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학의 미리미리] 그럼 나는 "트랜스 고양이"로 인정해줘라!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입력 2022. 10. 30. 05:45 수정 2022. 10. 31.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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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오늘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페미니즘 운동과 트랜스젠더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페미니즘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던 시기가 있었다. 당시 일부 여성운동계, 여성학계 인사들 중에서도 그러한 주장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차별이자 폭력'이라고 말하지 않았다(혹은 못했다). 첫째로 좌표를 찍고 공격을 가하던 세력들로부터 방어적인 선택을 해야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둘째로 '페미니즘의 판이 커지는 것이 중요하다'며 트랜스 배제 페미니즘에 대해 'n개의 페미니즘이 있다'고 옹호론을 펼치는 경우가 있었다. 다른 소수자 정체성을 배제하고 차별과 억압을 조장 또는 방조했던 점에 대해 이제는 제법 반성적인 목소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많이 늦었지만 다행이다.

한국다양성연구소에도 이 사례와 연결된 질문이 많이 들어온다. “동시대 젠더기반폭력 사건 이후 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인지하게 되었고,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소셜 미디어의 페미니트스들을 보며 공부하고 있는데, 그 중에 '페미니즘 운동에서 트랜스젠더는 빼고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성소수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보니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같은 식이다.

내 안의 교차하는 권력들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 억압, 폭력의 구조성을 깨닫고 페미니스트가 됐는데 아직 성소수자가 경험하는 차별, 억압, 폭력의 구조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성평등 인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이주민 인권운동, 장애인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성평등인식이 부족해서 여성과 성소수자에 대한 생각이 왜곡돼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성소수자, 이주민,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왜곡돼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사회적 정체성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교차하는 권력에 대해서 계속 사유하고 실천해야만 한다.

그런데 아직 모를 수 있다는 것과 적극적으로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언행을 일삼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수많은 정체성 가운데 하나의 정체성이 사회적으로 억압을 받는 그룹(억압그룹)에 속한다 하더라도, 다른 정체성에서는 누군가를 차별하고 억압할 수 있는 사회적으로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특권을 갖는 그룹(특권그룹)일 수 있다. 하나의 정체성에만 몰두하여 다른 소수자 정체성을 외면할때 폭력은 쉽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장애인이 성소수자를 차별한다든지 시스젠더 여성의 트랜스젠더 여성에 대한 차별 등이다. 하나의 정체성이 억압그룹에 해당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른 억압그룹에 속해 있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쉽게 이는 간과된다.

▲ 한국다양성연구소 “성별을 왜 마음대로 바꾸나요? 그러면 저는 트랜스고양이 할래요!” 유튜브 갈무리. 사진=한국다양성연구소 유튜브 채널

차별의 이유를 '창작'하는 사회

'여자도 아닌데 “여자가 되고 싶다” 이러는 사람들을 여자라고 인정해줘야 하는 거면, 나는 고양이 할테니까 “트랜스 고양이”로 인정해줘라' 이와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말은 보통 트랜스젠더를 비하하고 조롱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가끔은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들 중에서도 마지막까지 해결하지 못한 문제 중 하나라며, '이런 공격성 질문이나 발언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어야 하나요?'라고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 이 질문은 인간과 고양이처럼 여성과 남성이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질문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인간은 딱 두 가지 성별로 나눌 수 있고 그게 당연하다는 성별이분법에서 유래한다.

과거 큰 인기를 끌었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와 같은 책 그리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아들 성교육은 달라야 한다', '남아 미술교육은 달라야 한다'는 주장을 하며 여성과 남성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여기는 성별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입각한 책과 강연 등의 교육이 유행을 하고 있다. 가부장제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누구에게 유리하게 작용하게 될까? 그렇다. 남성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 여성과 남성이 완전히 다른 존재라고 여기는 사회일수록 두 성별 간에 우열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기 쉽다. 이는 결코 여성에게 이롭지 않다. 18세기에는 남성이 여성보다 뇌의 크기가 크다며 남성이 여성보다 더 우월한 존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불과 백여 년 전만 해도 이렇게 여성과 남성 사이에 발견되는 차이는 곧 우열의 증거가 됐다. 종교, 정치, 경제를 막론하고 수없이 많은 비과학적 주장들이 여성에 대한 차별적 제도로 구체화되었다. 가부장제를 합리화했다. 이는 백인들이 흑인 노예제도의 폭력성을 숨기고, 합리화하고자 “흑인은 백인에 비해 열등하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그에 대한 근거를 만들어 댔던 역사와 닮아있다.

성별이분법이 만드는 나비효과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여성은 감정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반면, 남성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기는 성통념을 유지하며, “그냥 여성과 남성의 다른 점을 이야기한 것 뿐이지 않냐”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남성'들은 '사사로운 감정과 관계에 얽매이기 쉬운 여성'과 다르기 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의 임금노동에 적합하며, 이에 따라 회사에 대한 헌신도가 더 높다'는 생각과도 연결되기 쉽다. 또한 '의사결정권자'에 적합한 것은 '남성'이라는 생각으로도 이어진다. 이런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만들어지는 연결 고리들은 현존하는 '고위직 성비 불균형'과 '성별에 따른 임금 격차'를 합리화하는 이유, 근거로 쓰인다.

첫째, 성별은 오직 두 가지(여성과 남성) 밖에 없다는 가정 그리고 둘째,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둘 중 하나의 성별로 확실하게 정해져서 태어난다는 가정이 '왜 정해진 것을 마음대로 바꾸냐'는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위 두 가지 가정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 질문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인간의 성별은 두 가지만 있지 않다. 성별은 사실 '빛의 스펙트럼'처럼 다채롭다. 행정상 편의성과 통제의 용이성을 위해 억지로 둘로 나누어 놓은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둘 중 하나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은 난감하다. 아주 답답하다. 이 세상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은 기분, 어디에서도 나를 환대해 주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이다.

▲ 사진=Gettyimagesbank

공고한 성별이분법과 젠더체제

UN(유엔)에서 연구, 조사한 결과 어느 시대 어느 사회에서나 1.7%의 사람은 간성(Intersex, 인터섹스)으로 태어날 확률이 있다고 한다. 간성은 여성과 남성 둘 중 하나로 구분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다. 여러 유형이 있다. 대표적인 몇 가지 유형만 살펴보면 첫째로 외부성기를 음경과 음순 둘 다 가지고 있거나 모호하게 섞여있는 형태로 가지고 있는 이중성기자가 있다. 둘째로 성염색체와 외부성기모양이 다른 경우도 있다. 흔히 성염색체가 XX인 사람을 여성이라고 부르며 음순(그리고 질, 포궁, 나팔관)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XX인 사람들 중에는 음경(그리고 고환)을 가진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XY인 사람을 남성이라고 부르며 음경(그리고 고환)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XY인 사람들 중에는 음순(그리고 질, 포궁, 나팔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다. 셋째로 성염색체라고 불리는 스물 세 번째 염색체는 XX와 XY 두 가지 형태 이외에도 XO, XXX, XYY, XXXY 등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다. 성별은 절대 둘로만 나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외부성기 모양만으로 사회가 지정해 준 지정성별과 자신이 인지하는 자신의 성별(성별정체성)이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애초에 두 개가 아닌 것을 두 개로 정해놨으니 그럴 수밖에!

이 사회는 간성을 없애고 있다. 수술(Normalization, 정상화 수술)을 통해 사람들의 몸에서 없앤다. 출생 신고 서류에 표시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서류에서 없앤다. 모든 것을 여성과 남성 둘로 나뉘어 놓음으로써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삶의 양식에서도 없앤다. 외부성기 모양 만으로 성별을 정해주고 그렇게 지정된 성별에 맞는 성격, 외모, 할 일 등이 있다고 믿게 만들고 지정성별과 자신의 성별정체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cis-gender)만이 정상이고 이성애자만이 정상이라고 여기게 만든다. 시스여성과 시스남성은 결혼과 출산을 해야 한다. 이는 제도와 문화로 유지, 강화한다. 이 모든 과정이 정상이고 당연하다고 여겨져야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 속 기득권자들이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인구를 통제하기 쉽다.

해방의 모습은 서로 다르다

탈코르셋(탈코)라는 중요한 논의가 있다.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외모에 대한 억압을 '코르셋'이라고 표현하며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운동이다. 탈코는 해방이다. '반드시 숏커트를 해야 탈코'라기 보다는 '머리를 자르든 말든 기르든 말든'이 탈코다. 무조건 숏커트를 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다면 무조건 긴 생머리를 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것을 해방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사람마다 강요받으며 살아온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해방된 모습 또한 다를 수 있다.

여성에게 강요되는 성역할 고정관념이 없어지면(여성들이 여성적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을 수행하지 않으면) 성차별은 없어질 것이고 따라서 성별정체성이라는 것도 논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주장은 둘로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 먼저 여성성, 남성성이라는 이름으로 임의로 구분되어 획일적으로 강제되는 성격, 외모, 하는 일 등과 관련한 성역할 고정관념을 줄여가야 한다. 그 부분은 정확하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사람의 성별은 외부성기의 모양이나 성염색체 등에 의해서 여성이나 남성 둘 중 하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장 편하게 느끼는 자신의 성별정체성이 그 사람의 성별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트랜스젠더는 어떤 성별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자신이 인지하는 성별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안전하게 존엄하게 살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트랜스젠더 중에는 자신의 몸(그 중에서도 특히 외부성기 모양)에 디스포리아(불편감)를 느끼는 사람도 있고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성확정수술을 원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원하지 않기도 한다. 성확정수술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의료보험을 통해서 할 수 있도록 하고 성확정수술을 원치 않는 사람들은 하지 않고도 자신이 인지하는 성별정체성을 가지고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교육, 문화, 제도에 변화가 필요하다.

모두의 해방을 위해 함께 싸우자

트랜스여성의 존재가 시스여성에게 해롭거나 위험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성소수자에게 좋은 것이 여성에게 좋다'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에게 좋은 것은 성소수자에게도 좋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시스젠더 이성애자 남성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를 가두고 있는 젠더체제(성별이분법, 시스젠더중심주의, 성역할고정관념, 이성애중심주의, 남성중심주의, 정상가족이데올로기)는 모두 한 세트다. 성별이분법과 젠더체제가 어떻게 가부장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과 성소수자 모두에게 억압적으로 작동하는지 이해하고(가부장제 자본주의는 사실 대다수의 남성들에게도 억압적이고 폭력적이다) 모두의 해방을 위해 우리 모두 힘을 합쳐 함께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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