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선]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카카오 먹통 사태
“지진 피해는 고려했지만 쓰나미 피해는 고려하지 않았다. 일본은 전력생산 기술력에 대한 높은 자부심으로 장시간에 걸친 정전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2012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1년 후 하타무라 요타로 조사위원장(도쿄대 명예교수)이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대규모 피원전사고 근본 원인이 극한의 자연재해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한 낙관주의와 어떤 상황에서도 정전사태 쯤은 막아낼 수 있다는 과신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최근 카카오 먹통 사태로 대한민국이 멈췄다. 메인 서버가 위치한 판교 SK㈜ C&C센터 화재로 인해서다. 127시간30분이라는 역대 최장 시간 장애로 기록된 사태가 벌어졌다. 카카오 경영진은 “화재로 센터 하나가 통째로 셧다운되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복구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면서 카카오가 완비를 주장한 서버 이원화의 기술적 결함 가능성도 제기된다.
무정전 전원장치(UPS)에 쓰인 리튬이온배터리가 화재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배터리 화재 위험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한 번 불이 붙으면 진압도 어렵다. 그럼에도 SK㈜ C&C는 고객사 주요 서버와 연결된 메인 전선 케이블 바로 밑에 배터리를 보관해 왔다. 절대 자사에겐 화재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지난 25일 우리은행의 모바일뱅킹 애플리케이션(앱)인 '우리WON뱅킹'에서 2시간가량 접속이 지연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많은 기업이 25일이 월급날인 것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예측 범위를 넘어선 트래픽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접속지연 사태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모든 잠재적 장애 원인을 분석해 봤는지 의구심이 든다.
우리는 어떤 대형 사건이 터지면 사고 원인을 찾는 데 집중한다. 꼭 인재 논란이 뒤따른다. 인재 논란을 한바탕 겪고 나면 관련 서비스명이나 기업명을 따서 '○○○법'이 만들어진다. 타다금지법 등이 대표적이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26일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 강화를 골자로 하는 '카카오 먹통사태 방지법'(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후약방문식 대처도 필요하다. 하지만 사후보다는 사전에 실패를 줄일 수 있도록 보다 철저하게 계획하고 대비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어떤 일을 추진할 때 최악의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는 드물다. 계획안 대부분은 낙관적 전망을 바탕으로 세워진다. 기대 수준이 항상 포함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에 실패나 절망 수준은 들어가지 않는다. 나름 최악의 상황을 고려했다고 하더라도 실상은 결코 최악의 상황까지 고려하지 않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자주 경험했던 지진만 대비했고 쓰나미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카카오 역시 자주 발생한 트래픽 과부하는 대비했지만 화재에 따른 전원 공급 중단은 예상하지 못했다. 결국 어떤 대비책도 마련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기업은 신사업을 추진할 때 '실패 사전부검'을 실시한다. 처절하게 망하는 관점으로 프레임을 설정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각 항목을 구체화해 대비책을 수립한다. 위험을 인정해야 대책도 세울 수 있다. 넷플릭스가 단계별 극한의 재해 상황을 고려해 비상 복구훈련을 하는 것도 이러한 실패 사전부검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같은 실수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카카오뿐 아니라 생활 서비스로 자리 잡은 각종 플랫폼과 금융 서비스도 더욱 철저히 대비 태세를 갖춰야 한다. 있을 수 있는 일은 반드시 일어나고, 있을 수 없는 일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카카오는 오는 11월 1일까지 이번 사고로 인한 피해 접수를 마무리하고 보상안을 준비한다. 재발 방지와 함께 슬기롭게 사태를 수습하는 책임감도 보여주길 바란다.
성현희기자 sunghh@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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