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한경, 레고랜드 사태 전하면서도 문재인 정부 탈원전 탓
[민언련 신문 모니터 보고서] 취재원에 '증권사' 최다 등장, 증권사 도덕적 해이 비판 없어
[미디어오늘 민주언론시민연합]
레고랜드 사태로 금융시장이 경색되며 일어난 파장이 잦아들지 않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강원도의 채권 지급보증 거부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사업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신청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 불거졌는데요. 사실상 지급보증 거부로써 투자심리가 얼어붙어 금융시장에 자금이 돌지 않게 됐다는 것이죠. 그런데 또 다른 원인으로 은행의 은행채 발행과 더불어 한전의 한전채 발행이 지목됐습니다. 한전이 적자를 이유로 대규모 발행한 한전채가 금융시장에 흐르는 자금을 대거 흡수하면서 금융시장 경색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레고랜드 사태 왜 발생했나
강원도는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를 세웠습니다. 개발공사는 부동산 PF 대출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지어질 부동산(프로젝트)의 미래가치와 사업성을 평가하여 돈을 빌려주는 것을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라고 하는데요. 줄여서 '부동산 PF 대출'이라고 합니다. 개발공사의 부동산 PF 대출 과정에서 나온 대출채권은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란 금융상품으로 만들어져 채권자들에게 팔렸습니다. 지급보증은 강원도가 섰고, 개발공사는 레고랜드 사업자금 2,050억 원을 조달했습니다.
그런데 김진태 강원지사가 9월28일 법원에 강원중도개발공사에 대한 회생신청을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레고랜드는 외국 기업이 모든 수익을 가져가는 불공평한 계약구조'라고 비판하며, 2,050억 원의 지급보증책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회생신청의 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채권 만기일인 9월29일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거부했고, 김 지사 기자회견 1주일도 지나지 않아 개발공사 채권은 부도 처리됐습니다. 해당 채권은 강원도가 지급을 보증하는 채권으로 최고등급 'A1'을 받았는데요. 이후 강원도와 같은 지자체가 지급보증한 최고등급의 다른 채권은 물론, 그 이하 등급 채권에 대한 투자심리까지 얼어붙었습니다. 채권시장에 자금이 흐르지 않게 된 겁니다.
한전 적자 탈원전 탓으로 돌린 정부, 적자 메우려 채권 발행한 한전
'레고랜드 사태'로 불리는 금융시장 경색을 불러온 직접적인 책임은 강원도의 2,050억 원 지급보증 거부에 있습니다. 강원도 지급보증 거부가 이른바 '방아쇠를 당긴 역할'을 한 것인데요. 그렇다면 강원도 지급보증 거부가 곧바로 금융시장에 큰 혼란을 가져온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은행의 은행채 발행과 더불어 나타난 한국전력공사의 한전채 대규모 발행입니다. 한전은 올해 들어서만 23조 3,500억 원의 한전채를 발행했는데요. 2021년 한 해 발행한 10조 3,200억 원의 2배 넘는 규모입니다. 한전채 신용등급은 초우량등급 'AAA'인데요. 초우량등급 한전채가 대거 발행되면서 일반 회사들의 채권이 팔리지 않게 된 것이죠. 이처럼 강원도의 지급보증 거부로 투자심리가 얼어붙기 전부터 이미 금융시장엔 자금이 잘 돌지 않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던 겁니다.
한전이 한전채를 대규모로 발행한 배경에는 한전의 적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한전 적자 원인으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을 지목했지만, 사실과 다른데요. 뉴스타파는 <한전 적자가 문재인 정부 탈원전 탓이라고?>(6월16일 신동윤 기자)에서 '문재인 정부에서 탈원전은 없었고, 한전 적자가 탈원전 때문이라는 지적도 잘못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한전 영업 실적은 국제 유가 추세와 반비례 관계”인데, “(일부 원자력발전소가 정비 등을 문제로 가동 중단됐던) 2018년을 제외하고는 (원자력 발전이) 계속 오르는 추세”였던 문재인 정부 때문에 한전 최대 적자가 발생했다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또한 “(한전이) 올해 LNG와 석탄화력 발전소에 지불한 금액이 전년도 동기 대비 훨씬 많아진 게 확인”된다며 “화석연료 의존을 많이 하는 국내 전력 구조에서 국제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유가, 가스, 석탄 등 원료비가 급증”하면서 한전 적자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레고랜드 사태' 신문지면 193건 전수분석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언론이 레고랜드 사태로 인한 금융시장 경색 문제를 독자들이 알기 쉽게 보도하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김진태 강원지사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신청을 밝힌 다음 날인 9월29일부터 10월27일까지 '레고랜드'가 포함된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 지면기사 193건을 전수분석했습니다.
보도주제는 6가지로 분류했는데요. 김진태 지사의 회생신청이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을 예상한 보도는 '파장 예상', 레고랜드 사태의 진행상황과 강원도 대응, 정부 대책을 단순 전달하는 보도는 '상황 전달', 김진태 지사 결정의 부적절함 혹은 정부의 늑장대응과 부족한 대책을 비판하는 보도는 '김진태 지사 및 정부 비판', 부동산 호황 속 부동산 PF 대출채권 금융상품 투자로 수익을 얻어온 증권사의 도덕적 해이를 비판하는 보도는 '증권사 비판', 금융 건전성 회복을 위한 정부 대책을 주문하는 보도는 '대책 주문', 그 밖의 보도는 '기타'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1건에 등장하는 보도주제를 최대 3개까지 분류해서 중복 집계했습니다.
단순 전달 절반 넘고, 해결책 제시 전무
김진태 지사의 채권 지급보증 거부 기자회견 다음 날인 9월29일, 해당 소식을 전한 곳은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뿐입니다. 그러나 두 언론사도 채권 지급보증 거부로 인한 파장을 예상하지 못한 탓인지 김 지사 기자회견 내용을 단순 전달하는 데 그쳤습니다. 9월29일 강원도가 지급보증 거부를 공식화했지만, 10월1일 지면에서 강원도의 지급보증 거부로 인한 파장을 예상한 곳은 조선일보와 한국경제뿐입니다. 파장을 예상하고 금융당국에 대책을 주문한 것은 10월4일 한겨레 사설이 유일했습니다. '파장 예상'은 전체 보도 중 단 2.6%(6건)에 불과했는데요. 레고랜드 사태가 몰고 온 파장이 작지 않다는 점을 고려할 때, 언론이 심각성을 예상하고 충분한 대책을 촉구하지 않은 것은 아쉽습니다.
레고랜드 사태를 전하는 신문지면의 보도주제는 '상황 전달'이 51.3%(117건)로 가장 많았습니다. 다음으로는 '김진태 지사 및 정부 비판'이 26.8%(61건)를 차지했습니다. 심층분석은 없었고, 해결책 제시도 없습니다. 그나마 해결책 제시에 가까운 보도라 할 수 있는 '대책 주문'은 5.7%(13건)에 그쳤습니다.
레고랜드 사태에서도 고개 내민 보수언론의 탈원전 탓
레고랜드 사태로 금융시장이 경색되는 데 강원도의 지급보증 거부 외에 한전의 대규모 한전채 발행도 책임이 크다는 비판은 모든 언론이 전했습니다. 문제는 한전이 한전채를 왜 대규모로 발행하게 됐는지에 대한 원인 분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요. 대규모 한전채 발행은 한전 적자 때문인데 윤석열 정부는 한전 적자 원인으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정책을 지목했습니다. 보수일간지는 이러한 주장에 동조했는데요. 보수일간지의 탈원전 탓은 레고랜드 사태를 전하면서도 계속됐습니다.
매일경제는 <시장왜곡 방치, 채권시장 혼란 키웠다>(10월21일 한우람김명환 기자)에서 “에너지 정책 실패로 적자에 시달리는 한전(이)…채권을 발행하며 줄어든 시중 유동성을 빨아들였다”고 보도했습니다. 대규모 한전채 발행의 배경이 된 한전 적자 원인을 '에너지 정책 실패', 즉 문재인 부의 탈원전정책이라고 지목한 겁니다. 중앙일보는 <시론-레고랜드발 '돈맥경화' 사태 해법>(10월25일 민세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에서 “한전의 적자가 어느 정도라도 해소되도록 전기요금을 발전 원가 등 현실에 맞게 올려야 한다”면서 “어차피 전 정부가 만든 문제의 뒷수습은 현 정부의 몫”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전 적자가 전 정부, 즉 문재인 정부에서 만든 문제라는 겁니다. 조선일보는 <사설-5대 그룹까지 '돈맥 경화', 실물 침체 겹치는 내년이 더 위험>(10월27일)에서 한국전력이 부실화된 데는 “전 정부 시절 탈원전”이 있다며 한전 적자 원인을 문재인 정부 탓으로 돌렸습니다. 한국경제는 <조일훈 칼럼-왜, 언제나, 정치는 경제를 망치나>(10월27일 조일훈 논설실장)에서 “한전이 막대한 적자에 봉착한 것은 문재인 정부의 무모한 탈원전”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뉴스타파를 비롯해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여러 언론사는 윤석열 정부와 보수일간지의 주장이 사실에 맞지 않다고 밝혀낸 바 있습니다. 또한 한전 적자 원인이 연료비 상승을 전기요금에 반영하지 못하는 구조에 있는 만큼 여야가 협력해서 전기요금 개편에 나서는 것이 한전 적자 해결을 위한 근본적 해결책이라는 데 전문가들은 물론 한전도 동의하며 정치권에 요청하고 있습니다.
레고랜드 사태, 취재원 '증권사' 최다 등장
민주언론시민연합은 9월29일부터 10월27일까지 '레고랜드'가 포함된 6개 종합일간지와 2개 경제일간지 지면기사 193건에 등장한 취재원을 6개 유형으로 분류했습니다. 증권사 소속 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임원 등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 증권사 관계자를 제외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권 기타', 기업 관계자는 '기업', 정부부처 관계자는 '정부', 경제학 교수 등 학계 인사는 '학계', 그 밖의 유형은 '기타'로 분류했습니다.
분류 결과, 레고랜드 사태 지면기사에 가장 많이 등장한 취재원은 '증권사'로 38.6%(76회)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신문별로 살펴보면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각각 53.8%로 증권사 취재원 등장 비중이 가장 높습니다. 다음으로는 매일경제가 44.8%입니다.
증권사의 도덕적 해이 아랑곳없어, 증권사 비판은 경향한국뿐
경향신문과 한겨레를 제외한 일간지에서는 취재원 중 '증권사'가 가장 많이 등장했습니다. 레고랜드 사태 지면기사에서 취재원들은 주로 정부 대책을 평가하고 보완점을 지적하는 전문가 역할을 했는데요. 중요한 건 취재원 중 '증권사'가 이러한 전문가 역할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 여부입니다.
레고랜드 사태로 금융시장이 경색되며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게 바로 부동산 금융시장입니다. 2017년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부동산 경기가 활성화되며 부동산 PF 대출도 활발해졌습니다. 부동산 PF 대출 과정에서 나온 대출채권은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만들어져 채권자들에게 팔렸는데요. 대형증권사들은 다양한 금융상품 중에서도 주로 수익성이 높은 상품의 매입을 약속하고 채무 지급을 보증해 수익을 극대화했습니다. 최근 들어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경기가 하락세에 접어들며 부동산 PF 대출 관련 금융상품의 채무 지급보증 부담도 커졌습니다. 따라서 강원도 지급보증 거부에 질타가 쏟아지는 한편, 부동산 PF 대출 시장을 키워온 대형증권사 책임론도 대두되고 있죠.
10월20일 국회정무위원회 소속 양정숙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강원중도개발공사의 부동산 PF 대출 과정에서 나온 대출채권에서 파생된 금융상품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투자한 증권사는 신한투자증권, IBK투자증권, 대신증권,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 유안타증권, KB증권, DB금융투자 등인데요. 레고랜드 사태 관련 지면기사에 등장한 '증권사' 전문가는 신한투자증권 연구원,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위원, 대신증권 연구위원, 삼성증권 연구원, NH투자증권 연구원, 유안타증권 분석가, DB금융투자 연구원 등입니다. 금융 건전성 회복을 위한 정부 대책을 평가하고 보완점을 지적하는 전문가 취재원으로, 이해당사자이자 도덕적 해이로 비판받은 증권사 연구원이나 분석가가 등장하는 게 맞는지 의문입니다. 8개 일간지 중 증권사 비판 기사를 낸 곳은 경향신문과 한국일보뿐입니다.
- 모니터 대상 : 2022년 9월29일~10월27일 '레고랜드'가 포함된 경향신문,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지면기사 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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