 상장사 186곳 가운데 30%(55곳)가 순이익 전망치를 상향 조정했다. 이 기업들은 올해 순익이 4300억엔(약 4조1494억원)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자와 화학, 기계 등 수출 제조업이 대부분이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웨이퍼 제조업체인 신에쓰화학공업은 올해 순익이 6800억엔으로 1년 전보다 36% 늘 것으로 내다봤다. 기존 전망보다 920억엔 불어난 수치다.

반면 상장사의 20%(42곳)는 순익 예상치를 하향 조정했다. 원자재값 급등의 영향을 많이 받는 소비재 기업이 주로 전망치를 낮춰 잡았다.

엔화 가치 약세가 실적 양극화의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엔저가 기업의 이익을 늘리는 효과는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다이와증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엔화 가치가 1엔 떨어지면 주요 기업의 영업이익은 0.4% 늘어난다. 이익을 늘리는 효과가 2009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그런데도 상장사 순익이 예상보다 크게 늘어난 것은 엔화 가치가 워낙 가파르게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올해 4~9월 달러 당 엔화 가치는 평균 134엔으로 1년 전 같은 기간보다 24엔 떨어졌다. 반 년 만에 엔화 가치가 19엔 떨어졌던 2013년 4~9월을 뛰어넘는 속도다.

일본 상장사들은 올해 엔·달러 환율을 평균 124엔으로 전망하고 실적을 추산했다. 실제 환율(30일 현재 147.4엔)보다 20엔 이상 엔화 가치를 높게 본 것이어서 순익 예상을 조정하는 기업이 잇따를 것이라고 이 신문은 전망했다.

 인건비 줄여 수익성 늘렸다 

SMBC닛코증권에 따르면 2021년 일본 기업의 노동분배율은 62.6%로 1990년 이후 31년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자료 : 니혼게이자이신문)

기업의 실적이 꾸준히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급여는 거의 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SMBC닛코증권에 따르면 2021년 일본 기업의 노동분배율은 62.6%로 1년 전보다 5.7%포인트 떨어졌다. 버블(거품)경제로 기업의 이익이 크게 늘었던 1990년(61.9%) 이후 최저치다.

노동분배율은 기업의 순익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다. 노동분배율이 낮을 수록 임금이 오르지 않아 소비도 부진하다. 반면 너무 높으면 투자여력이 줄어드는 등 기업 경영의 위험요소가 된다. 단기적으로는 기업의 이익이 늘어나는 호경기에 하락하고, 실적이 부진한 불경기에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일본의 노동분배율은 2001년 78.6%를 정점으로 하락했다. 버블경제 붕괴 후 '고용, 설비, 채무'의 3대 과잉에 시달린 기업들이 인건비와 설비투자, 부채를 줄이는 방식으로 수익성을 회복시킨 영향이다.

2021년 일본 기업의 법인세 차감 전 이익은 78조엔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2000년에 비해 3.8배 늘었다. 이익잉여금은 480조엔으로 2.5배 늘었다. 반면 인건비는 206조엔으로 2000년보다 1%, 1990년에 비해서는 6% 증가했다.    

상장사들이 임금인상보다 주주환원에 신경쓰는 추세도 노동분배율을 떨어뜨렸다는 지적이다. 2021년 상장사들의 배당금 총액은 2000년보다 5.4배 늘었다. 급여를 동종 업계와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는 관행 역시 임금이 좀처럼 늘지 않은 요인으로 지적된다. 한 제조 대기업 관계자는 "동종업계끼리 정보를 교환하면서 도토리 키재기식으로 급여를 정하기 때문에 경쟁업체보다 눈에 띄는 임금인상이 불가능한 구조"라고 말했다.

일본 근로자의 실질임금은 반 년 가까이 마이너스를 이어가고 있다. 월급은 그대로인데 물가가 치솟은 탓이다.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3%)은 3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 정부도 올해 최저 임금을 역대 최대폭으로 올리고, 중소기업의 임금인상을 지원하는 등 급여를 끌어올리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기업이 비용 증가분을 적정하게 판매가격에 전가해 확보한 이익을 근로자의 임금인상에 사용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해외투자 '한경 글로벌마켓'과 함께하세요
한국경제신문과 WSJ, 모바일한경으로 보세요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