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팍한 지갑에… 기름값 떨어져도 소비는 시들

이윤정 기자 2022. 10. 2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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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휘발유·경유 소비량, 전월 대비 14, 22% 감소
고물가·고금리에 기름값 여전히 높다는 인식 작용

국내 주유소 기름값이 지난 여름 고점을 찍고 하락했지만, 지난달 소비는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정유업계에서는 고물가, 고금리에 지갑 사정이 팍팍해진 소비자는 물론 경기 둔화로 산업계까지 기름 소비를 줄이기 시작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생산량을 줄였는데도 재고가 늘어나면서 주유소업계와 정유업계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29일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지난달 휘발유 소비량은 731만3000배럴로 전월(852만8000배럴) 대비 14.2% 감소했다. 경유 소비량은 1596만배럴에서 1249만7000배럴로 21.7% 줄었다. 통상 휘발유와 경유 소비량은 휴가철인 여름에 늘어나기 때문에 가을에는 전월대비 하락할 수 있다.

다만 올해는 유독 감소폭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8월에서 9월로 넘어갈 때를 보면, 휘발유와 경유 소비량은 오히려 1.9%, 4.3%씩 늘었다. 당시는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점차 완화되고 ‘위드 코로나(With-Corona·단계적 일상 회복)’까지 거론되던 때라 소비량이 늘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2020년 같은 시기의 경우 휘발유 소비량은 5.9% 줄었고, 경유 소비량은 5.7% 늘었다.

그래픽=손민균

소비 위축으로 재고도 늘고 있다. 지난달 휘발유와 경유 재고는 각각 571만7000배럴, 1141만1000배럴로 전월 대비 19.3%, 12%씩 증가했다.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5.2%, 3.2%씩 많은 수준이다. 생산이 늘어난 것도 아니다. 휘발유와 경유 생산량은 9월 들어 3.2%, 8%씩 감소했다. 소비 감소에 대비해 생산량을 줄였지만 예상보다 소비 감소폭이 컸던 셈이다.

기름값은 지난 여름 대비 낮아진 상태다. 지난 9월 주유소 평균 휘발유 판매가격은 리터(ℓ)당 1730원으로, 2월(1714.6원) 이후 가장 저렴했다. 올 들어 휘발유 가격이 가장 비쌌던 때는 ℓ당 2084원을 기록한 6월이었고, 7월 2030원, 8월 1792.2원 등으로 점차 낮아졌다. 경유 역시 9월 들어 ℓ당 1850.2원까지 내려왔다. 6월(2089원)과 비교하면 리터당 239원가량 내렸다.

기름값이 떨어졌는데도 소비가 줄자 업계에서는 고금리, 고물가 등을 비롯한 경기 침체 영향이 본격화됐다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9월 통계만 보고 섣불리 판단하긴 어렵지만, 코로나19 이후 경기 침체가 현실화하면서 전체적인 수요가 줄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경유는 산업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경기 둔화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물가와 금리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가계 소비 여력은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6월 6%를 찍으며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 11월(6.8%)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9월 역시 5.6%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응해 한국은행은 이달 들어 10년 만에 기준금리를 3%대로 올렸고, 그 여파로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7%대에 육박하고 있다.

기름값이 소비자가 체감하기엔 여전히 높은 수준에 머물러있다는 점도 기름 소비를 떨어트리는 요인으로 꼽힌다. 기름값이 많이 오를 것으로 전망될 때는 한번 주유소에 들를 때마다 최대한 많이 구매하지만, 기름값이 정체돼 있을 땐 조금씩 나눠 구매하는 행태가 나타난다. 김문식 한국주유소운영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안그래도 전반적인 소비가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기름값마저 충분히 낮지 않다는 인식이 크다보니 주유소가 타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기름 소비는 당분간 크게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발표한 ‘2022년 하반기 국민 소비지출 계획’에 따르면, 조사에 응한 국민 1000명 중 59.7%는 올해 하반기 소비지출을 상반기 대비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비를 줄일 부분으로는 ‘여행·외식·숙박’(20.4%) 등 대면 서비스와 자동차, 전자제품, 가구 등 1년 이상 반복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내구재’(15.0%)가 상대적으로 높은 응답률을 기록했다. 모두 기름 소비와 관련 있는 부분이다.

소비가 위축되면 주유소 업계와 정유업계의 실적 역시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김 이사장은 “주유소는 유통업이다보니 마진이 중요한데, 최근 마진이 오르는 속도보다 금리 인상 속도가 훨씬 가팔라 이자 부담을 호소하는 주유소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정유업계에서 유일하게 3분기 실적을 발표한 에쓰오일(S-Oil)의 경우 영업이익이 전 분기 대비 70% 넘게 줄어든 5117억원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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