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이재용 과거 발언으로 본 '4대 혁신' 방향은
글로벌 경기 침체에 '이재용표 혁신경영' 주목
인재·기술·조직문화·상생경영 초점 관측
삼성이 세 번째 회장인 '이재용 체제'를 공식화하면서 그가 내놓을 혁신경영의 청사진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와 물가 불안, 고금리 여파로 올해 3분기 삼성전자 실적 역시 고전을 면치 못한 만큼, 그룹의 체질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재용 회장 역시 25일 열린 이건희 회장 2주기 사장단 회의에서 지금 상황을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하다"고 진단했다. '이재용표 혁신경영'에 대해선 여러 관측이 나오지만, 과거 그의 발언들을 바탕으로 보면 ①인재경영 ②기술경영 ③조직문화혁신 ④상생경영 등 4개 비전으로 압축된다.
①인재경영 "세상 바꿀 인재 모셔야"
30일 재계에 따르면 이 회장의 첫 번째 경영 원칙은 인재경영이다. 그는 최근 사장단 회의에서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모셔 오고,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6월 유럽 출장을 다녀오면서도 "저희가 할 일은 좋은 사람을 모셔 오는 것"이라고 말했고, 지난해 12월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희망ON 간담회에선 "미국과 중국이 탐내는 인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호소했다.
실제 이 회장은 인공지능(AI) 분야 최고 석학인 승현준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를 삼성전자 통합 연구조직인 삼성리서치 소장 사장으로 영입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앞서 삼성은 능력중심 인재 채용을 목표로 1957년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공개 채용 제도를 도입했고, 1995년에는 입사 자격 요건에서 학력, 국적, 성별, 나이 등을 제외했다.
②기술경영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기술"
기술경영도 좀 더 구체적으로 살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핵심 사업인 반도체 분야는 글로벌 패권 전쟁이 펼쳐지고 있고, 효자 사업인 스마트폰 역시 시장 상황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AI,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분야도 경쟁이 치열해진 만큼 기술혁신을 통한 경쟁력 확보가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이 회장의 발언들에도 이 같은 원칙은 녹아 있다. 25일 사장단 회의에서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미래 기술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 있다"고 말했고, 앞서 6월 유럽출장 귀국길에선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는 소회를 밝혔다. 8월 기흥 반도체 R&D단지 기공식에선 "세상에 없는 기술로 미래를 만들자"고도 했다.
삼성은 미래 신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 지원 역량을 키울 계획이다. 5세대(5G) 통신기술을 넘어 6세대(6G) 통신기술을 이끌고 AI, 로봇, 슈퍼컴퓨터 산업을 집중적으로 키울 방침이다. 특히 바이오 산업을 제2의 반도체로 집중 육성한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사장이던 2011년 5G 기술 연구를 전담할 '차세대 통신 연구개발조직'을 새로 만들자고 했는데 , 당시는 4G 서비스가 막 첫발을 떼던 시기였다.
③조직문화혁신 "개방적 문화 만들자"
조직문화혁신은 이 회장이 이병철·이건희 선대 회장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진 성과를 거둔 분야라는 평가가 많다. 이 회장은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을 없앴고, 외부 인사들로 꾸려진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도 설치했다.
이 회장은 능력을 가운데 둔 수평적 조직을 추구해 왔다. 그는 2020년 8월 워킹맘 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존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은 물론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을 바꾸자"고 했고, 이달 25일에는 "다양성을 인정하는 개방적 문화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2020년 5월 대국민 기자회견에선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하겠다"며 준법문화 정착과 노사문화 개선, 4세 승계 포기 등에 대한 자신의 의지를 대외적으로 확실히 밝혔다. 삼성은 이 회장의 조직문화혁신 의지에 따라 올해부터 직급을 통폐합했고 직급별 체류 연한을 없애 조기 승진 기회를 확대했다.
④상생경영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자"
상생경영은 이재용표 혁신경영의 마지막 퍼즐이다. 이 회장은 부회장이던 2019년 창립 50주년 기념사를 통해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세계 최고를 향한 길"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이 회장의 '상생경영, 미래동행' 원칙에 따라 협력사는 물론 국내 산업 생태계 전반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현재 삼성은 우수 협력사를 대상으로 인센티브를 주고 있고, 3조 원 규모 협력회사 지원 펀드를 운영 중이다. 국내 중소기업 2,500곳의 스마트공장 전환을 돕고, 해마다 산학 협력에 1,000억 원을 투입하고 있다.
이 회장은 미래 먹거리 육성을 위한 투자 총력전도 펼칠 것으로 보인다. 9월 멕시코 현지 방문 당시 "과감한 도전을 통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미래를 개척하자"고 제안했다. 또 2020년 5월 중국 시안 반도체 사업장을 찾아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거대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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