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빛만 더한다, 그 사랑이 잘 보이라고
호캉스와 돌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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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또 다른 가족인 동성부부 진과 령이 오랜만에 부산에 왔다. 얼마 만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까마득히 먼 날도 때론 생각보다 가깝고, 어제 같은 절망마저 수년 전의 일이 되어버린 걸 깨닫는다. 그리움이나 반가움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길 바라지만, 다를 수 있을까? 전단지 한 장처럼 낡아버린 좋은 날들도 최선을 다해 반기는 수밖에.
동성부부의 청약당첨, 좋은 날만 있을까
다행히 진짜 반가운 소식도 있었다. 십년을 넘긴 맞벌이 부부로 낡은 원룸에서 지냈던 그들은, 얼마 전 겨우 소형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었다고 했다. 신혼부부 특공 청약은 꿈도 꿀 수 없는 동성부부였으니, 아마도 사십 중반을 넘은 나이에 무주택이 가산점이 되었는지 모른다. 정말 잘됐다고 휴대폰 속에 소리쳐 놓고, 그날 나는 당첨된 게 나인 것처럼 들떠 하루 종일 싱글벙글이었다. 이따금 찾아갈 때마다 열 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이 안타깝고 속상했는데, 이제 그들에게도 거실이 생기고 드레스룸이나 서재가 생길 것을 생각하니 묵은 체증이라도 내린 것만 같았다. 의무라고 세금은 똑같이 떼어가면서 왜 혜택은 대놓고 차별인가. 국가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이 사회를 생각하면 답답하지만, 늦게나마 ‘집’을 갖게 된 그들의 앞날에 좋은 날만 있으리라 나는 마음껏 기뻐했다.
그러나 기쁜 날도 잠시, 진의 건강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마흔이 넘었으니 너도 나잇살이 찌는구나 웃고 넘겼는데,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고 했다. 수면제를 먹어도 소용없고 이틀에 한 번 세 시간 남짓 자는 게 전부라고 했을 때, 덜컥 겁이 났다. 어느새 오십이 가까운 나이, 더 이상 성소수자 모임을 이끌던 청청한 이십대가 아니란 건 알았지만, 퀭한 눈빛에 점점 살이 찌는 사십대 후반의 그는 어쩐지 위태로웠다. 파트너인 령도 걱정이 많아, 같이 아프고, 같이 힘겨워 보였다.
게다가 당첨된 아파트의 중도금을 채우는 일도 골치인 모양이었다. 부모님께 융통을 부탁했지만, 그 집 장남인 첫째의 사업을 밀어주느라 온 집안의 돈이 거기에 묶여 있다고 했다. 둘째인 진 역시 형의 사업체에 들러붙어 이십대와 삼십대를 소진하고 말았고, 새로운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터였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세심한 그가 남모르게 끙끙 앓았을 세월이 적지 않았을 것이었다.
아직 커밍아웃 하지 않은 동성부부였으니, 분가할 몫을 달라고 부모님께 소리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늦은 나이까지 독신인 둘째 아들에게 왜 결혼 추궁이 없는 건지, 장남을 밀어주느라 신경을 쓰다 보니 모른 척이신지, 남의 집안 사정에 관해 과하게 묻는 일 같아 나는 더 이상 묻지 못했다. 그러나 이 가족의 상황이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중년의 이성부부의 일이라면 똑같았을까, 혼자서 속으로만 앓는 것이 개인의 성격 탓일까, 나는 통속적인 가족사 너머로 밀쳐진 동성부부의 현실을 본 것 같아 쓴물이 올라왔다.
동성부부의 결혼을 단순한 배려 대상이나 국민적 동의 혹은 허락이 필요한 요건으로 단정짓는 자칭 ‘진보적’ 언사를 들을 때면, 그래서 더 숨이 막힌다. 이름 붙일 수 없는 매 순간마다 얼마나 오랫동안 동성부부의 삶은 재갈이 물린 채 실체 없고 시급하지도 않은 ‘법안 한 줄’로만 남겨져왔던 걸까? 유년 시절에는 감정적으로 고립되고, 어른이 되어서는 사회적으로 고립되며, 중년이 되어서는 법적 언어가 없어 죽을 때까지 독신인 그 삶들이, 어떻게 시급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오랜만에 부산에서 다시 본 진은 마지막 만났던 때보다 훨씬 더 안 좋아 보였다. 어느새 몸무게는 세 자릿수를 훌쩍 넘겼고, 조금만 걸어도 식은땀을 흘리며 얼굴이 시커메졌다. 다행히 전세를 주어 중도금 걱정은 일단 면했다고 했는데, 차마 ‘잘됐다’고 말할 수 없었다. 결국 제집을 놔두고, 두 사람의 삶은 여전히 낡고 낡은 좁은 원룸에 그대로 묶인 채였다. 당장 서로의 집으로 쳐들어가 우리도 살아야 될 거 아니냐고 꼬장꼬장한 며느리나 사위 노릇이라도 하길 바랐지만, 파트너인 령 역시 커밍아웃 하지 못한 법적 독신남인 것은 마찬가지.
그래도 가까이 지낸 트랜스젠더 누나와 오랜만에 휴가를 즐기겠다고 호텔을 예약해 나를 초대했지만,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날도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적거리다가 아침을 맞는 진에게, 나는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도대체 어쩌려고 이러느냐고, 건강 검진은 제대로 받고 있는 거냐고, 그러다가 돌연사한다고 소리쳐 놓고, 눈물이 찔끔 나고 말았다.
만날 때마다 그랬으니 이번에는 절대 잔소리 말고 즐겁게 지내다가 보내줘야지 다짐했는데, 잠이 덕지덕지 묻은 눈으로 산발을 한 채 나는 진에게 모진 말들을 계속했다. 건강하고 멋스럽게 늙어가야 할 거 아니냐고, 그러지 못한다면 우리 인생이 얼마나 허망하고 억울할 거냐고.
꼴딱 밤을 새우다시피 한 채 아침부터 날벼락을 맞은 진은, 괜찮다고, 원래 잠이 없는 사람일 뿐이라고 나를 안심시키기 급급했다. 그가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열거하고 싶지도 않았다. 이렇게 잔소리를 하는 사람이 나뿐이면 어쩌나, 이성부부라면 단박에 가족 누구에게든 드러나 잔소리는 내 차례까지 오지도 않을 텐데, 사막 위에 오직 둘뿐인 것 같아 나는 애가 탔다. 그깟 돈 벌어서 뭐할 거냐고, 물려줄 자식새끼도 없는데 둘이나 번듯하게 살아야지 그 꼴이 그게 뭐냐고 내가 대신 억울해, 나는 끝도 없이 쏟아냈다.
착해 빠진 두 사람은 속상한 누나 마음을 풀어주려고, 그날 내내 수영장 얘기를 하고, 너무 일찍 뜬 달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나는 그다음 날까지 내가 뱉은 ‘돌연사’라는 말에 붙들려 있었다. 진정 갑작스러운 죽음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쌓이고 쌓인 고립과 소외의 더께가 마침내 쓰러트린 게 아닐까?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져, 스스로는 폭력인지 착취인지 알지도 못하는 우리 사회의 그 무감각처럼.
언제쯤 똑같은 사랑, 결혼이 될까
휴가가 끝나고, 두 사람에게 잘 도착했느냐 문자 한 통 보내지 못했다. 결혼식도 없고 신혼여행 같은 것도 없어 두 사람과 여행할 때면 사진사 노릇이라도 열심히 했는데, 앨범을 만들려고 사진을 고르며 조금도 즐겁지 않았다. 언제쯤 성소수자의 사랑은 똑같은 사랑이 되고, 결혼이 되고, 휴가가 되고, 즐거움이 될까? 죽을 때까지도 적확하게 호명되는 죽음일까? 그래도 사진 속 행복한 그 얼굴들을 고른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그 얼굴을 고른다. 주름을 지울까 보정을 하려다가, 그만둔다. 밝은 빛만 더한다. 사진 속에서나마 환해지라고. 그 사랑이 잘 보이라고.
50대에 접어들어 성전환자의 눈으로 본 세상, 성소수자와 함께 사는 사람들과 그 풍경을 그려보고자 한다.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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