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되는 건 다 판다"…'위기의 증권사' 사실상 구조조정 돌입
중소형 증권사들, 금리 8∼9% CP·전단채 발행으로 연명
"시장 연말께 안정 찾을 것…부실 누적된 곳은 위험 못 피할 듯"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채새롬 기자 = 부동산시장에서 촉발된 금융시장 불안으로 위기에 직면한 증권사들이 사실상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30일 금융투자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자금이 부족한 일부 중소형 증권사는 금리를 두 배 높인 기업어음(CP)이나 전자단기사채 발행으로 연명하면서 돈이 될만한 자산을 내다 팔고 있다.
정부는 다음 주에 3조원 규모의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 캐피털콜(펀드 자금 요청)을 통해 자금을 수혈한다. 증권사 유동성 지원을 위해 한국증권금융에서 3조원 이상의 유동성을 지원하고 산업은행도 2조원 이상의 증권사 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시장에선 정부의 유동성 지원에 금융시장은 연말로 갈수록 안정을 찾겠으나 부실이 누적된 일부 증권사와 건설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위험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ABCP 금리 10%대 봇물…기존의 세배…"시장은 연말께 안정화"
현재 시중 금리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뛰었다.
'AA' 신용등급 회사채 1년 만기 금리의 신용 스프레드는 지난 27일 기준 1.471%포인트로 지난 2009년 3월 27일(1.486%포인트) 이후 최고치다. 신용 스프레드는 회사채와 국고채 금리의 차이로, 확대될수록 시장이 회사채 투자 위험을 높게 본다는 뜻이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스프레드 확대는 기업 불확실성이 커져 안전한 곳으로 자금이 몰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며 "올해 AAA 등급 발행채가 많아 하위 등급 스프레드가 벌어진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AAA 등급의 한국전력은 올해 23조원 어치가 넘는 회사채를 발행했다.
부동산 시장도 위축되면서 강동구 둔촌주공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차환 발행 물량은 현대·롯데·대우건설이 대출채권에 대해 연대보증을 했지만, 연 12% 금리에 발행됐다. 이는 기존 발행 금리(3.55∼4.47%)의 3배에 이른다.
롯데건설이 지급보증한 플로리스리테일제일차는 지난 25일 3개월물이 16.83%에 거래됐다. 지난 26일 발행된 A1 등급의 3개월 만기 봉명산단제이차는 금리 13%에 발행됐다.
지난 25일 장외 채권시장에선 DB금융투자가 보증하고 만기가 이틀 남은 스펠바인드제16차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20%의 금리에 거래됐다.
증권사 채권운용 담당자는 "ABCP 시장이 안 좋아지자 신종 머니마켓펀드(MMF)와 신탁 랩에서 환매가 일어나면서 악성 매물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금력이 약한 중소기업들이 신용보증기금의 보증을 통해 발행하는 프라이머리채권담보부증권(P-CBO) 발행 금리도 9%대까지 뛰었다.
한 기관투자가는 "금리를 두 배로 얹어 준다고 해서 물량을 받아왔다"며 "시장에 조달금리의 두 배가 넘는 금리를 주는 물량이 넘쳐난다"고 시장 분위기를 설명했다.
"돈 되는 자산 팔고 CP로 돌려막기…일부 유동성 위기"
증권사들은 정부와 한국은행의 유동성 지원 조치로 단기시장이 안정되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일제히 비상 경영에 들어갔다.
이미 업계와 시장 안팎에선 자금줄이 마른 일부 중소형 증권사들이 실질적인 유동성 위기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기업어음(CP)을 연 8∼9% 금리에 발행해도 팔리지 않아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상장지수펀드(ETF) 등 돈이 될 만한 보유 자산을 내다 팔아 최대한 현금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증권업계는 기초여건(펀더멘털)이 나빠져 위기를 맞은 건 아니고 시장에서 자금이 돌지 않은 탓에 위험에 놓였다"며 "일부 중소형사는 현금을 마련하느라 분주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유동성이 부족한 증권사는 CP나 전자단기사채로 자금을 돌려야 하지만 거래가 부진해 금리를 두 배로 올려도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난 28일 채권시장에서 91일물 CP 금리는 연 4.58%로 올라 연고점을 경신했다.
이 관계자는 "CP 발행은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기업의 마지막 수단"이라며 "시장에 부동산 자산을 싸게 내놔도 팔리지 않아 돈이 될 만한 자산은 다 갖다 팔고 있다"고 말했다.
9개 대형 증권사들이 중소형사 지원을 위해 특수목적법인(SPC) 설립을 추진하고있으나 모집 자금은 1조원에 못 미치는 데다, 투입까지 시간도 걸린다.
더구나 유동성에 여유가 있는 대형 증권사들도 위기가 전이될까 노심초사하면서비상계획을 마련하는 한편 이자 부담 위험에 대한 스트레스 테스트 등 자체 위기관리에 들어갔다.
업계가 추산한 증권업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채무보증 위험 노출액(익스포져)은 40조원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당국의 유동성 지원 조치로 자금이 수혈되면 전체적인 시장은 점차 안정을 되찾겠지만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금융회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한국과 미국의 금리 인상 사이클이 오래 가기 어려울 것"이라며 "유동성 지원 방안 효과가 나오면서 시장은 연말께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의 유동성 지원책은 자금흐름 물꼬를 터주는 역할에 그쳐 부실이 심한 곳까지 흘러가기 어렵다"며 "시장은 안정을 찾아가겠으나 부실이 누적된 곳은 꼬리 자르기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소형 증권사 중에서 내년 1분기 말께 도산이나 회생절차를 밟는 곳들이 생길 수 있다"며 "부동산시장이 더 위축되면 부동산 PF 부실 심화로 건설·증권사뿐 아니라 캐피탈사 등 제2 금융기관 순으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indigo@yna.co.kr, srch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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