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호철, 당신의 도쿄] 끝까지 마스크 쓰는건 일본일까, 한국일까.
올 4월 일본 입국해 도쿄 히로오의 맨션에 입주했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감염 예방을 위해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직접 손가락으로 누르지 않도록 협력해 주십시오’라는 문구를 봤다. “그럼 어떻게 누르라는 거지?” 일주일뒤 같은 엘리베이터에 탄 한 어르신이 이쑤시개로 누르는 걸 보고서야 의문이 풀렸다.
같은 달 오오테마치의 한 스테이크 가게에서 화장실에 갔다가 소소한 낭패를 봤다. 손 건조기가 운영을 중지한 것이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종이타월도 제공하지 않는다고 했다. 코로나 공포가 낳은 온갖 비(非)과학적인 대응은 한국 뿐이 아니라고 깨달았다. 한국에선 거의 모든 아파트의 엘리베이터 버튼에 구리 항균 필름이 붙어있다. 플라스틱 비닐에 항균 효과가 있다는 구리 성분을 넣은 필름이다. 손가락에 묻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죽인다는 주장이다.
과학적인 신빙성은 낮았지만 한국 정부는 세금까지 들여, 관공서와 지하철 등 모든 정부 관련 건물 엘리베이터에 항균 필름을 붙였다. 코로나 공포가 팽배했던 2020년, 한국에선 ‘코로나 예방 목걸이’라는 것도 등장했었다. 이산화염소 성분을 담은 목걸이를 착용하면 반경 1미터 내의 바이러스를 살균한다는 제품이었다. 하지만 이산화염소는 흡입 독성이 있기 때문에 목걸이로 사용시 인체에 유해한 성분이다. 한국 정부가 즉각 유통 중단을 명령해 극단적인 피해는 막았지만 아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누가 정색하고 비과학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겠는가. 2020년 1월, 우리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감염병을 전혀 몰랐고, 백신도 치료제도 없었다. “중국산 김치를 먹으면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떠돌던 시절이었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미신파괴자(Myth Busters)라는 팀을 꾸리고 ‘5G 스마트폰이 주파수를 통해 코로나 바이러스를 전한다’ ‘마늘을 먹으면 코로나를 예방할 수 있다’ ‘메탄올(공업용 알코올)을 마시면 코로나를 치료할 수 있다’와 같은 감염병 미신(Myth)과 싸우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마스크 만은 달랐다. 실제 코로나 확산을 막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코로나 초창기때 일본인과 한국인이 스스로 마스크를 쓰기 시작한 2020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선 한 동양인이 사무실에서 마스크를 썼다가 동료들에게 “당장 사무실에서 나가라”는 인종 차별을 겪기도 했다. 마스크를 쓴 동양인은 코로나 감염자라는 편견이 컸던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에 미국인도, 유럽인도 마스크를 썼고 마스크는 가격이 수십배 뛸 정도로 전세계에서 품귀 현상이 났고, 그렇게 마스크는 코로나 팬데믹과 전쟁의 최선두에서 역할했다.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의 종언은 마스크를 벗는 시점이 될 것이다. 감염병과 전쟁에서의 승리는 일상으로 복귀이기 때문이다. 미국·캐나다와 유럽은 차근차근 마스크가를 없는 사회로 복귀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도 마스크와 이별할 때가 다가왔지만, 마스크 정책에서만큼은 한일은 닮은 듯하지만 실은 전혀 다르다. 한국에선 마스크 착용은 위반시 1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경범죄였다. 강제 조치였다. 한국 정부는 지난 9월 26일에 야외에서 마스크 착용 의무화 조치를 해제했다. 실내에서 의무 해제도 논의가 진행 중이다. 법의 강제가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마스크 없는 일상이 돌아올 것이다.
일본에선 마스크 착용은 애초에 강제 사항이 아니라, 사회 분위기가 만들어낸 일종의 관습법이다. 이달 중순 만난 일본 기업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의 시바타 토시히데 대표는 “일본식 문화는 누군가 책임지고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일본인이 모두 마스크를 끼는 이유는 국가가 근거를 가지고 결정한게 아니고, ‘난토나쿠’라는 공기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마스크 착용 해제할 때도 책임지고 추진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공기의 지배’라는 책에서 주장한 것처럼, 공기가 결정하면 아무도 거역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동조압력이라고 할까. 그러고보니 일본 정부는 이미 5개월전에 야외에서 마스크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석을 내놨지만 여전히 거리에선 다들 마스크를 쓰고 있다. 이대로 있다간 세상 모든 국가가 마스크를 안 쓰는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만 일본만 홀로 남지 않을까 걱정도 해본다. 마스크를 벗는 날이 와야, 히로오 맨션의 관리사무소도 ‘손가락 사용 불가’라는 문구를 떼어내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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