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론을' 정려원 "사람마다 다른 '용서' 쓰는 방법 알려준 작품"
다양한 작품을 통해 폭넓은 캐릭터 소화력과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연기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배우 정려원이 재판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물어뜯는 에이스 독종 변호사 노착희 역으로 돌아왔다.
'마녀의 법정' '검사내전'에 이어 세 번째 법정 드라마에 출연하는 정려원은 예상치 못하게 국선 변호사로 전향하게 되며 다양한 사건들을 만나는 인물의 다채로운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또 한 번의 인생 캐릭터를 선보였다.
또한 이규형과 특별한 케미부터 다양한 사건을 마주하며 변화하는 캐릭터의 감정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시청자들의 단숨에 마음을 사로잡았다. 정려원은 과연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의 어떤 점에 매료되어 출연을 결심했는지, 그리고 이번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그리고 싶었는지 디즈니+를 통해 이야기를 전해왔다.
▷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를 통해 국내는 물론 글로벌 시청자들과 만났다. 종영을 앞둔 소감은 어떤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끝이라니 너무 아쉬운 마음이 크다.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더 보여주고, 하고 싶었던 얘기들이 더 많아서 그런지 더욱 아쉬움이 남는 것 같다.
▷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때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의 어떤 점에 가장 매료가 됐나?
사실 맨 처음 작품 이야기를 접했을 때 노착희라는 캐릭터는 기자였다. 지금은 변호사가 됐지만(웃음) 처음에는 기자라는 설정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시작하게 됐는데, 원고를 받고 보니 '변호사'가 돼 있더라. 법조인 캐릭터는 세 번째여서 잠시 고민도 있었지만 착희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매력적이기도 하고, 대본을 읽을수록 점점 더 캐릭터에 욕심이 났다. 무엇보다 상대 배우가 이규형이다. 모두가 아시는 것처럼 너무 좋은 배우고, 안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를 통해 세 번째 법조인 캐릭터를 연기하게 됐다. 법조인 캐릭터를 연이어 연기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나?
솔직히 말해서 법조인 캐릭터를 연이어 연기한다는 부담감이나 이에 대해 신경을 특별히 쓴 부분은 따로 없었다. 장르물을 선호하다 보니 선택에 한계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렇다면 '최대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자'라고 생각했다.
▷ 기존에 연기했던 캐릭터들과의 차별점을 두기 위해 더욱 신경을 쓴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착희의 경우 내가 기존에 연기했던 캐릭터와의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본인이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들의 눈치를 엄청나게 보는 캐릭터라는 점이다. 외형도 엄청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런 점들이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연약해 보이기도 했는데, 그랬던 그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연기하면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노착희는 자신을 승소율 92% 변호사로 만들어준 대형 로펌 장산에서의 첫 사건이 한 사람의 인생을 망가트렸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부분이 노착희 캐릭터가 변화하게 되는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주는 것 같은데, 이 장면을 통해 어떤 점을 전달하려고 했나?
착희는 위만 보고 올라가느라 그 과정에서 누군가를 밟고 부러트렸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살아온 인물이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부러짐'을 경험하고 국선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시선을 돌리게 됐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다고 생각한다.
▷ 본인이 생각하는 노착희는 어떤 인물인가?
자기 잘못을 깨달았을 때 다시는 전과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변화하려 노력하는 사람은 진화하는 반면, 깨달았음에도 예전과 똑같이 행동하는 사람은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착희는 전자라고 보고 있기에 분명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확신한다.
▷ 극 중 노착희 캐릭터는 회가 거듭될수록 감정의 진폭이 굉장히 큰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캐릭터의 변화된 모습을 단계적으로 보여주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나?
계단처럼 차례대로 변화하는 것이 아닌, 9~10회에서 가족처럼 따랐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믿었던 좌 변호사로부터 자신이 범인이라는 자백을 들으면서 착희의 감정이 폭발한다. 9-10회 대본 속 갑작스러운 할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혼란스러워하다가 갑자기 깨닫고 타격을 받는 착희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에는 어떻게 연기하고 표현해야 할지 두려운 마음이 들기는 했다.
그러다가 '이 두려운 마음을 이용해 보자'하는 생각도 들더라. 실제로도 촬영하면서 나는 살인사건 현장 촬영 모니터를 해보지 못했던 터라 그 장면을 보기 전까지 우리 드라마가 국선 사무실 현장처럼 밝고 유쾌한 줄 알았다. 그때 처음으로 이런 무거운 톤도 있다는 걸 알았다. 살인사건의 무게가 처음으로 다가오면서 무서운 감정도 들었는데, 오히려 이 같은 부분이 감정의 진폭을 연기하는 데 도움이 됐던 것 같다.
▷ 이번 작품을 통해 이규형 배우와 호흡을 맞췄다. 두 사람의 티키타카가 굉장히 화제를 모으기도 했는데 공개된 에피소드를 직접 보면서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다. 이규형 배우와 함께 연기한 소감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싶다.
이규형 배우는 좋은 배우이자, 너무 좋은 사람이다. 영민하고 순발력도 뛰어나고, 호기심도 많은 데다 타고난 심성이 온유한 사람이다. 화도 없고, 잔잔하고 깊은 호수 같다.
무엇보다 모두가 알다시피 연기를 정말 잘한다. 연기하는 걸 구경하다 간 적도 많고, 언제는 같이 연기 호흡을 맞추다 연기하는 걸 보고 감탄한 적도 많다. '어떻게 저런 애드리브가 나오지?' 하고. 드라마를 보다 보면 시백과 티키타카 중 웃음이 터지거나 혹은 당황해하는 착희의 모습이 종종 있는데, 사실 그게 내 진짜 리액션이다. 실제로 재밌기도 했고, 연기를 너무 잘해서 저절로 자연스러운 리액션들이 나오게 하더라.(웃음)
▷ 작가와 의논해 대사를 바꾸거나 애드리브를 활용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작가와 깊게 논의했던 장면은 무엇인가?
나는 연기를 하는 데 있어 대사를 바꾸는 편은 아니기는 한데, 이번에는 규형씨랑 티키타카를 좀 더 살리기 위해 입에 조금 더 쉽게 붙을 수 있도록 연구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둘이 함께 연습하면서 대사를 이렇게도 바꿔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작가님도 연습 때 같이 오셔서 모니터도 해주시면서 편하게 바꿔 주시기도 했다.
작가님과 1부 맨 처음에 만나는 장면에 대해 제일 많이 토론하고 연구했던 것 같다. 처음엔 둘이 앉아서 말로만 언쟁을 하는 거였는데, 7분 동안 앉아서 말만 하면 답답할 수도 있겠더라. 그래서 움직이는 동선과 애드리브를 제안했었고, 덕분에 장면이 다채로워진 것 같다.
▷ 영화, 드라마 등 최근 다양한 영역에서 작품을 선택하고 있다. 작품을 선정할 때 특별히 눈여겨보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스토리가 희망적인 작품에 마음이 더 가는 편이다.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하는 이야기들이 정말 많고 스토리텔러들도 많은데, 나는 그중에서 희망을 줄 수 있는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진실도 사라지니까"라는 극 중 대사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설명하는 것 같다. 특히 살인범에 대한 진실이 굉장히 충격적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이 작품을 통해 대중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지 이야기해 달라.
나는 인간이 결코 쉽게 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가 '진심을 다 한 용서'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시간이 흐르면 기억이나 분노가 옅어지는 것뿐이지 상처들은 마음에 쓴 뿌리처럼 남아있다. 그래서 겉에서 봤을 때는 완치가 된 것처럼 보이지만, 해결되지 않은 상처는 언젠가 다시 올라올 수밖에 없다.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는 이 같은 지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면서 '용서'와 '정의'를 사람마다 다르게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같다.
▷ 배우 인생에 있어 '변론을 시작하겠습니다'는 어떤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나?
축복받은 현장에서 찍은, 더할 나위 없이 신나게 일했던 작품. 현장에 빨리 가고 싶어서 발걸음이 절로 떨어졌던 작품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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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zoo719@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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