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레고랜드 사태' 여야, 공방…이재명이 '배째라 원조'?
김진태-최문순 전·현직 지사 '책임론'
"거대 양당, 정략적 싸움만"
[더팩트ㅣ국회=박숙현 기자] "'김진태 사태'라고 부르는 지방정부의 채무불이행선언, 부도선언, 이것으로 지금 대한민국의 자금시장에 대혼란이 초래되고 있다.(이재명 대표 10월 26일 최고위 발언 中)"
"성남시 모라토리움을 스스로 정치쇼였다고 인정한 이재명 당대표나 그런 당대표를 둔 민주당이 김진태 지사를 수사해라 감사해라 공세수위를 높인다. 역대급 내로남불.(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 10월 26일 SNS글 中)"
자본시장 유동성 경색이 정치권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소속 김진태 강원지사가 레고랜드 사업의 자산유동화어음(ABCP) 지급보증 철회를 선언하며 빚어진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를 두고, 민주당이 '책임론'을 들고나오면서다. 민주당은 김 지사로 인해 자본시장에 불신이 팽배해져 자금경색 현상이 심화했고, 윤석열 정부는 이를 사실상 '방치'했다고 집중 공세를 펼치고 있다. 특히 김 지사가 전임 도지사 행적을 지우기 위해 정치적 판단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뒷북 대응하면서 '혈세 50조 원'을 투입했다고 지적한다.
반면 정부·여당은 김 지사의 행정조치가 성급했던 부분은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금융시장 위기를 야당이 정쟁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입장이다. 이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모라토리엄 선언'과 크게 다를 것 없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레고랜드 사태'는 강원도가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한 회생 신청을 결정한 게 시발점이 됐다. 강원중도개발공사는 레고랜드 태마파크 개발을 위해 최문순 전 지사 시절인 2012년 8월 '엘엘개발주식회사'라는 이름으로 출범했다. GJC는 2020년 레고랜드 사업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아이원제일차'라는 특수목적회사(SPC)를 설립해 2050억 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CP)을 발행했다. ABCP란 부동산 등 관련 자산을 담보로 발행되는 어음이다. 그러나 GJC가 만기 상환을 못하게 되자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철회하고 법원에 강원중도개발공사의 회생을 신청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김 지사는 만기 하루 전인 지난달 28일 "중도공사가 빌린 2050억 원을 (강원도가) 대신 갚는 사태를 방지하겠다"며 회생 신청 계획을 밝혔다. 결국 해당 증권의 신용등급은 'A1'에서 'C'로 강등됐고, 지난 5일 최종 부도처리됐다.
<더팩트>는 △김 지사의 회생신청 배경 △'혈세 50조 원' 투입 여부 △이 대표의 성남시장 당시 모라토리엄 선언과 김 지사의 디폴트 선언 차이점 등 쟁점에 대해 살펴봤다.
√팩트체크 1. 레고랜드 사태는 '전임 도지사 치적 지우기' 결과물?
민주당은 당 차원에서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 대표 지시로 정무위원회 야당 간사인 김종민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김진태발 금융위기 진상조사단'을 발족했다. 조사단은 최근 단기자금·채권시장 경색의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다.
민주당은 특히 김 지사가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배경에 '전임 도지사 지우기'라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 26일 최고위에서 "어설픈 정치셈법으로 '전 도지사 지우기'에 나선 무지의 국민의힘 김진태 지사가 만든 대혼돈인 셈"이라고 비판했다. 최 전 지사도 지난 25일 라디오에서 "(김 지사가) 정확한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지 않고 그냥 정치적 목적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통상적으로 어음 또는 채권은 차환발행을 통해 원금상환을 미루는데, 김 지사가 ABCP 발행 주관사와 사전 교감도 없이 GJC의 회생신청 계획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최 전 지사는 "그 회사(강원중도개발공사)를 그냥 뒀으면 차차 연장해가면서 빚을 갚아나갔을 것"이라며 "공사는 (김 지사가) 회생 신청(방침)을 발표하기 전날 (채권자인) 증권회사와 빚 상환을 연장하기로 합의한 상태였는데, 그 회사 사장들과 소통하지 않고 (김 지사가) 그냥 발표해 버린 것"이라고 했다.
반면 강원도는 GJC의 파산이 예상돼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주장한다. 김 지사는 지난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전임 도정 사업이라고 해도 이대로 가다가는 뻔히 파산이 예상되는 상황이라서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라고 했다.
지난 25일 강원도가 낸 보도자료에 따르면 GJC의 연 확정수익은 레고랜드 입장료 관련 2억 원(입장객 200만 명 기준) 수준이이다. 강원도는 "기반시설공사와 유적공원·박물관 건립 추진에 따른 사업비가 향후 추가로 소요돼 적자가 누적될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또 강원중도개발공사의 사업수지는 대출금 2050억 원을 제외하고도 수입이 지출보다 1708억 원 적은 적자가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결국 더는 연장이 안 되는 최종 상환 유예 기간인 2023년 11월까지 빚을 모두 갚지 못하는 상황이 예정돼 회생신청은 불가피했다는 주장이다.
강원도가 결정한 '회생 신청' 조치가 적절했는지에 대해선 확실히 의문이 남는다.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을 고려할 때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더 적극적으로 모색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선 회생 신청 과정에서 발행 주관사, GJC 측과 협의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GJC 관계자는 통화에서 "만기 한 달 전에 BNK(발행 주관사)에 대금을 입금시켰다. BNK가 회생 절차를 사전에 알았다면 대출 이자를 한 달 전에 넣으라고 할까. 강원도는 (회생 신청 과정에서) 저희와 상의한 적이 없다. 그래서 저희도 처음에는 진위를 몰랐다. 다만 실무자 말고 (대표와) 만났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업무 담당자 몰래 (협의)했을 수 있지만 그렇다면 귀띔을 했을텐데 그런 게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사업 자체가 뛰어난 수익성을 목표로 하지 않은 만큼 리스크 관리에 미리 대비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관계자는 "(완공 전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안 된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19년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회계상 수익이 나기 시작한 게 2021년 12월이었다. 자산이 자본잠식 됐다가 그때 당기 순이익이 245억 원이 났다. (올해) 9월 말 가결산 기준으로는 수익이 325억 원이다. (하지만 과거부터 지출이 커서) 2023년 11월까지 한다면 대출금을 갚을 수 있는 현금이 412억 모자란다고 (강원도에) 보고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업 자체가 처음부터 수익을 위한 게 아니라 관광지를 개발해서 지역에 환원하고자 하는 사업이 모토다. 그런데 지금 와서 왜 수익이 없냐고 한다면 처음부터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얘기 아니겠나"라고 했다.
여권은 최 전 지사의 책임론을 들며 반격하고 있다. 최 전 지사가 재임 당시 강원도 재정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레고랜드 유치 사업을 강행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주장이다. 지난 27일 주호영 원내대표는 "레고랜드 사건을 처음부터 봐야 한다. 최문순 전 지사 시절 무슨 무리가 있었는지, 왜 거기(레고랜드)에 제일 먼저 지급보증 상황이 있었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애초부터 할 수 없었던 사업을 한 것인지 종합해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레고랜드는 개발부터 완공까지 10여 년간 순탄치 않았다. 최 전 지사는 2011년 9월 취임 직후 세계 2위 엔터테인먼트그룹인 영국 멀린과 레고랜드 투자합의각서를 체결했다. 2012년 레고랜드 개발 시행사 엘엘개발(옛 강원중도개발공사)를 설립하고 지분 44%를 출자했다. 그러나 2014년 현장에서 고인돌 등 선사시대 유적지가 발견되면서 건설계획이 변경됐고 공사가 지연되면서 위기를 맞이한다.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엘엘개발에 대한 보증액은 210억 원에서 2014년 2050억 원으로 껑충 뛰었다. 이 과정에서 당시 강원도는 보증액 확대에 대한 도의회 동의도 받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레고랜드 사태를 키운 장본인은 '정당한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재정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감사원의 경고도 무시한 최문순 전 지사(장동혁 원내대변인)"라고 비판하는 대목이다.
책임은 도민이 모두 떠안게 됐다. 강원도는 당초 계획에서 1개월 앞당겨 올해 12월 15일까지 보증채무 전액인 2050억 원을 상환하기로 결정했다. GJC 자산을 모두 매각해도 자금 마련이 어렵다고 보고, 긴급추가경정예산안을 편성할 예정이다. 지역민 세금으로 빚을 갚겠다는 것이다.
오정규 중도유적 보존 범국민연대회의 본부장은 통화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서로 정략적인 싸움을 하고 있다. 국민과 국가를 위한 진짜 거대 양당이라면 처음부터 유적이 파괴되고 역사가 없어지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어야 한다. 우리가 수년간 목이 터지라고 외칠 때는 쳐다도 안 보더니 막상 불똥이 튀니까 서로 자기 잘못 아니라고 지금 싸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지사의 (채무불이행) 발언으로 금융 경색이 오고 경제가 흔들리는 건 유감이다. 최문순 전 지사의 '흑자 도산'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팩트체크 2. '김진태 사태' 대응으로 50조 원 국민 혈세 투입?
민주당은 이른바 '김진태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50조 원의 혈세가 투입된다며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지난 26일 "이번 김진태 사태는 강원도가 2050억 원으로 막았을 일을 50조 원 이상의 국민 혈세로 막게 만들었다"며 윤석열 정부의 대응 미흡을 꼬집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혈세 50조 원'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예산을 모두 투입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난 23일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를 열고 내놓은 대책은 '50조 원 이상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하기로 한 것이다. 채권시장안정펀드 20조 원,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 16조 원, 유동성 부족 증권사 지원 3조 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주택금융공사 사업자 보증지원 10조 원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50조 원 중에 정부 돈이 들어가는 건 얼마 안 된다. 금융지주사, 보험사, 이런 곳에서 자금을 각출해서 그 돈으로 채권을 사는 것이다. 손해 본다면 금융회사들이지, 정부나 국민이 손해 보는 게 아니다"고 했다. 이어 "또 50조 원을 날리는 걸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그걸로 채권을 사는 거다. 나중에 채권 발행한 사람이 무사히 채권을 갚으면 50조 원이 회수가 되는 거다. 물론 디폴트가 나서 못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정상상환이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레고랜드 사태'로 채권시장 유동성이 급격하게 위축된 측면이 있고 정부 대응이 신속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고 입을 모았다. 고금리, 경기 침체로 금융시장 전반이 경직된 상황에서 강원도의 채무불이행 선언으로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시장이 단기간에 얼어붙게 됐다는 것이다.
박 실장은 "강원도가 디폴트를 선언했다고 해서 항상 금융시장 위기로 오는 게 아니다. 지금 금융시장 상황이 워낙 안 좋고 아슬아슬하니까 하나의 기폭제가 된 것뿐이지, 금융시장 거래가 활발했다면 2000억 정도의 디폴트는 평소 같았으면 금융시장이 그냥 흡수했다. 그런데 한국은행이 금리를 급격하게 높이면서 상당히 힘들어졌다. 어떤 의미에선 (레고랜드 사태는) 어차피 울고 싶은데 뺨 한 대 때려준 꼴이다. (지금의 돈맥경화 현상은) 다른 계기로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어 "정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빨리 선제적으로 더 과감한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머뭇거린 측면이 있다"고 강조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역시 "김 지사가 2000억 을 못 갚겠다고 한 것 자체는 촉진제가 된 것이고 (자본시장 경색은) 이전부터 쌓여온 거다. 우리가 외환 보유가 충분하지 못해서 언제든지 외환위기는 재발할 수 있는 것"이라며 "정부가 신속하게 조치하지 못한 것은 맞다. 정부가 '충분하게 유동성을 공급해서 도와주겠다' 이런 신호를 보내야 했다"고 했다.
√팩트체크 3. 이재명 대표는 '배 째라 원조'?
민주당은 김 지사의 '채무불이행 선언'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며 지사직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지난 26일 "만약에 이재명의 경기도가 어디 지급보증을 해서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데 공무원들을 시켜서 그것을 지급하지 마라, 그냥 부도내자, 그래서 다른 결정을 하게 시켰으면 직권남용으로 바로 수사했을 것 아닌가"라며 "지방정부의 확정된 법률상 의무를 이행하지 말라고 만약에 지시했다면 이것은 직권남용이 확실하게 맞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KDI(한국개발연구원)출신' 윤희숙 전 의원은 "5000만이 김진태 욕해도 배째라 원조 이재명 대표는 입다물어야지"라며 작심비판했다. 이 대표의 모라토리엄 선언을 겨냥한 것이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취임 직후인 2010년 7월 판교신도시 조성을 위한 판교특별회계에서 빌려 쓴 5200억 원을 단기에 갚을 수 없다며 모라토리엄(moratorium·지급유예)을 선언한 바 있다. 김 지사도 지난 24일 기자회견에서 "이 대표는 과거 성남시장 시절 모라토리엄을 선언해 금융시장을 충격에 빠트린 적이 있다"고 역공했다.
과연 그럴까. 경제 용어로만 보자면 모라토리엄은 쉽게 말해 빚을 갚되, 날짜를 연기하겠는 것이다. 반면 채무불이행은 빚 갚을 의사가 아예 없으니 "배를 째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자본 시장에서 두 개념을 받아들이는 의미는 같다고 입을 모았다.
박 실장은 "자본 시장에선 형식적인 차이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모라토리엄이든 회생이든 파산이든 돈을 안 갚는구나라고 받아들이고 패닉에 빠져버린다. 말장난이다. 다만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그때는 시장이 잘 돌아갈 때라 성남시가 디폴트를 선언한 것 정도는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었고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차이밖에 없다"고 했다.
김 교수도 "지불 유예한다든지, 파산한다든지 다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라며 "수익성·안전성·환금성이 채권 투자의 3대 요소다. 지방정부나 중앙 정부, 국채에선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안전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고 함부로 말을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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