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금융리더]⑧ “입장 바꿔 생각하라”… 김은희 IBK기업은행 금융소비자보호그룹 부행장

정민하 기자 2022. 10. 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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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첫 복수 여성부행장 시대 열어
”입장 바꿔 생각하면 결국 통해”
이젠 모든 영역에서 여성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
처음 지점장이 됐을 때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달성해야 할 실적은 많은데, 직원들이 적극적이지 않아 조급했죠. 그래서 한 달 정도 매일 오전 7시에 회의를 하면, 직원들이 ‘덜 힘들어지려면 더 빨리 일하자’고 생각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힘들다’, ‘근무하기 싫다’, ‘우리 지점장 너무하다’는 피드백이 돌아오더군요. 입장 바꿔 생각해보니 제가 어렸을 때 이런 사람은 되지 말자고 생각했던, 너무 싫어했던 선배 지점장의 모습을 제가 그대로 하고 있었습니다.

김은희 IBK기업은행 금융소비자보호그룹 부행장은 1988년 입행 후 8년간 네 번의 지점장을 하며 경영 평가에서 거의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이 성과를 인정받아 이후 강동지역본부장을 지냈고, 1년 만에 부행장으로 승진해 기업은행이 배출한 다섯 번째 여성 부행장이 됐다. 하지만 김 부행장은 “과정은 절대 순탄치 않았다”고 회상했다.

김은희 IBK기업은행 금융소비자보호그룹 부행장이 10월 6일 서울시 중구 을지로 IBK 기업은행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박상훈 기자

김 부행장은 “첫 지점장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뜨끔뜨끔 아프다”고 회상했다. 그는 “당시 롤모델로 삼을 만한 남성 지점장들은 대부분 권위 있고 힘 있음을 강조했다 보니 이런 결과가 난 것”이라며 “역지사지(易地思之)로 과거 지점장을 모셨던 직원이었을 때로 돌아가 같이 일하고 싶었던 상사를 떠올리며 태도를 180도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을 자주 칭찬하고, 격려하고, 그들과 같이 가고 싶다”고 강조했다. 한 명 한 명 이야기하며 장점을 찾아 인정받고 있다는 기분을 느낄 수 있게 했다”면서 “그랬더니 실적에 대한 드라이브를 강하게 하지 않아도 직원들이 알아서 해, 지점을 떠날 때 경영 평가 1등을 달고 나왔다”고 전했다. 기업은행은 비슷한 규모의 지점 10~15개를 모아 1년에 세 번씩 1~5등급으로 평가한다.

지난 6일 서울시 중구 기업은행 본사에서 김 부행장을 만났다. 1965년생 김 부행장은 기업은행 입사 후 영업 현장에서 23년, 본점(인사, 인재개발, 카드, 퇴직연금)에서 10년을 근무했다. 4개 지점(화성정남지점, 분당수내역지점, 분당파크뷰지점, 영통지점) 지점장과 강동지역본부장을 거쳐 지난 2021년 금융소비자보호그룹장(부행장)으로 선임됐다.

다음은 김 부행장과의 일문일답.

스무 번이 넘는 지점 경영 평가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

“운이 좋게도 직원들이 열심히 해줬다. 경영 평가 항목이 매우 많기 때문에 절대 혼자 힘으론 못한다. 새 점포를 가면 직원들 편에서 장점을 찾아내고, 동기를 유발하려 노력한다. 이런 노력이 직원들과 한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 생각한다.

한 점포에 계약직에서 전환된 나이가 좀 있는 직원이 있었다. 처음엔 무기력해 보였는데 어느 날부터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남아서 자꾸 더 일하려고 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동안은 무조건 뭘 하라고만 하니 의욕이 안 생겼는데 새 지점장이 은행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은행이란 무엇인지 동기부여를 시켜주니 왜 일을 해야 하는지가 명확해지면서 활력이 생겼다고 하더라.

사실은 이 점포가 규모가 큰 곳이라 목표 실적을 달성하기 어려웠다. 직원들이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일단 올해는 이 상태로 만족하고 내년으로 미룰지 회의에서 물어봤다. 그런데 직원들이 ‘지점장님, 너무 아까워요. 우리 상반기 때 참 잘했는데, 한번 해봐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먼저 말을 했다. 한 달 한 달 실적을 올려 결국 마지막 평가 때 경쟁 점포들 사이에서 1등을 했다.”

일러스트=손민균

지점장 시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중소 제조 기업이 많던 화성정남지점에서 지점장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가족경영 소규모 업체부터 중견업체까지 다양한 고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랐던 점은 의외로 은행 거래를 어떻게 해야 좋은지 모르는 업체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할이 명확해졌다. 이 기업들에 어떻게 대출을 받고, 금리를 낮출 수 있는지 등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은행서 더 좋은 조건으로 거래하게 되면 업체 성장에 도움이 되고, 그러면 은행 입장에선 실적이 커지는 선순환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업 컨설턴트 역할을 했고, 기업들과 동반 성장하며 뿌듯함을 느꼈다.”

남성이 다수인 상황에서 여성으로서 어려움은 없었나.

“과거 금융권은 여성 직원이 결혼하면 퇴사하는 문화가 있을 정도로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업무분장부터 승진, 이동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오랜 기간 유리천장을 경험했다.

한 단계 위로 올라가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동기는 물론 더 늦게 들어온 남자 직원들이 먼저 승진하는 것을 보면서 자존심도 상하고 힘들었다.

그러던 중 지점장을 맡으면서 ‘제대로 한 번 살아보자’라는 생각이 들게 됐다. 역할이 커지니 점차 기회도 보이고, 환경적으로도 여성 리더들이 하나 둘 보이게 됐다.

2013년 기업은행서 첫 여성 은행장이 나오고, 이후 점차 성별보다 능력과 성과를 중시하는 분위기로 변화하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다. ‘여성도 이제 이 단계까지 갈 수 있는 시대가 왔다. 한 번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내 은행권에서 처음으로 복수 여성 부행장 시대를 열었다.

“사회 전반적으로 능력과 성과 중심의 분위기로 변화하고 있다. 동시에 경영진의 의지 또한 중요한 요인이라 생각한다. 본부장(부행장) 인사를 앞두고, 개인적으로 지점 운영 실적 등 성과로 자신이 있었지만, 정작 후보엔 남성들만 거론됐다.

이렇게 마무리하는 것도 괜찮다고 애써 위로할 무렵 윤종원 은행장님이 부임하시면서 반전이 생겼다. 윤 행장님은 성과와 역량 위주의 보상 인식이 확실하고, 다양성과 양성평등을 강조했다. 그때부터 같이 일하던 직원들도 ‘우리 지점장이 부행장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었다. 결국 모두의 예상을 깨고 부행장으로 선임됐고, 그날 직원들과 얼싸안고 울었다.”

8월 1일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IBK기업은행 창립 61주년 기념식’에서 윤종원 기업은행장이 기념사를 하고 있는 모습. /IBK기업은행 제공

지점장 보임을 앞둔 직원들이 받는 연수의 단골 강연자라던데.

“나는 따라 할 수 있는 롤모델이 사실상 없어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그러나 후배들은 같은 실수로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동안 쌓아왔던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유한다.

사회초년생 때를 돌이켜보면 본인의 업무 평가가 궁금했고, 상사의 작은 칭찬 하나에 기운을 내서 일했었다. 그래서 지점장 보임을 앞둔 직원들에게 칭찬 많이 해주고, 인정한다는 느낌을 자주 주라고 이야기한다. 조언대로 했더니 좋은 결과를 얻었다는 후배들의 말을 들으면 뿌듯하다.”

금융소비자보호그룹장 취임 후 소비자보호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금융소비자보호법(금소법) 시행으로 전산 시스템, 업무처리 프로세스 등 은행 업무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있었다. 법 시행 초기에는 변경된 내용들이 잘 정착될 수 있도록 관련된 내용들을 정비하고, 직원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인식을 전환하는 데 중점을 뒀다.

이후에는 사전적·사후적인 점검 업무를 강화해 소비자에게 불이익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고, 위법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속해서 모니터링하고 있다. 최근에는 고령자 및 장애인 등 금융취약계층 보호 강화에 중점을 두고 업무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 금융업무의 디지털 전환, 신종 보이스피싱 유형의 등장 등 그 어느 때보다 금융소비자보호가 중시되고 있다. 앞으로 포용금융을 실현하기 위해 금융취약계층에 대한 보호를 더욱 강화해 나갈 예정이니 많은 관심과 격려를 부탁드린다.”

금융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 부탁한다.

“은행은 단순히 영업점 창구에서 근무하는 것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다양한 업무가 마련돼 있다. 또 본인의 희망과 노력에 따라 얼마든지 그런 커리어 패스를 쌓아갈 기회가 열려 있다.

또한 다른 직종에 비해 금융권에서는 여성의 섬세함과 따뜻함을 필요로 하는 업무들이 많이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도전해보길 응원한다. 나아가 이제는 특정 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모든 영역에서 여성의 리더십이 필요한 시대가 됐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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