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소녀', 아는 맛이 맛있다 [김나연의 사선]

[스타뉴스 김나연 기자] [편집자주] 영화·OTT를 보는 김나연 기자의 사적인 시선.

흔히 말한다. 아는 맛이 맛있다고. '20세기 소녀'는 철저히 아는 맛으로 승부하는 영화다. 그때 그 시절, 첫사랑. '20세기 소녀'는 당신이 예상할 수 있는 그 세계를 펼쳐낸다. 눈물 나게 사랑스럽고, 또 가슴 시린, 우리가 찾던 바로 그 영화가 등장했다.

'20세기 소녀'는 2019년 어른이 된 나보라(김유정 분) 앞으로 낡은 비디오테이프가 배달되며 시작된다. 오래된 비디오 속에는 1999년 순수했던 17세 나보라의 모습이 담겨있고, 시청자들은 풋풋했던 당시 그의 기억 속으로 함께 빠져들게 된다.

1999년, 사랑보다 우정이 더 중요한 17세 소녀 나보라는 심장 수술을 받으러 외국으로 떠나야 하는 절친 연두(노윤서 분)가 첫눈에 반한 소년 백현진(박정우 분)의 소식을 전해주기로 한다. 아는 거라곤 같은 학교라는 것과 이름이 전부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백현진의 일거수일투족을 알아내 '연두'에게 알려주기로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지 않고, 보라는 백현진이 아닌 그의 절친 풍운호을 공략하기로 하는데, 자꾸만 일이 꼬여간다. 심지어 풍운호에게 심장이 뛰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엇갈린 보라의 여우비 같은 첫사랑이 시작된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공존하던 1999년, '20세기 소녀'의 배경이 되는 비디오 대여점부터 메일로 소통하던 친구들, 전화번호부를 뒤져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고, 삐삐 번호를 알아내려 애태우던 그 시절을 기억하는 시청자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잘 모르는 시청자들에게는 '새로움'을 선사하며 그 시대로 초대한다.

특히 '20세기 소녀'는 '첫사랑'이라는 소재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운데, 마치 닮아있는 것만 같은 우정과 사랑 이야기를 잘 버무리며 청춘물 특유의 풋풋함과 설렘을 유발한다. 엔딩까지 보고 난 뒤 제목의 의미를 다시 생각한다면, 시선의 방향이 뒤바뀌며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

이런 작품이 왜 이제서야 우리 곁에 찾아왔나 싶은 정도. 특히 '20세기 소녀'를 더욱 빛내는 것은 바로 배우들의 연기력이다. 김유정은 그 나이대의 순수한 모습부터 사랑에 빠진 소녀의 모습, 우정과 사랑 사이 갈등하는 복잡미묘한 내면까지 완벽하게 표현하며 영화의 중심을 잡는다. 다양한 장르의 작품에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온 김유정의 내공이 폭발한 듯 보인다.

여기에 신선한 얼굴들이 '20세기 소녀'의 풍성함을 더한다. 변우석은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설렘을 느끼는 순수한 소년의 모습까지 첫사랑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또한 '20세기 소녀'는 초반 시선의 방향이 계속해서 변화하며 교차점을 만드는데 박정우가 그 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남자주인공' 역할을 자처하며 황당할 정도로 자신감 넘치고 어떻게 보면 허세스럽게도 보일 수 있는 그때의 고등학생을 찰떡같이 소화했다. 다소 민망할 수 있는 대사도 그 역할의 매력처럼 보일 수 있는 것은 박정우가 가진 힘이다. 노윤서 또한 첫사랑에 설레는 여고생 역에 자신만의 색깔을 더해 한없이 맑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찰떡 캐스팅에 힘입어 '한국형 청춘물'을 선보인 '20세기 소녀'는 하이틴 로맨스 클리셰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떤 시청자에게는 장점으로, 또 어떤 시청자에게는 단점으로 느껴질 수 있을 터. 방우리 감독은 "제가 보고 싶은 첫사랑 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화를 클릭했을 때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멜로 영화가 사실 클리셰를 벗어나기는 힘들다. 그래서 정공법으로 가면서, 최대한 재밌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뻔하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저는 그 안에서도 새로운 걸 찾으려고 노력했다. 모든 사람을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영화는 없는 것 같다. 원하는 사람들이 만족한다면 그것만으로 좋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나연 기자 ny0119@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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