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위적 감산' 없다는 삼성전자…반도체 '치킨게임' 재연되나
삼성 설비투자, 공정 전환에 초점…과거 양상과는 다를 듯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혹한기로 접어든 와중에 메모리 업계 1위 삼성전자가 '인위적 감산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자 반도체 '치킨게임(chicken game)'이 재연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치킨 게임이란 두 대의 차량이 서로 마주 보고 달리며 누가 핸들을 돌려 피하느냐로 승패를 결정하는 게임을 말한다.
흔히 산업계에서는 수익성을 고려하지 않고 설비 증설을 가속하는 출혈 경쟁을 치킨 게임에 비유한다.
원가경쟁력 자신감 삼성전자 "인위적 감산 없다"…다른 업체는 속속 감산
실제 D램 시장에서는 과거 치킨 게임이 벌어진 바 있다.
극한 경쟁 끝에 D램 가격이 곤두박질치면서 2009년 독일 키몬다, 2010년 일본 엘피다 등이 D램 산업의 주 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러면서 D램 시장에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3사의 시장 점유율이 95%를 넘는 과점 체제가 굳어졌다.
치킨 게임을 다시 '소환'한 건 삼성전자 콘퍼런스콜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6일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메모리 반도체 투자를 줄이지 않겠다는 기조를 명확히 했다.
한진만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부사장은 "인위적 감산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기본적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중장기 수요 대응을 위해 적정 수준으로 인프라 투자는 지속한다"고 강조했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나 마이크론 등이 투자 축소 내지는 감산을 발표한 것과 대비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다시금 치킨 게임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시장 불안감이 고조되면서 SK하이닉스 주가가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수요 위축과 과잉 재고로 반도체 가격이 급락하는 상황에서 감산이 없다면 반도체 가격 하락이 더 가속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걱정이 크다.
낸드 부문에서 치킨 게임이 펼쳐질 가능성이 큰 이유는 시장 구조 때문이다.
낸드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1위를 유지하는 가운데 SK하이닉스가 솔리다임(옛 인텔 낸드 사업부)을 인수하면서 시장 2위로 올라서긴 했으나, 업체 간 점유율 격차가 크지 않은 상황이다.
시장조사기관인 옴디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삼성전자의 낸드 시장 점유율은 33.3%, SK하이닉스는 20.4%를 기록했다. 이어 일본 키옥시아(16.0%), 미국 웨스턴디지털과 마이크론(각각 13.0%) 등 순이다.
하지만 과거와 같은 치킨 게임 양상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삼성전자의 설비투자가 줄지 않는 건 증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기술 투자와 공정의 고도화를 위한 것이고, 반도체 업계의 특성상 공정 전환 과정에서는 생산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삼성증권의 황민성 테크팀장은 "삼성전자의 경우 극자외선(EUV) 도입을 경쟁사보다 서둘렀지만 그만큼 전환과 수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며 "이를 만회하려면 전환을 서둘러야 하고 이로 인해 캐파(생산능력)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전자의 설비투자가 줄지 않는 것은 기술 투자가 늘기 때문"이라며 "지속적 가치 창출을 위한 기술 투자가 더 절실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한진만 부사장은 콘퍼런스콜에서 "올해나 내년의 캐펙스(설비투자)가 직접적으로 내년 비트 생산으로 직결되진 않는다"며 "캐펙스 숫자만으로 단기 생산이나 공급을 전망하는 것은 예전만큼은 의미가 있다고 보긴 어렵다"고 부연했다.
증권가에서는 위기 속에서 삼성전자의 입지가 더 공고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경쟁업체들이 수익성을 위해 감산에 돌입하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우월한 원가경쟁력을 앞세워 물량을 유지한다면 시장 지배력은 더 강화될 수 있다.
삼성전자로서는 '꽃놀이패'를 쥐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 업황 부진은 4분기에도 지속되겠지만 원가경쟁력 덕분에 이익의 감소 폭이 경쟁사보다 현저히 적을 것"이라며 "시장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선두업체로서의 경쟁력이 잘 드러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DDR5 등 고부가 제품 승부수
반도체 혹한기를 이겨낼 전략에도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고부가 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돌파구 마련을 위해 부심하고 있다.
SK하이닉스의 승부수는 DDR5다.
SK하이닉스는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내년은 DDR5 시장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향후 수요 성장을 주도하게 될 DDR5, LPDDR5와 HBM3 등 신제품 양산을 위한 필수 투자는 지속해 고객 수요 대응에 차질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역시 DDR5나 LPDDR5X 등 신규 인터페이스 수요, 고용량 제품 수요 증가세에 대응해 지속가능한 시장 리더십을 확보할 계획이다.
또 차량용 반도체에도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한 부사장은 "메모리 시장 상황이 쉽지 않지만 이럴 때일수록 신규 수요처 발굴과 대비가 중요하다"며 "전기차 시장 확대에 따른 차량용 반도체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으며 중장기적 관점에서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2030년 이후에는 오토모티브가 서버, 모바일과 함께 3대 응용처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앞서 삼성전자는 이달 초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열린 '삼성 테크 데이 2022' 행사에서 2025년 차량용 메모리 1위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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