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변심 후 달라진 유동규의 입… 대장동 재판과 라쇼몽

"의리? 이 세계엔 그런 것 없더라. 앞으로는 법정에서 내가 아는 것 다 이야기하려고 한다"
지난주 여의도 정치권을 강타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발언은 이번 주 고스란히 서초동 법원으로도 이어졌습니다. 마음이 바뀐 유 전 본부장이 기존과는 다른 말을 쏟아내면서, 특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발언을 내놓으면서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재판 분위기도 180도 달라졌습니다.
사실 그동안 대장동 재판은 상황에 따라 입장을 달리 하는 피고인들의 진술로 인해 여러 차례 혼란을 겪었습니다. 이번 주 공판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오늘 '법정B컷'은 영화 '라쇼몽(羅生門)'을 떠올리게 하는 대장동 공판의 모습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180도 달라진 유동규… '성남시장'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오전 9시 37분, 검은색 정장과 노타이 차림으로 등장한 유 전 본부장은 기자들의 질문에도 아무런 말 없이 법정으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그의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그동안의 재판에서 수세적, 소극적 자세를 보여온 유 전 본부장은 이날 법정에서 작심이라도 한 듯 상당히 공세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유 전 본부장 측은 이날 공판 내내 증인으로 나선 정영학 회계사를 말로 쏘아붙였고, 그 말의 최종 목표는 '당시 성남시장', 현재 민주당 당대표인 이재명 대표였습니다.
| 22.10.24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공판 中 |
| 유동규 측 변호인 : 당시 증인은 '이재명 시장이 자신은 공원 하나만 하면 되니 다른 건 알아서 하라고 했다'는 이런 식의 (유동규의) 얘기를 남욱으로부터 들었다는 거죠? 그렇다면 유동규가 '시장이 그렇게 얘기하더라'라고 하면 그건 성남시장이 정한 것이지, 어떻게 유동규가 힘을 썼다고 진술하는 겁니까? 정영학 : 제가 내부 과정은 잘 몰랐고요. 유동규의 이야기는 다 (다른 사람에게) 전달받아 들은 이야기입니다. 유동규 측 변호인 : 녹취록만 보면 '시장이 정한 것이구나'가 자연스러운데, 검찰에서는 김만배와 남욱한테 어떤 얘기를 들었길래 유동규가 힘을 썼다고 하는 겁니까? 정영학 : 시장 얘기는 한 두 번 만 들어서 그렇게 답을… |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에 연루된 정영학 회계사는 이번 수사에서 검찰에 적극 협조한 인물 중 한 명입니다. 특히 그가 수년간 녹음해 온 '정영학 녹취록'은 대장동 수사는 물론 재판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죠.
그런 그를 유 전 본부장 측은 이날 공판 내내 강하게 추궁했습니다. 자신의 역할과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의 역할을 철저히 구분했는데, 본격적인 선긋기에 나선 것으로 보입니다. 유 전 본부장은 앞서 언론 인터뷰에서도 "같이 지은 죄는 같이 벌을 받고, 내가 안 한 것은 덮어쓰면 안 된다. 이재명 대표 명령으로 한 것은 이재명 대표가 써야 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습니다.
| 22.10.24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공판 中 |
| 유동규 측 변호인 : 사업지침서에 금융사를 한정하고, 건설사를 배제하는 실질적인 결정 과정이 성남시청 차원에서 한 것인지 아니면 성남시장이 성남도시개발공사로, 위에서 아래로 지시한 것인지 혹시 아세요? 정영학 : 그때는 몰랐습니다. 유동규 측 변호인 : 지금은 아세요? 정영학 : 위에서 내려온 지침이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유동규 측 변호인 : 유동규와는 상관없이? 정영학 : 네. 저는 그렇게 파악했습니다. |

그 뒤로도 유 전 본부장의 선긋기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 22.10.24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공판 中 |
| 유동규 측 변호인 : 증인은 당시 2014년 3월쯤, 사업 추진 방식을 수용이 아니라 혼용이 낫다고 생각했죠? 정영학 : 네. 혼용 방식을 생각했습니다. 유동규 측 변호인 : 결정의 실질적 권한은 성남시와 성남도시개발공사 중에서 어디에 있다고 생각했나요? 정영학 : 결정은 시에서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중략) 유동규로는 여태 혼용 방식이 잘 안 돼 수용 방식 문제를 해결하려면 유동규의 윗분들인 정진상 실장이나 이런 사람들이랑 협의를 했다고 해서… 유동규 측 변호인 : 누가 그분들하고 협의를 했나요? 정영학 : 김만배가 했다고 남욱한테 들었습니다. 유동규 측 변호인 : 유동규가 도와주기 때문에 해준다는 것이 아니라 그 위에 정진상 실장과 협의했기 때문에 성남시 측이 해주지 않겠느냐라는 의미로 증인이 기억한다는 건가요? 정영학 : 네 |
| 22.10.24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공판 中 |
| 유동규 측 변호인 : 증인은 '김만배가 유동규 갖고서는 (시를) 설득하는 것이 안 된다고 말하면서 정진상 실장을 언급했다'라고 검찰 주신문에서 언급하셨죠? 정영학 : 네. 유동규 측 변호인 : 유동규로는 설득이 안 된다는 말의 의미를 증인은 어떻게 이해해서 한 말인가요? 정영학 : 그때까지 구역계를 바꿔준다고 했는데 (유동규가) 구역계도 못 바꿔주고, 혼용 방식도 안 돼 그렇게 말했습니다. 유동규 측 변호인 : 유동규가 결정권자는 아니라는 전제네요? 정영학 : 그때 중요한 역할이 있었지만 그렇게 힘이 있는 건… 결정까지는 못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동규 측 변호인 : 설득이 안 된다고 했을 때 설득의 대상은, 누구를 설득한다고 이해했습니까? 정영학 : 그건 성남시인 것 같습니다. 유동규 측 변호인 : 구체적으로 시의 누구를 말하는 건가요? 정영학 :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시의 어떤 담당자 내지는 인허가권자인 것 같습니다. |
라쇼몽이 떠오르는 '대장동 재판'… 진실을 찾을 수 있을까?

그동안 대장동 공판에서 당시 성남시장인 이재명 대표에 대한 언급은 극히 드물었습니다.
하지만 유 전 본부장이 본인 스스로도 인정한 '변심' 직후 재판 분위기는 급격히 달라졌습니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언급이 부쩍 늘어났습니다. 그러자 국민의힘 곽상도 전 의원도 26일 열린 자신에 대한 50억 뇌물 혐의 공판 직후 기자들과 만나 "세월이 흐르니 이재명 게이트임이 드러나고 있다. 흥미롭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 22.10.28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 공판 中 |
| 남욱 : 증인(정영학)은 2015년 2월 내지 4월에 김만배가 '남욱은 25%만 받고 빠져라. 나도 12.5% 밖에 안되고, 나머지는 이재명 시장 측 지분이다'라고 해서 제가 반발한 것 관련해서 기억나는 것이 있나요? 정영학 : 2015년 2월 초라고 했는데 주주명부 상 보니 그런 기억은 없고, 그 말 자체도 기억이 없습니다. 그 이야기는 전혀 기억이 없습니다. |
유 전 본부장은 법정 안에서는 물론 밖에서도 폭로전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 22.10.24~28 유동규 발언 中 |
| 10.24 서울중앙지법 내 흡연 구역에서유동규 : 저는 진짜 형들인 줄 알았고 그렇게 생각했어요. 의리하면 원래 또 장비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럴 아무런 이유가 없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마음이 아주 홀가분하고 편하게 다 이야기할 수 있어요. 진짜 이제 무서운 게 없어요. 감옥 안에서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10.28 경기도 자택 인근에서 유동규 : 정영학 회계사는 자기 살 길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녹취록도 자신에 불리한 것은 빼놓고 (검찰에) 갖다 준 게 아닐까 생각해요. (이재명 대표도) 죄를 지었으면 흔적이 남고 다 밝혀질 것 입니다. |
1년 가까이 진행 중인 대장동 재판이 유 전 본부장과 남 변호사의 바뀐 태도로 인해 또다시 새로운 변곡점을 맞게 됐습니다. 좋게 말해 변곡점이지, 거칠게 말하면 다시 혼란에 빠진 것입니다.
대장동 재판은 앞서서도 올해 6월, 김만배 씨가 '50억 클럽은 허언이었다'라고 말해 혼돈에 빠졌습니다. 김만배 씨가 정영학 녹취록에 담긴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실은 허언이었다"라고 법정에서 주장하면서,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 논란이 일었고 무엇이 진실인지, 누구 말이 맞는지 판단해야 할 재판부의 고심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참고 기사 : [법정B컷]법꾸라지 김만배의 말바꾸기…'50억 클럽'이 허언?)
상당수의 재판이 그렇지만 대장동 재판을 보고 있으면 유독 영화 '라쇼몽'이 떠오릅니다. 20세기 최고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라쇼몽은 숲 속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무라이를 누가 죽였는지 진실을 찾아가는 내용입니다. 사건은 분명 하나지만 서로 다른 기억과 그에 따른 상반된 진술, 상황에 따라 바뀌는 진술 등이 뒤섞이면서 진실과는 점차 멀어지는 인간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그리고 '과연 진실은 얻을 수 있는 것일까'라는 두려움마저 줍니다.
대장동 재판에서 피고인들은 종종 "저는 그렇게 기억합니다" 또는 "저는 그렇게 전해 들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서로를 향해서도 '그렇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않느냐'를 묻기도 하고, 이에 '기억이 없다'라고 맞서기도 합니다. 물론 수년 전 사건을 기억에 의존해야 하니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시각각 상황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는 이들의 진술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피고인들의 달라진 입장, 그리고 상반된 주장으로 혼돈에 빠진 대장동 재판도 결국 언젠가는 끝나고 결론을 낼 겁니다.
판사(判事·Judge)를 '판단하는 자'로 정의한 것도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겸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180도 달라진 피고인들 속에서도 진실에 가까운 총체적 판단(判斷·Judge)을 내려야 할 대장동 재판부의 고심이 한층 깊어진 이번 주 대장동 재판이었습니다.
| 법정B컷: 뉴스가 놓친 법정의 하이라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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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송영훈 기자 0hoon@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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