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와인] ‘유럽 왕실이 사랑한 킹스맨 와인’ 알람브레 모스카텔 드 세투발

유진우 기자 2022. 10. 2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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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은 생산량으로 보나, 와인 인지도로 보나 국제 와인시장에서 주류는 아니다.

세계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지난해 포르투갈 와인 생산량은 650만헥토리터를 기록했다. 전 세계 생산량 1위 이탈리아에 비하면 7분의 1 수준이고 바로 옆 나라 스페인에 비해도 6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만든 와인도 대체로 다른 국가로 팔아버린다. 이 때문에 전체 와인 소비량이나 1인당 와인 소비량 같은 통계를 살펴보면 포르투갈은 10위권 바깥에서야 겨우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포르투갈 와인이 유난히 강세를 보이는 분야가 있다. 주정(酒精) 강화 와인(fortified wine)이다. 주정 강화 와인이란 주정(증류주)을 섞어 알코올 도수를 높인 와인을 말한다.

일반 와인에다 더 도수가 높은 증류주를 섞으면 쉽게 상하지 않기 때문에 훨씬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다. 과거 뱃사람들이 긴 항해 과정에서 와인을 오래 보관하기 위해 활용했던 방법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포르투갈 주정 강화 와인이라 하면 포트(port)와인부터 떠올린다. 포트 와인은 포르투갈 북부 항구도시 포르투(porto)에서 만든다. 포르투는 로마시대부터 교역의 중심지였던 덕분에 포르투갈 국가명의 시초가 될 만큼 유명한 도시다. 포트와인도 도시의 명성을 등에 업고 승승장구했다.

반면 다른 포르투갈산 주정 강화 와인 ‘모스카텔 드(두) 세투발’은 포트와인에 비하면 주목을 받지 못했다. 포르투갈에서는 북쪽 포르투의 ‘포트와인’, 남쪽 세투발의 ‘모스카텔 드 세투발’을 라이벌로 쳐주지만,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시장에서 아직 모스카텔 드 세투발 인지도는 포트와인을 따라 오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래픽=이은현

모스카텔 드 세투발은 해군 함대에 실려 세계를 일주한 술이다.

이 술은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 밑에 자리잡은 세투발 반도에서 나오는 포도로 만든다. 주요 도시가 해안선을 끼고 늘어선 포르투갈답게 세투발 역시 수도에 근접한 주요 항구도시다.

1800년대부터 이 지역에서 와인을 만들었던 호세 마리아 다 폰세카는 대서양으로 긴 항해를 떠나는 해군 함정에 다른 와인들보다 오래 보관할 수 있던 모스카텔 드 세투발 와인을 실어 보냈다. 이 함정들은 세계 곳곳을 항해하면서 적도 인근을 연간 4~5회 정도 지난다. 이 때 배 밑창에 실려 이리저리 흔들대면서 높은 온도에 익은 모스카텔 드 세투발 와인은 다른 와인들에서 맛볼 수 없는 복합미를 선사한다.

해군들은 항해의 끝을 기다리면서 떠나온 도시 세투발에서 만든 이 술을 마셨을 것이다. 이 와인 역시 바람이 불든 파도가 치든, 덥든 춥든 배 밑창에서 출렁이며 대서양과 태평양, 마리아나 제도를 넘나들었다.

그래서 이 호세 마리아 다 폰세카 와이너리에서는 모스카텔 드 세투발 중에서도 가장 잘 익은 와인을 따로 골라 ‘토르나 비아젬(Torna Viagem)’이라는 이름으로 내놓는다. 토르나 비아젬은 ‘세계를 한 바퀴 돌고 온 와인’이라는 뜻이다.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포르투갈은 14세기 대항해시대 유럽을 호령했던 국가다. 역사가들은 대항해시대 시작점을 1336년 당시 포르투갈 왕국의 카나리아 제도 탐험으로 본다.

해외 와인 전문 매체들에 따르면 세투발 지역 와인은 이미 그때부터 유럽 왕실에서 알음알음 소비하는 고급 와인이었다. 당시 스페인 세비야와 함께 지중해 패권을 양분했던 리스본에 세투발이 가까웠던 덕분이다.

이렇게 서서히 쌓아온 명성은 세투발 와인 생산량이 점차 늘어나기 시작한 20세기 들어 빛을 보기 시작한다.

가령 할리우드 유명 영화 ‘킹스맨’ 시리즈 최신작 ‘더 킹스맨’ 제작진들은 극 중 배경이었던 1차 세계대전 중인 1910~1920년대 러시아 로마노프 왕실이 마시던 술을 표현하기 위해 모스카텔 드 세투발 생산자 가운데 가장 저명한 호세 마리아 다 폰세카에 조언을 구했다.

지난해 이 시리즈 감독 매튜 본과 협력해 만든 ‘모스카텔 킹스맨 센추리 에디션 1919′는 영화 출시를 기념해 오로지 500병만 한정 판매했다. 이 와인은 750밀리리터(ml) 한 병에 3500달러(약 500만원) 였지만, 순식간에 품절을 기록했다.

그 맛을 보지 못해 아쉽다면, 훨씬 저렴한 대안이 있다. 같은 생산자가 만든 알람브레 모스카텔 드 세투발이다.

이 와인은 국내에서 저렴한 품종으로 알려진 이탈리아 와인 ‘모스카토’와 같은 품종 포도로 만든다. 다만 품질 유지 차원에서 3~5개월 동안 스킨 콘택트(skin contact·포도즙이나 와인에 포도 껍질을 짧게는 몇 시간에서 길게는 몇십 일까지 담가놓는 양조법)를 해 포도 맛을 최대한 끌어내고, 통나무통에서 오래도록 숙성하기 때문에 모스카토에 비하면 훨씬 색과 향이 진하다.

대체로 포트와인이 초콜릿과 커피, 아몬드 향이 강하게 난다면 알람브레 모스카텔 드 세투발은 오렌지와 귤 같은 상큼한 과일 향이 진하다. 일부 시판 소주보다도 높은 17% 수준 도수를 자랑하지만, 와인에서 나는 단 맛과 신 맛의 균형감이 좋아서 입안에서 느껴지는 알코올 느낌은 소주만큼 강하지 않은 편이다.

알람브레 모스카텔 드 세투발은 2017년 이후 대한민국 주류대상 주정 강화 와인 부문에서 3차례 대상을 받았다. 국내에서는 올빈와인이 수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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