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이 다시 생각하자" 77년 관계 흔들리는 미국 사우디 왜 [뉴스 쉽게보기]

임형준,박재영 2022. 10. 29.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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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가까이 끈끈한 동맹 관계를 이어 온 두 나라가 있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두 국가의 경제적 협력 관계는 바로 옆 나라 못지않게 긴밀했죠. 그런데 최근에는 사이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대요. 동맹이 흔들릴 정도로 분위기가 냉랭해요.

모하메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7월 15일 알 살만 궁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 = 연합뉴스]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두 나라는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예요. 다툼은 '원유(석유)' 때문에 일어났어요. 미국은 원유 생산량을 줄이지 않기를 원하는데, 사우디는 줄이려고 하거든요. 단순히 보면 기름 생산량을 두고 생겨난 의견 차이 정도로 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두 나라의 관계는 생각보다 아주 복잡 미묘해요. 양국 관계 변화는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을 만큼 꽤 영향력이 있고요. 두 나라는 어떤 관계인 걸까요? 왜 요즘 들어 사이가 안 좋아졌을까요?

두 나라 사이가 좋았던 이유

미국과 사우디는 확실히 꽤 좋은 관계를 이어왔어요. 사우디는 중동 국가 중 미국에 가장 우호적인 국가로 분류될 정도예요. 두 나라가 친해진 이유 또한 아이러니하게도 '석유'였어요. 사우디에 매장된 석유를 먼저 발견하고 가장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선 국가가 미국이었죠.

1938년 사우디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미국의 석유기업들은 '아람코(Aramco)'라는 회사를 세워서 석유 개발에 나섰어요. 사우디 석유 개발로 미국 기업들은 큰돈을 벌었고, 사우디도 부자 나라가 됐어요. 아람코는 1980년에 사우디 정부가 지분을 모두 사들여서 사우디의 국영기업이 됐고요. (아람코는 올해 5월을 기준으로 회사 전체 주식 가치의 합을 뜻하는 '시가총액'이 세계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어요. 애플과 꾸준히 1·2위를 다투는 회사예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의 주아이마 정유 공장 전경 [사진 제공 = 아람코]
두 나라는 1945년에 정식으로 협력 관계를 맺었어요. 무려 77년 전 일이죠. 양국의 경제적 협력 관계는 1974년에 체결한 '페트로 달러 협정' 이후로 더 강해졌어요. 이 협정은 미국이 사우디의 안보를 책임져주는 대가로 원유를 사고팔 때 달러로만 결제하자는 내용이에요. 막대한 양의 석유를 생산하는 사우디와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미국의 협정으로 이때부터 모든 석유 거래에는 달러를 사용하게 됐어요.

이 협약은 달러가 사실상의 '세계 통화'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고,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더 강해졌어요. 여전히 사우디와 아랍연맹 국가들은 석유 거래 시 모든 결제를 달러로 하고 있대요.

사우디가 세계 무기 시장의 '큰손'이라는 점도 양국의 우호적 관계에 영향을 미쳤어요. 중동 지역에서 시아파인 이란과 대립하는 수니파 사우디는 세계에서 가장 무기를 많이 수입하는 나라예요(2016∼2020년 기준.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집계). 이런 사우디가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미국으로부터 사들인 무기는 미국이 수출한 전체 무기 중 4분의 1에 달했대요.

무기를 파는 미국도 좋지만, 사우디가 얻는 것도 많아요. 미국의 첨단 무기를 마음껏 수입한 덕분에 중동의 군사 강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왜 싸우는 거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했을 때부터 미국과 사우디의 관계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어요. 바이든 행정부가 '인권'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면서, 취임 직후 사우디를 '인권 탄압 국가'라고 비판했기 때문이죠.

그런데 세계적인 고물가 현상이 바이든 대통령의 태도를 바꿔놨어요. 국제유가 급등이 물가 상승세를 더 부추기자, 기름값이 떨어지길 원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자신이 비판했던 사우디에 원유 생산량을 늘려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지난 7월에는 바이든 대통령이 원유 증산을 요청하러 사우디까지 직접 찾아갔지만 빈손으로 돌아갔어요.

오히려 이달 초 사우디를 포함한 산유국 모임인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는 대규모 감산을 결정했어요. 석유 생산국들의 이익을 위해 하루에 200만배럴씩 기름을 덜 팔겠다는 거예요. 사우디가 이 결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어요. 바이든 대통령은 "근시안적인 결정"이라고 즉각 비난했어요. 원유 감산이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의 재정을 돕게 된다는 비판도 잊지 않았죠.

사우디도 바로 '오직 경제성만 따졌다'며 반박했어요. 산유국이 상의한 결과일 뿐이라는 거예요. 사우디는 또 '미국이 1개월만 감산을 보류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폭로했어요. 바이든 행정부가 표심을 노린 정치적 요구를 했다고 비판한 셈이에요. 11월 8일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물가 상승세를 완화하는 성과를 보여주기 위해 '짧은 보류'를 요구했다는 거죠.

급격히 멀어지는 미국과 사우디

양국 사이 파열음은 점점 커지는 모습이에요. 서로 연이은 보복에 나서는 모양새라고 언론은 분석하고 있고요. 워낙 여러 가지 조치들을 하고 있어서 간단히 정리해봤어요.

◆ 미국의 대응

① "우리 관계, 다시 생각해보자"

OPEC+의 감산 결정 이후 미국 정부는 사우디와 관계 재설정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어요. 77년 동안 공고했던 전략적 동맹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선언한 셈이죠. 바이든 대통령은 관계 재설정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 의회와 협업에 돌입했어요.

② "사우디에서 사업 키우지 마"

미국 NBC 방송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자국 기업들에 사우디 관련 사업 확장을 자제하도록 권고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래요. 감산 결정의 책임을 사우디에 묻기 위해 민간 기업까지 활용할 수 있다는 거예요.

③ "우리 무기도 안 팔 수 있어"

미국 정부는 사우디에 1년간 무기 판매를 중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에요. 집권 여당인 민주당도 사우디와의 안보 협력을 축소해야 한다고 바이든 행정부를 압박하기 시작했어요.

④ "아껴놨던 기름도 더 많이 풀 거야"

중간선거를 앞두고 어떻게든 물가 상승세를 완화하고 싶은 바이든 대통령은 전략적으로 비축해뒀던 미국의 기름을 시장에 더 풀겠다고 발표했어요. 이미 지난 3월 미국 정부는 유가 안정을 위해 총 1억8000만배럴의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겠다고 밝혔는데, 아직 남아 있는 1500만배럴을 시장에 더 판매한다는 거예요. 필요할 경우 추가 방출도 하겠다고 했어요.

압둘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 장관(가운데)이 5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의 석유수출국기구(OPEC) 본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OPEC 회원국과 러시아 등 비회원국으로 구성된 산유국 협의체 `OPEC 플러스`(OPEC+)는 기자회견을 통해 11월부터 하루 원유 생산량을 이달보다 200만 배럴 줄이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EPA = 연합뉴스]
◆ 사우디의 대응

① "미국 말고 우리 지지한다고 해!"

사우디는 석유 감산이 정당한 집단적 결정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우군 결집에 나섰어요. 미국이 산유국 협의체인 OPEC+를 비난하자 10여 개 중동 국가들은 "경제적 논리에 따른 순수한 결정이었다"는 지지 성명을 연이어 발표했는데요, 사우디가 이 국가들에 강하게 지지를 요청했기 때문이라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② "사우디 비판한 미국인, 징역 16년"

사우디는 트위터에서 사우디 정부를 비판한 미국인(사우디 이중국적)에게 이례적으로 징역 16년을 선고하기도 했어요. 징역을 선고받은 72세 남성은 트위터에 사우디의 빈곤과 인권 문제를 지적하는 글을 총 14건 썼을 뿐이라고 해요. 지난해 11월에 가족들을 만나러 사우디를 방문했다가 체포됐는데, 이번에 중형을 선고받게 됐어요. 사우디가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문제로 미국인에게 중형을 선고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래요.

③ "브릭스 가입도 생각해 봐야겠어"

사우디가 미국과 등을 질수록 중국·러시아와는 가까워지는 모양새예요. 사우디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빈 살만) 왕세자는 브릭스(BRICS) 가입을 희망한다는 말을 한 것으로 알려졌어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열린 국제 회의에 참석해 "사우디아라비아의 브릭스 가입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어요.

만약 사우디가 브릭스에 가입하거나 러시아·중국과의 관계가 끈끈해지면, 석유를 달러로만 거래하는 '페트로 달러' 체계에도 균열이 갈 수 있어요. 그만큼 미국의 영향력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거죠. 사우디가 중국 화폐인 위안화 등 다른 화폐로 결제하는 걸 허용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77년 동맹은 과연 어디로?

양국의 관계가 계속해서 악화할 것인지를 두고서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해요. 단기적으로 미국의 중간선거 이후 어떻게든 합의로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길게 보면 갈등이 더 깊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존재하죠.

당장은 양국이 분쟁으로 잃을 것이 너무 많아서 70년 넘게 이어온 관계가 끊어지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요.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통해 방어 체계를 구축하려던 사우디 입장에선,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하면 심각한 안보 문제에 직면할 수 있어요.

미국 입장에서 봐도 사우디가 중국·러시아와 가까워지는 걸 두고 보기는 어렵겠죠. 세계 정세가 혼란스러운 지금, 중동 지역의 든든한 우군을 포기하기도 아쉽고요. 77년 동안 서로에게 이익을 주며 공고히 다져왔던 두 나라의 동맹 관계, 앞으로도 이어갈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때가 아닐까 싶네요.

<뉴미디어팀 디그(dig)>

[임형준 기자 /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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