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우려'만으로 소년원 간다고?..'우범소년 폐지' 외친 인권위
[편집자주] 소년법에는 우범소년 규정이 있다. 범죄를 저지를 우려가 있는 소년을 재판에 회부할 수 있는 제도다. 영화 '마이너리 리포트'(Minority Report)처럼 범죄 우려만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최근 우범소년 접수가 급증하면서 관련 규정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더 큰 범죄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는 주장이 있는 반면 소년들의 인권을 해친다는 비판도 있다. 법무부가 제도개선안을 마련한 이유다. 우범소년을 둘러싼 논란을 들여다봤다.
#. 아동학대와 가정폭력 위험성이 높은 가정에서 자란 A군은 초등학교 재학 중 부모의 다툼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출했다. 아버지는 경찰서를 찾아 자식의 '비행사실'을 알렸고, A군은 경찰서장 송치로 소년보호재판에 서게 됐다. 정당한 사유 없이 가출하고 이 과정에서 성인 남성과 만나는 등 유해환경을 접하면서 성범죄에 연루될 '우려'가 높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A군은 시설처분을 필요하단 부모의 의사 등이 고려돼 7호 처분(소년원 치료감호)을 받았다.
지난해 국회에서 열린 '우범소년 규정 폐지 필요성 토론회'에 소개된 한 청소년의 소년보호재판 사례다.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없는데도, 높은 수준의 소년보호 처분이 내려졌다. 법을 어기고 죄를 범한 범죄소년, 촉법소년과 동일한 낙인이 찍힌 것이다. 성격이나 환경 등을 미뤄볼 때 앞으로 법령을 어길 행위를 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우범소년으로 분류된 탓이다. 만약 A군이 소년보호 처분을 받지 않았다면, 언젠가 '반드시' 범죄를 저질렀을까.
우범소년은 수 년째 국가인권위원회를 비롯한 아동인권 관련 기관·단체들로부터 소년법이 가진 맹점 중 하나로 지적되는 규정이다.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아동을 조기 발견해 보호하고 장래 범죄를 예방한단 입법 취지와 다르게 아동의 자유와 가능성을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단 점에서다. 인권위가 촉법소년 연령 하향 문제와는 별개로 법무부에 우범소년 폐지를 권하는 까닭이다.
인권위는 아동청소년 인권보장을 위해 우범소년 규정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16년 여성가족부·교육부·보건복지부·법무부 등에 가출청소년을 우범소년에서 빼야 한다는 뜻을 전달한 인권위는 지난해에도 법무부에 소년법상 우범소년 규정을 삭제하고, 소년복지 차원의 보호대책으로 대체하는 내용의 법률개정과 정책개선을 권고했다.
1958년 제정 이후 반 세기 넘게 찾아보기 어렵던 우범소년들이 2010년대 들어 급격히 늘어나며 규정 손질이 필요하단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연간 1~2건에 불과했던 우범소년 통고 건수는 2012년 128건으로 세 자릿수를 넘기기 시작하더니, 2020년엔 1446건으로 급증했다. 최근 들어 소년 강력범죄에 따른 사회 불안감이 커지면서 경찰과 교육당국 등 정부차원에서 우범소년 규정을 적극 활용하게 된 게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이 과정에서 아동인권을 해칠 가능성이 크단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인권위는 우범소년 규정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헌법에 보장된 비차별원칙에 위배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헌법 제13조에선 모든 국민은 행위 시 법률에 의해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행위로 소추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지만, 우범소년은 형법에 어긋나는 행위를 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소년보호사건 처리가 될 수 있어서다.
우범소년 규정이 세계적 아동인권 보호 흐름에 어긋나는 점도 문제다. 소년비행방지를 위해 1990년 나온 유엔(UN) '리야드 가이드라인'은 비행(delinquent), 우범(pre-delinquent) 등의 표현으로 낙인찍기를 해선 안된단 지침을 명시했고,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9년 당사국들에게 우범소년 같은 지위비행 관련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등 청소년 비행을 소년복지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을 빼면 우범소년을 형사특별법인 소년법으로 규정하는 국가도 일본이 유일하다.
무엇보다 우범소년 규정이 보호자나 학교장, 복지시설 기관장의 통고로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재판에 넘어갈 수 있는 통고제도와 묶이면서 아동을 보호 울타리 바깥으로 쫓아내는 수단으로 오·남용되고 있단게 가장 우려되는 대목이다. 2018년 인권위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동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아동양육시설장이 통고해 소년원 등에 구금되는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인권위는 아동·청소년 인권보장을 위한 소년사법제도 개선 연구에서 "시설에서 관리하기 어렵단 이유로 소년부로 통고해 처우를 받게한 다음 퇴원 아동의 입소를 거부한다"며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동이 비시설 아동에 비해 사회로 복귀하는 속도가 더딜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승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국회 '위기아동 지원방안 마련 연속토론회'에서 "소년법 제정 당시엔 위기청소년을 보호하고 규율할 입법이 없었지만 현재는 관련 시설 연계나 특별한 지원을 할 수 있는 보호복지 영역이 존재한다"며 "복지 영역에서 해결 가능한 범주가 존재하는데도 우범소년 규정을 그대고 갖고 처우하는 게 합리적인가에 대해 면밀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법무부도 개선방안을 내놨다. 지난 26일 발표한 '소년범죄 종합대책'에서 우범소년에 대한 최소한의 사법적 개입을 유지한단 원칙을 재확인하면서도 우범소년에 대한 장기 보호관찰(5호)부터 소년원 송치(10호) 등 과도한 보호처분은 폐지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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