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해직기자’ 출신 박실 전 국회의원 별세

이후민 기자 2022. 10. 29.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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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기자로 신군부에 맞서다 해직 후 국회의원과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박실(사진) 전 의원이 29일 오전 83세로 별세했다.

1980년 1월 신민당 제2차 헌법개정 공청회에 한국기자협회 고문 자격으로 참여,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헌법 전문에 언론의 자유를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당한 후 1980년 11월 정치활동 규제자 811명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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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사 기자로 신군부에 맞서다 해직 후 국회의원과 국회 사무총장을 지낸 박실(사진) 전 의원이 29일 오전 83세로 별세했다.

전북 정읍에서 태어난 고인은 전주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4·19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1963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후 정치부 차장 시절인 1977년 한국기자협회 16대 회장을 지냈다. 1980년 1월 신민당 제2차 헌법개정 공청회에 한국기자협회 고문 자격으로 참여,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헌법 전문에 언론의 자유를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신군부에 의해 강제 해직당한 후 1980년 11월 정치활동 규제자 811명에 포함됐다.

1984년 정치활동 규제에서 풀린 후 정치인의 길로 들어섰다.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 세력과 구 신민당 계열 인사들이 모인 신한민주당 창당 작업에 관여했고,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서울 동작에 출마해 당선되며 야당의 돌풍을 이끌었다. 동작을 선거구에서 13·14대까지 3선 의원을 지내며 민추협 출신 범동교동계 의원으로 활동했다. 1998~2000년에는 국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2001년에는 민주화운동 관련자(해직 언론인)로 인정받았다. 정계 은퇴 후에는 헌정회 부회장을 지내고, 서울언론인클럽과 대한언론인회 이사 등을 맡았다.

유족은 부인 전은희 씨와 아들 정원(단국대 법대 교수)·석원(한국일보 논설위원)씨, 며느리 전아정·오진숙 씨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다음 달 1일 오전 9시 발인해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 4·19 민주묘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후민 기자 potat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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