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에 '실탄' 쥐여준 진짜 속내는

정재웅 2022. 10. 29.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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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유통]롯데지주, 롯데자이언츠에 190억 유증
운영자금 등 안정적 확보…FA 통한 대대적 보강
신세계 적극 투자에 '자극'…자존심 회복에 총력
/그래픽=비즈니스워치
[주간유통]은 비즈니스워치 생활경제부가 한주간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쉽고 재미있게 정리해 드리는 콘텐츠입니다. 뉴스 뒤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사건들과 미처 기사로 풀어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여러분들께 들려드릴 예정입니다. [주간유통]을 보시면 한주간 국내 유통·식음료 업계에서 벌어진 핵심 내용들을 한눈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시작합니다. [편집자]

40년 롯데 팬이 된 사연

"안방으로 좀 와바라". 아버지의 호출에 어리둥절했습니다. 안방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버지께서 회초리를 옆에 두고 앉아계셨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나?'. 짧은 순간 동안 머리를 굴려봤지만 최근에 사고 친 일은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앉자 다짜고짜 물으셨습니다. "니는 누구 자식이고?". 어리둥절했지만 정신을 차려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자식입니다". "그런데 우째 니는 MBC청룡을 응원하노?".

그제야 아버지께서 저를 부르신 이유를 알았습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처음 시작된 해 고향이 경상남도이신 아버지는 당연히 롯데자이언츠를 응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서울이 고향인 저는 당연히 MBC청룡을 응원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자식이 딴 팀을 응원하는 것이 영 못마땅하셨던 모양입니다. "니가 정해라. 롯데냐 청룡이냐". 저는 머뭇거렸습니다. 어린 생각에도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stsy201@

하지만 그때 회초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무척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겪은 후 결심했습니다. "롯데 응원하겠습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환히 웃으시며 지갑을 열어 5000원을 주셨습니다. "퍼뜩 가서 롯데 어린이 회원 가입하고 와라". 혹시 제 마음이 흔들릴까 염려되셨는지 어린이 회원으로 쐐기를 박으신 겁니다. 저는 그렇게 40년째 롯데자이언츠 팬이 됐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처구니가 없는 일입니다. 자식의 프로야구 응원팀을 강요하는 아버지라뇨. 하지만 그렇게 롯데 팬이 됐고 지금은 제 큰 아이도 롯데 팬이 됐습니다. 본가에 갈 때면 삼대가 TV 앞에 나란히 앉아 롯데를 응원합니다. 참! 저는 제 아이에게 아빠의 응원팀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둘째는 다른 팀을 응원합니다. 이런 악습(惡習)은 제 대(代)에서 끊어야겠다는 생각에 제 아이들은 자율에 맡겼습니다.

실탄 190억원을 장전하다

야구 좋아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40년간 롯데 팬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요. 흔히들 한화 팬분들을 '보살'로 부릅니다만 롯데도 그에 뒤지지 않습니다. 창단 이래 우승이라고는 딱 두 번밖에 하지 못한, 프로야구 출범 이후 한 번도 주인이 바뀌지 않은, 언제나 하위권을 전전하는 롯데를 응원한다는 것은 참 많은 인내를 요구합니다. 그럼에도 늘 응원합니다. 어쩌면 이젠 인(印)이 박인 듯싶습니다.

그럼에도 긴 세월 롯데를 응원하는 것은 늘 '될 듯'하다는 겁니다. 물론 결론은 언제나 안되지만요. 시범경기에서는 막강한 투수력과 높은 화력의 타격을 보여주며 '봄의 제왕'이 되지만 막상 본경기에만 들어가면 맥을 못 춥니다. 그래도 그 '될 듯 안 되는' 롯데에 매년 속아줍니다. '그래 내년에는 정신 차리고 하겠지. 내년에는 꼭 될 거야'가 벌써 수십 년 째입니다.

/그래픽=비즈니스워치

그랬던 롯데가 최근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롯데그룹의 지주사인 롯데지주가 롯데자이언츠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선언한 겁니다. 롯데지주는 지난 27일 이사회를 열고 롯데자이언츠에 190억원의 유상증자를 결정했습니다. 롯데지주가 롯데자이언츠의 보통주 196만4839주를 주당 9670원에 취득하는 방식입니다. 이에 따라 롯데자이언츠는 재무구조 개선과 향후 투자 및 운영 자금을 확보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한마디로 롯데그룹 차원에서 롯데자이언츠에 190억원이라는 '실탄'을 쥐여준 겁니다. 모기업이 야구단에 지원하는 것이 무슨 대수냐고 하시겠지만 이번 증자는 꽤 의미가 있습니다. 롯데자이언츠는 이번 증자로 확보한 실탄을 활용해 대대적인 선수 보강에 나설 수 있게 됐습니다. 올해는 롯데의 고질병인 포수 포지션에 FA(Free Agent) 5명이 풀립니다. 롯데가 노리는 선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신세계가 있습니다.

그룹이 나섰다

국내 프로야구단의 대부분은 모기업의 지원으로 먹고삽니다. 모기업이 힘들면 야구단도 휘청거립니다. 당장 성적을 내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모기업은 프로야구단의 젖줄입니다. 그런데 야구단에 대해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다고 보도자료를 내는 곳은 없습니다. 야구단을 보유하고 있으면 지원하는 것이 모기업의 당연한 책무니까요. 하지만 롯데는 롯데자이언츠에 대한 지원에 나섰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공표했습니다.

이는 그룹 차원에서 롯데자이언츠를 확실하게 밀어주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롯데는 지난 수년간 무주공산이었던 포수 포지션에 수준급 포수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한국시리즈가 끝나면 열리게 될 FA시장에서 롯데는 그룹의 든든한 지원을 바탕으로 실탄을 통 크게 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습니다. 올해 FA시장에는 유독 좋은 포수들이 많이 나옵니다. 롯데가 침을 흘릴만합니다.

/그래픽=유상연 기자 prtsy201@

더불어 내야수 부문에도 꽤 좋은 선수들이 FA로 풀립니다. 포수에 이어 롯데의 약점으로 꼽히는 내야수 분야에서도 도전해 볼 만한 조건이 만들어졌습니다. 세간의 예상대로 롯데가 이번 FA 시장에서 그룹의 든든한 지원을 바탕으로 수준급 포수와 내야수를 잡을 수 있다면 롯데로서는 내년 시즌 해볼 만합니다. 만년 하위권이라는 오명도 벗을 수 있습니다. 40년 롯데 팬인 저도 행복 회로를 돌릴 수 있겠죠.

실적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롯데는 '구도(球都)'로 불리는 부산이 연고지입니다. 팬들의 압도적인 응원을 받고 있는 팀입니다. 따라서 성적이 좋아진다면 관중 유입이 늘고 이는 곧 실적 향상으로 이어질 겁니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롯데자이언츠의 실적은 좋지 못했습니다. 계속된 실망스러운 플레이로 많은 팬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이번 그룹의 지원은 롯데자이언츠가 분위기 반전을 꾀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자존심 회복

업계에서는 롯데가 그룹 차원에서 야구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선 이면에 신세계에 대한 경쟁심도 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신세계는 지난 2021년 프로야구단 SK와이번스를 인수하면서 프로야구에 뛰어들었습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이 인수를 주도했고 이후 야구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섰습니다. 신세계 계열사들과 야구단의 협업을 통한 다양한 마케팅 활동도 선보이면서 성공적으로 안착했습니다.

게다가 신세계의 프로야구단인 SSG 랜더스는 그룹이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올 시즌 KBO 사상 최초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을 거뒀습니다. 정규 시즌 내내 단 한차례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시즌을 마감해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현재는 한국시리즈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시리즈마저 우승한다면 통합 우승이 가능해집니다. 정 부회장의 야구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내놓은 결실인 셈입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 사진제공=롯데그룹

사실 롯데자이언츠의 구단주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정 부회장 못지 않게 야구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 롯데지바마린스의 구단주이기도 합니다. 다만 정 부회장과 달리 앞에 나서서 전폭적인 지원을 하거나 마케팅에 직접 나서거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탓에 롯데는 구단주가 야구에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업계의 이야기입니다.

신세계가 프로야구 시장에 뛰어들면서 롯데와 신세계 간의 프로야구 '유통 대전'도 관심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철저히 성적으로 판가름 나는 야구판에서 롯데는 신세계에 완패했습니다. 신세계는 1위, 롯데는 8위로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따라서 롯데로서는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었을 겁니다. 롯데그룹 차원의 야구단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이면에는 이런 생각이 숨어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입니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그동안 롯데는 야구단에 대한 지원을 많이 했었음에도 굳이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신세계가 등장하면서 판이 바뀌었다. 신세계가 롯데의 자존심을 자극한 만큼 롯데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롯데가 진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내년이면 41년째 롯데 팬입니다. 여러분, 롯데가 이번에는 될까요? 또 안될까요? 너무 궁금합니다. 

정재웅 (polipsycho@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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