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두 선장이 이끄는 방주

기자 2022. 10.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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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서울 도심에 나갔더니 경복궁과 인사동 사이, 높은 담장을 없앤 송현동 부지의 넓은 공원이 펼쳐졌다. 110년 만의 개방이라는데 청명한 하늘 아래 코스모스와 백일홍 등 가을꽃의 모습이 장관이다. 그곳을 가로질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갔다. 여유로운 오후에 무심코 들른 그곳에서 의미심장한 작품을 만났다. 현대차가 지원하는 최우람의 ‘작은 방주’전(내년 2월26일까지)이었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전시는 육중한 둥근 철판의 가장자리를 떠받친 18개의 머리 없는 허수아비가 철판 위 하나의 머리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엉거주춤한 상태로 일어났다 앉았다 하면서 철판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작품으로 시작한다. 치열한 생존경쟁과 헤어나기 힘든 사회구조를 암시한다. 이어 어두운 방으로 들어가자 방주가 나타난다. 난파선처럼 선수와 선미는 사라졌고 양쪽으로 길쭉한 노를 35개씩 이어 세운 엉성한 선체만 있다. 배 가운데 등대가 있고 그 양쪽으로 등을 맞댄 선장 두 명이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원래 등대는 멀리서 배의 항로를 알려주는데 배 위에 있는 것은 방향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작품 작동시간이 되자 선체를 이룬 노들이 기계음에 맞춰 물결처럼 율동하면서 캄캄한 밤중에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느낌을 준다.

방주 주변으로는 몇 가지 작품이 더 있다. 방주 앞 양쪽에 놓인 터널은 번쩍이는 네온사인과 거울로 만들어져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무한공간이다. 방주 뒤쪽 벽의 영상에서는 문이 열리는가 하면 다시 닫힌 문이 나타나는 장면의 무한반복을 통해 출구를 찾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준다. 전시는 기후생태위기와 팬데믹, 사회경제적 불평등, 핵전쟁 위협에 직면한 현대문명의 질곡을 상징한다. 특히 위기 앞에서도 현재가 계속되기를 꿈꾸는 일(business as usual)의 어리석음을 꼬집는다. 이처럼 문명비판적인 작품이 현대차 후원으로 만들어진 것이 놀랍다. 재원뿐 아니라 철판과 방주의 움직임도 로봇공학을 연구하는 기업연구소 덕분이다. 현대문명을 활용해 현대문명을 비판하고 기업을 통해 경제를 비판한다.

우리는 이처럼 모순된 세계에 살고 있다. 과학기술 덕분에 경제가 성장하고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기후위기를 초래했는데 다시 과학기술을 통해 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코로나19로 인해 생태파괴와 글로벌화의 위험을 뼈저리게 느끼고 말했지만, 팬데믹이 잠잠해지자 그 실패와 위험마저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녹색성장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후생태위기에는 대개 동의하면서도 경제성장을 계속할지 자제할지 여부에는 의견이 엇갈린다.

얼마 전 미국 ‘타임’지가 ‘차세대 리더 100인’을 뽑았다. 기후위기 관련 인물이 15명이었는데 ‘독일의 툰베리’로 불려온 루이자 노이바우어도 포함됐다. 그와 ‘미래를 위한 금요일’ 동료들은 지난해 독일의 연방 기후변화법이 소극적 목표로 미래세대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 판결을 끌어냈다. 이런 액티비스트와 함께 탄소포집장치, 재생에너지 배터리 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기업가들도 포함됐다. 거대하고 복잡한 문명의 위기 앞에서 직접행동과 기업활동은 서로를 견제하고 자극하면서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한다.

작년 출범한 탄소중립위원회가 최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어 새롭게 출범했다. 탄소중립 목표는 재생에너지가 아닌 원자력 비중을 높여 이행하는 한편, 녹색성장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정책이 바뀌었다. 연관된 사안으로, 2020년 서울시교육청이 시작해 전국 시·도교육청으로 확산되면서 교육부의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중점 목표로 설정됐던 생태전환교육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제외됐다. 서울시는 지역단위 돌봄사회를 만드는 기초가 돼야 할 ‘마을공동체 활성화 지원 조례’가 비효율적이고 특정단체에 지원이 집중된다는 이유로 폐지를 추진 중이다. 모두 눈앞에 닥친 위험보다는 정권의 이해관계를 따지는 근시안을 드러낸다.

우리는 방주에 타고 있는 두 선장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누가 맞는 방향을 가리키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최소한 상대를 방주 바깥으로 밀어내려는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산화탄소만 줄이면서 현재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는 집단부터 탈성장·협동·행복의 경제를 말하는 집단, 현대사회의 생활방식과 가치관을 바꿔야 한다는 집단, 그 수단으로 종차별주의를 비판하면서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집단까지 공존하지 않으면 문명의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현재의 문제를 ‘가치중립적’인 진짜 위험으로 받아들이고 모두 방주 위의 공동체임을 인정하는 자각이 중요하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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