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남수의 視線] 김진태 지사, 사과하는 것이 먼저다
지난 25일 강원도 지역개발공채를 즉시 매도하면서 깜짝 놀랐다. 공채를 그 자리에서 다시 파는데 드는 수수료가 구입가의 18%나 됐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발주한 용역을 수행하고 대금을 청구하기 위해서는 지역개발공채를 구입해야 한다. 5년 만기로 발행되는 지역채권은 낮은 이자로 인해 즉시 매도하는 경우가 많다. 지역에 있는 기업 중에는 5년짜리 채권을 가지고 있을 만큼 여유가 없다.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즉시 매도하는 이유다. 그런데 즉시 매도에 따른 수수료 비용이 금리인상 등의 영향으로 늘었는데, 이번 강원도의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논란으로 급상승했다.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금융시장의 위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다. 한 달 전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2050억 원의 보증 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해 법원에 회생신청을 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발표 직후 금융시장은 발칵 뒤집혔다. 투자자들은 김 지사의 발언을 매우 위험하게 받아들였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증을 선 어음은 안전하다는 인식이 깨지고 말았다.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김 지사는 지난 21일 내년 1월 29일까지 상환하겠다면서 “더는 불필요한 혼란이 없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급기야 정부는 50조 원을 긴급 투입하겠다면서 진화에 나섰다.
이 문제는 당연히 정치쟁점화 됐다. 여론도 김진태 지사의 섣부른 발표에 대한 비난 일색이었다. 이에 김 지사는 레고랜드 개발로 많은 빚을 지게 되어 이를 줄여보려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지만, 여론은 악화일로다. 금융시장 역시 김 지사의 입장을 이해할만큼 관대하지도, 여유롭지도 않았다. 금융위기와 함께 악몽 같았던 1997년 IMF사태가 촉발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낳았다. 여론은 격양됐고, 그 분노는 김진태 강원도지사에게 향했다.
김 지사의 실책은 윤석열 정부에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여소야대 상황을 타개하고 국정동력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정국 주도권 확보가 시급했다. 그런데 레고랜드 사태라는 악재를 만난 것이다. 특히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대선자금 수사가 활기를 띠는 상황에서 터진 ‘김진태 발’ 금융위기는 윤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더욱 꼬이게 했다. 정부도 긴급하게 50조 원을 투입하겠다고 했지만, 불안한 금융시장은 부동산 침체와 함께 경제 전반에 위기요인으로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김진태 지사의 행태가 달가울 수 없는 이유다.
김진태 지사로부터 비롯된 이번 사태를 보면서 6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본인은 떠올리고 싶지 않겠지만, 김 지사가 재선 국회의원이던 2016년 11월 국회 법사위에서 당시 촛불집회를 두고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결국 바람이 불면 다 꺼지게 돼 있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던 촛불집회를 두고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그의 발언은 오히려 촛불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LED 촛불까지 등장할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김 지사가 강경 보수정치인으로 인식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후 3선 국회의원에 도전한 김 지사는 고배를 마셨다.
그리고 2년간의 절치부심. 김 지사는 지난 6월 지방선거를 통해 화려하게 부활했다. 한때 그의 강성 이미지로 인해 국민의힘 공천에서 탈락하기도 했지만, 이를 이겨내고 결국 도지사 자리에 올랐다. 정치인에서 행정가로 변신한 김 지사는 과거의 강성 이미지를 바꾸기 위해 노력했다. 가능하면 도민의 삶과 직결된 일부터 하려고 했다.
동시에 방만한 운영을 한 전임 도정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레고랜드를 비롯해 강원개발공사 등 고질적인 강원도 부채를 획기적으로 줄이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실제로 레고랜드 사태의 원인이 최문순 도정으로 부터 비롯됐다는 평가도 있다. 이를 바로 잡겠다고 회생신청계획을 발표한 것이 일파만파된 것이다. 김 지사는 “회생신청계획 발표 시에 채무보증 이행의무는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으며, 채무보증은 반드시 이행하겠음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고 강조했지만, 여론의 화살을 돌리진 못했다. 김 지사는 이로 인해 그간의 노력은 빛을 잃었고, 오히려 6년 전의 촛불 발언을 소환하게 만들었다.
지난 27일, 베트남에서 귀국한 직후 인천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난 김진태 지사는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로 금융시장이 혼란에 빠진 데 대해 “본의 아니게 좀 미안하다”고 했다. 앞서 12월 15일까지 추경을 편성해 2050억원을 갚겠다고 했다. 하지만 신뢰를 거둬들인 채권시장이 김 지사의 뜻대로 작동할 지는 미지수다. 특히 2050억 원이라는 예산을 편성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다른 곳에 쓰일 예산을 줄여야 한다. 초긴축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강원도민의 몫이 됐다.
분명한 것은 이번 사태의 책임은 김 지사에게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김 지사로서는 억울한 부분도 있다. 사실이 왜곡되고, 원천 책임이 감춰지고, 정치적으로 이용된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어쨌든 이번 사태가 이렇게 국가적 문제로 커질 줄 몰랐을 것이다. 김 지사의 작은 날갯짓이었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불고 있는 태풍이 문제 아닌가. 또한 이번 사태로 입은 도민의 상실감도 적지 않다.
소소한 것 같지만, 지역개발공채 매입에 따른 수수료 부담이 늘어난 것을 받아들이는 도민들로서는 ‘내 잘못도 아닌데 돈을 떼이는 듯한’ 억울한 일을 당한 셈이다. 김 지사가 ‘본의 아니게 좀 미안하다’고 해서는 적지 않은 상처를 입은 강원도민에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
그저 바람이 분다고 이번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김 지사는 우선 강원도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김 지사가 애정을 쏟는 강원도를 위해서도 자신의 정치역정을 다시 한번 뒤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강원도민은 다시 마음을 열 것이다.
강원사회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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