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만 넘치는 한국 핵무장, 불가능하고 비효율적이다

한겨레 2022. 10. 29.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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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정욱식의 찐 안보][한겨레S] 정욱식의 찐 안보
독자 핵무장론의 허와 실
독자적 핵무장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2019년 3월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이제 핵무장 검토할 때’ 긴급 정책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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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공식적인 핵보유국들인 중국, 러시아와 인접해 있고 비공식적이지만 사실상의 핵보유국인 북한과 휴전선을 맞대고 있다. 한-중 관계 악화와 미-중 전략 경쟁이 맞물리면서 국내에선 ‘중국위협론’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는 비핵화를 선택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북한은 조건부 선제 핵사용 독트린을 공식화했다. 미국은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를 마다하고 있고, 국내에선 ‘과연 미국의 핵우산을 신뢰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전개는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3분의 2 안팎이 독자적인 핵무장을 지지한다.

이러한 열망은 국내외 일부 핵 전문가들의 주장과 맞물려 한국이 결단만 내리면 대량의 핵무기를 단기간 내에 만들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을 낳고 있다. 대략적인 내용은 한국이 1만톤에 이르는 사용후 핵연료를 갖고 있고, 여기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면 핵무기 수백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풍부한 고폭 실험 경험과 우수한 슈퍼컴퓨터 능력을 고려하면 핵실험이 없이도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울러 일부 언론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6~8개월 내 1조원을 들여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보도까지 내놓는다.

핵무장 ‘전환의 계곡’ 너머에

혹자들은 미국과 친한 핵보유국들의 사례를 들어 미국을 잘 설득하면 우리도 묵인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미국의 동맹인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걸쳐 차례로 핵무장을 했다. 인도와 파키스탄도 1990년대 후반 핵실험을 거쳐 핵무장에 성공했다. 그런데도 이들 나라는 미국과 동맹 및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이 안 될 이유가 뭐 있냐는 반문이 나오는 이유이다. 또 한국은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유지하고 있고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미국도 국익의 관점에서 한국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미국이 핵비확산체제 유지라는 명분에 매달려 한국을 버릴 수 있겠냐는 반문이 나오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비핵국가인 한국이 핵무장이라는 ‘전환의 계곡’을 넘어가겠다고 결심하면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계곡 너머의 세상을 그리기에 앞서 계곡을 제대로 넘어갈 수는 있을까? 차분하게 짚어보면 전환의 계곡을 넘어가기도 매우 어렵고 설사 막대한 비용을 치르고 넘어가더라도 핵무장론자들이 그리는 세상과 다른 광경이 펼쳐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이유를 하나씩 따져보자.

우선 기술적인 문제이다. 사용후 연료에서 플루토늄을 대량으로 추출하려면 대규모 재처리 시설이 필요하다. 한국이 재처리와 관련한 연구·개발 기술을 일정 정도 축적했지만, 아직 상용화해본 경험은 없다. 또 북한 영변의 재처리 공장과 일본 도카이무라 재처리 공장의 연간 플루토늄 생산량이 20㎏ 정도라는 점에서 한국이 연간 수백㎏의 플루토늄을 추출하려면 일본 롯카쇼무라 재처리 시설 정도의 규모로 지어야 한다. 애초 이 시설은 1993년에 착공돼 1997년에 완공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6차례나 연기를 거듭한 끝에 아직도 완공되지 않았다. 비용도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최초 건설비는 7조원 정도로 추산되었지만, 최근에는 30조원 이상으로 늘어났다. 여기에 40년간의 운영비를 합치면 총비용은 140조원에 이른다고 일본의 <아사히신문>이 전했다.

일본은 중소 규모의 재처리 시설을 짓고 가동해본 경험이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이 없는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빠른 시일에 적은 비용을 들여 대규모의 재처리 시설을 짓는 것이 가능할까? 또 플루토늄을 확보해 핵무기를 만들려면 핵탄두 연구·개발 및 제조 시설이 필수적이다. 이들 시설을 만드는 데에도 상당한 비용과 시간을 요한다.

2017년 9월 보수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핵무장 결단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구호를 위치고 있다. 연합뉴스

검증되지 않은 ‘주장’만 난무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로인 우라늄 농축은 어떨까? 혹자들은 레이저 농축 방식으로 빠른 시일 안에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원심분리기 방식에 비해 가성비가 크게 떨어진다. 레이저 농축 기술이 농축 속도를 높여 극소량의 고농축 우라늄을 추출할 수는 있지만, 많은 양을 생산하기는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참고로 한국이 2000년에 레이저를 쏴서 추출한 고농축 우라늄은 0.2g이었던 반면에, 1개의 핵폭탄을 만드는 데에는 고농축 우라늄 20㎏ 안팎이 필요하다. 우라늄 농축 방식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농도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만들려면 상당량의 우라늄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하는 순간, 국제사회가 가장 먼저 취할 조치가 바로 우라늄 금수이다. 우라늄 광산이 없는 한국에 핵무장 시도는 탈원전과 동의어인 셈이다.

핵실험 없이도 핵무장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모의 핵실험은 실제 핵실험을 통해 다량의 데이터를 확보한 이후에나 가능하다. 세계 최대의 핵실험 데이터를 보유한 미국조차도 핵무기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실제 핵실험의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며,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을 거부하는 실정이다. 핵실험 경험도 전혀 없고 관련 데이터도 전무한 한국이 과연 ‘실험 없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까닭이다. 더구나 현대식 핵무기는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소형화가 필수적이고, 소형화는 실험을 통한 데이터 축적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무기로서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런데 재처리 공장은 으뜸가는 위험 시설이다. 재처리 대상인 사용후 연료와 재처리 결과물인 플루토늄 및 잔여 고준위 폐기물에는 엄청난 양의 방사성 물질이 담겨 있다. 이에 따라 사고 발생이나 피격 시 대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해당 지역 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들의 격렬한 반발을 일으켜 입지 선정부터 상당한 진통이 따를 수밖에 없다. 핵실험은 어떨까? 과연 좁은 영토에 5천만명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에서 지하 핵실험장을 건설하고 실제로 핵실험을 할 수 있을까?

미국이 묵인할 것이라는 주장도 희망사항에 가깝다. 우선 한국이 사용후 연료를 형질 변경해 플루토늄을 추출하려면 미국이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에 동의해주어야 하는데 이것부터가 쉽지 않다. 또 앞서 소개한 미국의 동맹·우방국들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엔피티) 발효 이전에 핵무장을 했거나, 엔피티에 가입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핵무장을 했다. 반면 한국이 핵무장을 하려면 이 조약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탈퇴해야 한다. 한국이 이런 선택을 하면 북한에 이어 엔피티 역사상 두번째가 된다. 엔피티에서 탈퇴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 자동적으로 회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 이런 주장을 가장 강하게 하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은 미국 핵우산에 대한 불신의 다른 표현이다. 한-미 동맹은 한국의 핵무장 포기와 미국 핵우산 제공 사이의 교환이라는 성격을 강하게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하면 한-미 동맹에도 일대 파란이 일어난다. 물론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 동맹 파기는 미국의 손쉬운 선택지가 아니다. 반면 미국을 믿지 못하니까 핵무기를 갖겠다는 한국을 묵인할 경우 미국의 세계 전략은 큰 차질을 빚게 된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 추진 시 어떻게 해서든 단념시키려고 할 것이다. 무역의존도가 85%에 이르고 국제 금융시장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는 한국에 가해질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도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지금 필요한 건 핵무장이 아냐

이러한 점들을 종합해보면, 핵무장이란 계곡에 빠져 오랜 시간 허우적거릴 가능성이 오히려 높다. 설사 계곡을 지나가도 더 어두운 세상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경제적으로는 매우 피폐해지고 정치·사회적으로는 극심한 남남갈등의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다. 손에 쥔 핵무기도 북한보다 많지 않을 것이며, 상시적인 핵전쟁의 공포가 한반도를 배회하게 될 것이다.

그럼 대안은 무엇일까? 대안의 핵심축은 이미 작동하고 있다. 한-미 동맹의 강력한 대북 억제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더해 전쟁 방지를 위한 남북·북-미 관계 개선과 소통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실패한 역사를 성찰하면서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를 위한 장기적인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안보에도, 경제에도, 민주주의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핵무장이 아니라 억제-관계-소통-협상의 하모니를 만들어갈 때이다.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를 전공했다. 조지워싱턴대 방문학자로 한-미 동맹과 북핵 문제를 연구했다. 1999년 평화네트워크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핵과 인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등 다수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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