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 정책의 미학은 사라지고 정치 공학만 남아…구원투수를 기다리는 경제
[EDITOR's LETTER]
안팎으로 세상 참 희한하게 돌아갑니다.
먼저 나라 밖.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은 영구 집권 체제를 구축했습니다. 그 모델이 북한이라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그리고 미국. 세계 자유 무역 질서를 만든 국가입니다. 하지만 대통령 조 바이든에게는 동맹도 명분도 없는 듯합니다. 자국의 산업 보호 정책을 시도 때도 없이 내던집니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21세기를 야만의 시대로 되돌리고 있습니다. 영국은 설익은 정치인의 섣부른 정책 하나로 갑자기 세계 금융 불안의 진앙지가 돼 버렸습니다. 위기 때 가장 믿을 만했던 통화 중 하나였던 엔화는 기시다 정권과 함께 추락하고 있습니다.
나라 안도 심란합니다. 기업들이 환경·사회·지배구조(ESG)를 입에 달고 살지만 감동은 실종되고 밉상 기업만 줄줄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선진국 반열에 든 줄 알았더니 현장에서는 붕괴와 사망 사고가 끊이지 않습니다. 기업들은 위기를 수습하는 게 아니라 위기를 키우려고 작정한 듯 대응합니다. ‘땅콩 회항’ 이후 위기 관리란 단어가 식상해질 정도가 됐는데 도대체 이들은 뭘 보고 배웠는지 모르겠습니다. 정치에 대한 언급은 그냥 생략하렵니다.
그중 현재 한국 경제를 뒤흔드는 초유의 사건은 어처구니없이 장난감의 나라 레고랜드에서 터졌습니다. 임기 중 업적을 남기고 싶었던지 전임 도지사는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했습니다. 수요가 별로 없는 춘천에 그런 시설을 세운 것도 그렇지만 아름다운 섬 중도에 꼭 손을 대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다음도 코미디입니다. 레고랜드가 성공하지 못하면 소양강에 빠져 죽겠다던 국회의원이 도지사로 돌아와 그 사업을 파산으로 몰아가 버렸습니다. 그냥 전임자가 한 것은 다 싫었겠지요. 타이밍도 기가 막혔습니다. 디폴트를 선언한 시기가 채권 시장이 급랭하던 때였습니다. 지방 정부가 지급 보증을 거부하자 시장은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정부는 이 사태를 알았는지 몰랐는지 뒷짐만 지고 있다가 뒤늦게 50조원으로 불을 끄겠다고 나섰습니다.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습니다.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조선에서 가장 찌질한 임금 1·2위를 다투는 인조가 생각납니다. 인조는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집권합니다. 그리고 광해군의 중요한 업적인 실용주의 외교 노선을 폐기합니다. 광해는 청나라(후금)와 명나라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조선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지 않기 위해 애썼습니다. 인조는 이 노선을 버리고 쓰러져 가는 명나라 편에 서 버립니다. 결과는 비참했습니다. 두 번의 호란으로 수많은 조선인들이 청나라로 끌려갔습니다. 본인은 오랑캐 앞에서 수차례 머리를 땅에 처박고 아들인 소현세자를 볼모로 보내는 수모를 당합니다. 인조반정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조선을 쇠락의 길로 재촉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정책은 물 흐르듯 해야 합니다.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려면 그만한 실력과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인조에게는 실력도 준비도, 마지막엔 인륜도 없었습니다.
이번 주 한경비즈니스는 전임자의 정책을 뒤엎으려고 했던 한 검사 출신 정치인의 무감각이 경제를 어떻게 흔드는지를 다뤘습니다. 레고랜드의 비극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정책은 원래 의도한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예가 미국의 쿠바 봉쇄입니다. 1990년대 중반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플로리다 주지사의 요청을 받습니다. 늘어나는 쿠바 난민 문제가 주지사 선거에 영향을 미치니 난민을 받지 말아 달라는 요구였습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지방의 작은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치적 난민을 받지 않겠다고 발표해 버렸습니다. 봉쇄였습니다. 그러자 배를 타고 들어오는 난민이 급증하기 시작하고 보트 피플, 난민 폭탄이란 단어도 생겨났습니다. 쿠바가 전략적으로 난민을 더 보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결국 미국은 난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이애미가 쿠바인들의 땅이 됐다는 얘기가 나온 배경입니다.
정책은 손안의 작은 새와 비슷합니다. 꽉 쥐면 죽어 버리고 너무 살살 잡으면 예상치 못한 곳으로 날아갑니다. 명분에 집착하다가 나라를 잃을 수도 있고 어설프게 접근하면 엄청난 부작용이 일어납니다.
문재인 정부는 시장을 무시하고 밀어붙인 정책 때문에 아파트 값이 올라 정권을 내주는 결정적 빌미를 제공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자신들이 펴는 정책과 무관한 말을 막 던지고 때로는 사건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뒤늦게 대처하다가 위기를 자초하고 있습니다.
위기는 카리스마형 리더가 극복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이 정부에는 이헌재도 없고, 윤증현도 없고, 김석동도 없습니다. 시장과 정책을 동시에 이해하는 사람을 쓸 생각도 없어 보입니다. 그 짐은 오롯이 국민들의 몫으로 돌아옵니다. 겨울이 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양한 의미의 겨울이 될 듯합니다. 각자 겨울을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김용준 한경비즈니스 편집장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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