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희의 영화 같은 하루] [93] He’s just telling us we’re way too slow
프로 킬러 알렉스(리엄 니슨 분)는 의사로 위장해 입원 중인 타깃을 암살하고 자기 차로 돌아와 태연하게 문자를 보낸다. “일찍 끝났어. 저녁때 맞춰 집에 갈게.(Finished early. Be home in time for dinner.)” 물론 집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그저 차질 없이 일을 마쳤다는 보고문이다. 킬러들은 살인조차 일상 업무에 불과하다. 마틴 캠벨 감독 작품 ‘메모리(Memory∙2022∙사진)’의 한 장면이다.
알렉스는 멕시코에 있는 친구 마우리시오를 찾아간다. 마우리시오는 알렉스의 친구이기도 하지만 살인 청부 브로커이기도 하다. 반가운 얼굴로 맞는 마우리시오와는 달리 알렉스의 얼굴이 어둡다. “다름이 아니라 나 은퇴할 생각이야.(I’m trying to tell you, I’m getting out.)” 알츠하이머 초기인 알렉스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 생각하지만 마우리시오는 오히려 억지로 의뢰를 떠넘기며 은퇴를 만류한다. “은퇴 같은 소리 하지 마. 우리 같은 사람은 은퇴 없어.(So stop talking this retirement shit.)”
마지막 의뢰를 받은 알렉스는 암살 명단에 있는 타깃들을 하나둘 처리하다가 열세 살짜리 여자아이를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살인 청부에 환멸을 느낀 알렉스는 임무를 거절하고 오히려 마우리시오의 킬러들에게 쫓기는 몸이 되고 만다. 서서히 기억을 잃어가는 알렉스는 완전히 기억을 잃기 전에 어린 여자아이들을 납치해 성매매에 이용하는 조직을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같은 사건을 조사 중인 FBI의 세라 요원(가이 피어스 분)은 돈과 권력의 힘으로 법망을 피해 있던 가해자들이 하나둘 응징당하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처단자에게 공감하기 시작한다. 그러곤 살해당한 가해자들을 보며 긴 한숨과 함께 말한다. “우리가 너무 느리다는 거지.(He’s just telling us we’re way too s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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