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박지빈이 죽이는 원칙 “나는 ~했을뿐”이라는 이기심? [김재동의 나무와 숲]

김재동 2022. 10. 2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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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김재동 객원기자] “난 20년 전 저기 저 사람이 애들 끌고 가는 거 본 것 뿐이야.”-권경자(최지연 분)

“난 이 거지같은 복지원에 진실을 폭로하러 왔을 뿐이야”-배철호(조승연 분)

“난 힘없는 간호사일 뿐이야. 그래서 당신한테 제보했잖아. 근데 당신은 은폐했잖아.”-조인숙(조연희 분)

“내가 시켰다고? (난 자리만 만들었을 뿐이야.) 자기 자식 조기유학시키겠다고 잔돈푼에 넘어갔잖아.”-나국희(조경숙 분)

“(그 여자애) 접대받은 게 나 뿐이야? 당신 남편은?”-염기남(정인기 분)

“사람은 누구나 자기 분수에 맞게 사는 거야. (난 분수에 맞게 살았을 뿐이야)”-백문강(김법래 분)

28일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블라인드’(극본 권기경, 연출 신용휘)가 클라이막스를 넘어섰다. 남은 3회 동안 또 한번의 반전이 예상되니 세미 클라이막스일지도 모르겠다.

정윤재(박지빈 분)는 20년 전 희망복지원 사건의 연루자 8명을 복지원 감금 시설에 몰아넣고 시한 폭탄으로 위협했다.

주어진 시간은 10분. 정윤재는 누구 한 명의 죽음으로 나머지는 풀려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안겨준다. 이때 정인성의 모친 (오민애 분)이 희생을 자처하고 나서지만 “누군가 죽어야 한다면 죄 있는 자가 죽는 게 맞다”는 조은기(정은지 분)의 주장이 불을 지피며 조은기와 인성 모를 제외한 6인의 폭로전이 시작된다.

그들 모두는 “나는 이랬을 뿐”이라며 자신의 과오를 사소하게 치부하고 비난의 화살을 남에게 넘긴다.

끌려가는 아이들을 방관했던 무당 권경자는 백문강에 의해 “아, 정윤재를 죽여야 한다고 했던 그 무당이군.”이라 반박당한다.

죽어가는 아이들을 야매치료만 한 채 방관했다고 비난받은 조인숙은 “그래서 당신한테 제보했잖아. 근데 당신은 보도를 안했어”라고 화살을 배철호에게 넘긴다.

배철호는 당시 복지부 공무원이던 나국희가 불방청탁자리를 주선했다고 비난하고 나국희는 자식 조기유학을 위해 푼돈에 넘어간 배철호를 공박한다.

나국희는 아이들 상대로 장사를 벌인 염기남을 비난하고 배철호 역시 염기남이 어린 정윤정의 성접대를 받았다고 가세하자 염기남은 나국희의 남편 류일호(최홍일 분)도 접대를 받았다고 폭로한다.

시간은 흘러가고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던 백문강이 인성 모를 죽이려 하자 조은기가 막아서고 그런 조은기를 백문강이 죽이려 한 순간 조인숙이 나서며 “은기는 당신 딸이야!”라 외친다.

일도양단의 기세로 모든 비밀, 추악한 진실이 한시퀀스에서 다 터져나왔다. 내 손톱 밑 가시가 아파 남의 잘린 다리를 외면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여실히 드러낸 장면이었다.

이같은 모아놓고 터뜨리기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트 특급살인을 연상시키며 마치 연극의 클라이막스를 보는듯한 서스펜스를 선사했다.

그리고 사형선고. ‘희망’복지원의 아이들은 ‘절망’만을 맛봤다. 그 인간들 역시 희망을 포기해야 되는 괴로움을, 그 다음에 펼쳐질 절망의 암담함을 맛봐야 된다.

정윤재의 폭탄은 그러나 터지지 않는다. 류성준(옥택연 분)·류성훈(하석진 분) 형제의 등장으로 불발되고 정윤재는 성준의 손에 체포된다.

잡히기 전 정윤재는 류성준에게 말한다. “난 사람을 죽이는 게 아니야. 원칙을 죽이는 거지.”

정윤재가 죽인다는 원칙은 뭘까? 어린 시절 정윤재는 울고있는 정인성에게 묻는다. “여기서 왜 울고 있어?” “엄마가 보고싶어서.” “넌 엄마가 있는데 왜 여기 있어? 버림받았어?” “아니야 엄마를 잃어버렸어.” “처음엔 다 엄마가 자기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엄마가 자기를 버린 줄도 모르고.. 내가 죽여줄까? 너네 엄마? 아, 넌 엄마가 보고싶다고 그랬지. 생각 바뀌면 말해 내가 죽여줄게 너네 엄마.”

인성 행세로 만난 인성모에게 윤재는 또 말한다. “회색코트를 입고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아줌마는 놀이공원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예요. 버리신 거죠? 난 상상이 잘 안가요. 어떻게 엄마란 사람이 자식을 버릴 수가 있지?”

윤재가 볼 때 부모는 자식을 돌봐야 되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호해야 되는 원칙 따윈 진작에 무너졌다. 하지만 세상은 짐짓 원칙이 유지되는 모양새로 굴러간다.

고작 열네살에 불과한 누나 방을 들락거린 인간들이 경찰서장이 되고 대법관이 되는 게 세상의 본질이다. 남의 아이들은 개처럼 다룬 인간이 제 딸 죽음엔 눈이 뒤집혀 날뛴다. “그따위 위선의 원칙이라면 내가 죽여주마!” 정도가 정윤재의 마음가짐이 아닐까 싶다.

인성모는 어쩌면 희망일 수 있다. 인성을 가장한 윤재의 입에서 아줌마란 표현이 나왔을 때, 실제 인성은 복숭아 알러지가 있음에도 윤재가 복숭아를 스스럼없이 먹을 때 이미 가짜 인성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럼에도 속죄하고픈 모정은 모두를 대신해 희생할 결심을 하게 만든다.

허술함 하나. 인성 모를 찾아낸 류성준은 수배 내린 정인성이 잠깐 나갔다고 인성모가 말하는데도 현장 잠복을 왜 안했을까? 확실한 인성모를 두고 불확실한 찰스(오승윤 분)가게에서 잠복하는 모양새는 옥의 티로 보인다.

아직 풀리지않은 의문들이 더 있다. 정윤재는 류성준에게 끊임없이 집착한다. “그 문을 열면 퍽, 그 사람들 다 네가 죽이는 거야” “하마터면 너 오기 전에 그 사람들 죽일 뻔 했잖아” 등 피날레를 류성준 앞에서 연출하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왜?

어린 류성준이 감금된 채 도와달라는 어린 정윤재를 뿌리친 사실이 있고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정윤재가 류성준을 밀었던 정도가 현재까지 알려진 접점의 다다. 시간상으로는 놀이터가 먼저인 듯하다. 희망복지원에서는 노역이 다였을테니.

아마 어린 류성훈과 정윤정·정윤재 남매가 함께 있던 보육원도 어린 류성준이 방문했을 것이고 기억을 잃은 후 희망복지원에서 다시 만난게 합리적이다. 과연 잃어버린 류성준의 기억 속에 정윤재와는 어떤 인연이 더 있었던 건지 궁금하다. 아울러 류성훈의 본색도 아직은 다 드러난 것 같지 않아 드라마 ‘블라인드’는 여전히 흥미진진하다.

/zaitung@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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