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동거,이제 끝내자" 단체장·산하 기관장 임기 일치 '붐'
지방정권 교체기마다 '용퇴 압박과 버티기' 소모적 마찰 반복
"행정 비효율, 피해는 시민이" 목소리 높아져…전북 등은 임기 강제에 신중
(전국종합=연합뉴스) "물러나실 생각 없습니까?"
지난 1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의 울산시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은 울산시설공단 이사장에게 강한 어조로 거취 표명을 요구하는 질문을 던졌다.
지방정권이 교체됐는데도 전임 시장이 임명한 이사장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데 대한 질책성 질의였다.
단체장이, 특히 소속 정당이 다른 단체장이 취임했으면 알아서 물러나야 한다는 압박이었다.
이 사례는 새 지방정부가 구성될 때마다 지역 정치권과 관가를 중심으로 되풀이되는 갈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새 단체장들은 믿고 쓸 수 있는 '내 사람'을 앉히려 하지만, 기관장들은 쉬이 자리를 내주려 하지 않는다.
이런 소모적 마찰과 갈등이 지방자치의 심각한 비효율을 초래한다고 판단한 자치단체들은, 지방선거로 선출된 단체장과 그 단체장이 임명하는 산하 출자·출연 기관장들의 임기를 일치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제도적 장치 마련 '러시'
포문은 대구시가 열었다.
대구시는 정무직 공무원, 산하 기관장·임원 임기를 단체장과 일치시키는 내용을 담은 '대구광역시 정무·정책보좌공무원, 출자·출연기관의 장 및 임원의 임기에 관한 특별 조례'를 전국에서 처음으로 지난 7월 제정했다.
임명권자와 정무직 인사 간의 임기 불일치로 발생하는 소위 '알박기 인사' 폐해를 해소하고, 단체장 교체 시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조례는 정무·정책보좌공무원은 새로운 시장이 선출되는 경우 시장 임기 개시 전 임기를 종료하도록 명시했다.
또 출자·출연기관의 장 및 임원은 임기를 2년으로 해 연임할 수 있으나, 새로운 시장이 선출되는 경우 남은 임기와 상관없이 시장 임기 개시 전 임기를 종료하도록 규정했다.
단체장 교체기에 사실상 단 하루도 '불편한 동거'를 허용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이다.
이후 서울시, 대전시, 울산시, 경기도 등에서도 비슷한 취지와 내용의 조례 제정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이밖에 충북도는 출자·출연기관 14곳 중 법이나 정부 고시로 임기가 정해진 7곳을 제외한 나머지 7곳에 대해 정관 개정을 요청했다.
이들 기관의 기관장 임기는 2년 또는 3년 등으로 제각각인데, 충북도는 모두 2년으로 맞추고 1년씩 연임하는 방향으로 정관을 개정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대전시의회는 법 개정을 촉구하는 건의안을 의결해 국회, 국무총리실, 중앙부처, 각 정당에 전달하기도 했다.
건의안에는 '단체장과 산하 기관장의 임기 불일치로 지난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으므로, 단체장과 기관장의 임기를 맞추는 지방공기업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용퇴 압박과 버티기, 감사까지 동원…소모적 갈등 되풀이
자치법규까지 두면서 산하 기관장의 임기를 규제하려는 노력의 배경에는, 지방정권 교체기마다 빚어지는 소모적 갈등을 더는 용인할 수 없다는 공통된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
울산의 경우 김두겸 시장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 6월 울산시장직 인수위원회를 운영하면서 산하 공공기관장들에게 '뼈 있는 메시지'를 던졌다.
공공기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기관장 대신 선임 간부가 배석해 보고하라"고 통보한 것이다.
당시 이를 두고 "기관장들이 단 한 명도 사임 의사를 밝히지 않고 버티기에 들어간 것에 대해 용퇴를 종용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다만 이런 압박에도 10월 말 현재까지 대다수 울산시 산하 기관장들은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더 간접적인 방법으로 압력을 가하는 사례도 있다.
일부 지자체는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강화하거나 대대적인 감사를 예고하면서 기관장들을 압박한다.
때로는 성격이 유사한 기관을 통폐합하는 등 구조조정에 나서기도 한다.
대외적으로는 이런 시도가 기관장 거취와 무관하다고 밝히지만, 관가에서는 전임 단체장이 임명한 기관장들을 압박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행정 비효율, 피해는 시민이…손발 맞추려면, 임기부터 맞춰야"
물론 기관장 임기를 강제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지자체도 있다.
부산시, 인천시, 광주광역시, 전남도, 전북도, 강원도 등이 해당한다.
전북도는 김관영 도지사가 산하 기관장의 임기를 보장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고, 자진해서 사퇴한 기관장들도 없다.
도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임기가 보장된 상황에서 강요에 의한 사퇴는 있을 수 없다"라면서 "새로운 전북을 추구하는 도지사의 철학과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다면, 각자가 판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부산시에서도 "기관장 임기가 2+1년이고 단체장 임기는 4년인데, 이를 인위적으로 맞추면 단체장 임기 말에 임명된 기관장은 1년만 재직한 뒤 물러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러나 지역 관가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단체장·기관장 임기 일치가 순기능이 많은 만큼 전향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점점 힘을 받고 있다.
김재홍 울산대 행정학전공 교수는 "지자체 산하 기관 중 주요 공사·공단 등의 기관장은 상위 법령에 의해 임기가 보장된다"라면서 "그렇다면 나머지 기관들에 대해서는 새로 선출된 단체장에게 기관장 임명 권한을 주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소모적인 정치적 트러블을 방지하는 측면에서도 단체장과 기관장의 임기를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다"라면서 "무엇보다 단체장과 기관장이 철학이나 정책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공공행정 서비스가 일선 현장에서 구현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 지자체 공무원은 "소위 '알박기 인사'나 '불편한 동거'로 불리는 문제들은 단순히 단체장과 기관장의 신경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정 비효율로 인한 피해를 시민들이 볼 수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라면서 "지자체와 산하 기관이 업무에 손발을 잘 맞추려면, 단체장과 기관장의 임기부터 잘 맞춰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연 고현실 심규석 황봉규 최종호 신민재 김동철 이덕기 민영규 허광무 기자)
hk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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