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중국” 약속하며 인권·노동 탄압한 시진핑 두 얼굴
시진핑 3연임에 감춰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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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쓰촨 대지진은 6만9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재난이었지만, 중국 사회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전국에서 자발적인 시민 지원 활동이 모였고, 민간조직들의 구조 활동도 활발히 이뤄졌다. 일각에선 개혁개방 30년 만에 마침내 중국에도 시민사회가 형성됐다고 규정했고, 고 류샤오보를 비롯한 300여명의 자유파 지식인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08헌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밑바닥 시민들의 공동체가 국가권력과의 독립성을 유지하며 발전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와 무관하지 않다. 이제 막 태동한 시민사회의 조직 범위가 넓고 깊어지면 풀뿌리 민중의 민주주의 역량도 풍부해지고, 권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힘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2010년 이후 동부 연안 대도시들에선 신세대 농민공이 주도하는 노동자운동이 폭풍처럼 등장했다. 난하이혼다, 위위안(裕元), 아이비엠(IBM) 등 수만명이 일하는 공장들에서 파업의 물결이 일어난 것이다. 아이폰과 나이키 등 글로벌 브랜드 상품을 만드는 공장들이 밀집한 이곳 ‘세계의 공장’에서 패기 넘치는 스무살 청년들이 주도하는 노동운동의 출현은 중국만이 아니라 전세계 자본주의 시스템에도 일침을 가하는 것이었다.
시진핑 체제 기대 컸지만
그러던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8차 당대회를 거쳐 출범한 시진핑 체제는 미래에 대한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이윤 증식에만 관심을 가진 초국적 자본을 비롯한 ‘1%’ 엘리트들은 글로벌 공급사슬의 심화나 금융시장 개방 같은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웠고, 주류 언론이나 지식인들은 시 주석의 굴곡 많은 인생사를 통해 향후 10년의 중국을 예측하려 했다.
집권 직후부터 시 주석은 강력한 반부패 드라이브를 통해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개혁개방 이후 심화된 관료 부패 문제가 체제에 대한 대중의 반감을 높였고, 이것을 곧 당-국가 체제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요소로 봤던 것이다. 지난해 샤오페이 중앙기율검사위원회 부서기는 공산당 100주년 경축 기자회견에서 시진핑 집권 이래 9년 동안 부패 혐의로 처벌한 관료가 374만여명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더구나 반부패운동의 결과 시진핑은 당내 경쟁자들을 정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섣부른 기대는 산산이 무너졌다. 시진핑 주석은 철저한 생존 본능과 권력 의지, 현장을 중시하는 성실함과 재능으로 무장한 지도자였지만, 평범한 인민들의 권리를 중히 여기는 지도자도, 불평등과 착취에 대한 인민의 불만에 귀 기울일 줄 아는 지도자도 아니었다. 오히려 기층의 목소리를 강하게 억누르면서, 이제 막 역동성을 갖춰가던 풀뿌리 시민사회에 통제의 잣대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우선 2015년 8월에 있었던 제9차 형법 개정을 주목해야 한다. ‘엄격하되 잔인하지 않도록’이란 목표로 이뤄진 이 개정은 역사상 가장 많은 52개조를 수정했는데, 특히 ‘불법모임 조직’이나 ‘공공위해죄’ 등에 대한 규정 폭을 넓히고, 처벌도 강화했다. 비시민으로 취급받는 농민공 등의 불만을 억누르고, 소수민족 시위를 강력하게 처벌하기 위한 조처였다. 그 뒤로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소수민족 사람들의 재교육 캠프 입소 등 폭넓은 통제가 가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덧붙여 이 법안 개정은 엄청난 인권 탄압을 불러왔다. 법 개정을 비판한 인권변호사 300여 명 중 4명의 변호사들이 국가전복선동죄 혐의로 기소되는 등 총 78명이 구속됐다. 그중 여럿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옥에 남아 있다.
2016년 중국 정부는 ‘사회조직 관리제도 개혁과 사회조직의 건강하고 순차적인 발전 촉진에 관한 의견’을 통해 시민사회단체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통제를 강화할 것을 천명했다. 활동가 관리를 강화하고, 자금 감독을 강화하며, 퇴출의 기준을 더 엄격하게 조정했다. 비영리 사회단체란 국가권력과는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일정한 긴장 속에서 민주적 통제의 힘을 갖는다.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통제와 개입을 강화했다.
가령 베이징 도심으로부터 2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농민공 집단 거주지역 피촌(皮村)에는 ‘베이징 노동자의 집’(北京工友之家)이라는 농민공 교육 및 문화 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조직이 있는데, 당국은 갑자기 전기 설비가 안전하게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빌미로 단체의 폐쇄를 압박했다. 철거 직전 상황까지 내몰렸던 이 단체는 대학교수들의 서명과 여론의 도움으로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로 운신의 폭이 훨씬 좁아졌고, 이후엔 지역공회의 통제를 받아들여야 했다. 청년 주거권 등 이슈를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쳐온 706청년공간 역시 당국의 다양한 압박에 못 이겨 베이징을 떠나야 했다. 여성 농민공들의 노동권이나 직장 내 성희롱에 대처하는 방법 등을 교육하며 여성노동자 운동을 조직하던 젠자오부뤄(尖椒部落)도 2021년 8월9일 단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노동운동 탄압도 심화됐다. 2018년 여름, ‘세계의 공장’ 선전에 위치한 자스커지 공장 노동자들이 공회(노동조합) 가입을 요구하며 시위하자, 회사는 이들을 구타하고 공장 밖으로 내쫓았다. 여름방학을 맞은 대학생들이 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했는데, 공안당국은 베이징대학 등의 마르크스주의자 청년들에게 혹독한 탄압을 가했다. 동아리가 폐쇄되고, 고학년 회원들이 구속됐으며, 몇몇은 퇴학 조치를 받았다. 이들에게 죄가 있다면, 2억9천만 농민공에 대한 착취에 맞서, 아는 대로 실천했다는 점뿐이다. 결과적으로 시진핑 체제는 보다 저렴하게 농민공을 착취하려는 자본의 시도를 강력한 노동운동 진압으로 지원했다.
‘강력한 권력자’ 향해 커지는 저항
자스커지 사건이 130여명의 노동자 및 학생운동가의 체포로 끝나기 무섭게, 선전과 맞댄 도시 홍콩에선 범죄인 송환조례 입법에 맞선 대규모 시민 항쟁이 일어났다. 어떤 활동가들은 이 법의 의도가 중국 노동운동 탄압과 연결되어 있다고 여겼다.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도시 곳곳에서 1년3개월에 걸쳐 이어진 항쟁은 중국 사회의 모순을 여실히 드러냈다.
지난 10월16일부터 일주일간 열린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의 3연임과 향후 5~10년 중국을 이끌 최고 관료들의 명단이 확정됐다. 대회가 열리기 사흘 전, 베이징 한복판 고가도로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확성기로 구호 소리가 들렸다. “봉쇄와 통제가 아닌, 자유를 원한다!” “노예가 아니라, 공민이 되자” 등 구호는 당대회의 성격과 한계를 폭로하기에 충분했다.
3연임을 확정한 시진핑은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자가 됐다. 그리고 이제, 평범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사라지기는커녕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억압된 것은 회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가 정말 세간의 비판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부당하게 체포된 활동가들부터 석방하고, 반대자들의 말할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홍명교 동아시아 연구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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