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지구의 종말이 와도 한 정당만 지지한다니

오진영 작가·'새엄마 육아일기' 저자 2022. 10. 29.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진영·신념이 위협받는다며
의혹 불거져도 무조건 지지
경제성장 단물 누린 586들
미래세대 위해 이젠 내려놓길

2019년 하반기 이른바 ‘조국 사태’가 벌어졌을 때다. 이 상황이 마치 영화 ‘매트릭스’ 속 빨간 알약 같다고 누군가 말했을 때 매우 공감했다. 영화 주인공 네오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며 계속 살게 될’ 파란 알약 대신 ‘그간 살아왔던 세상의 거짓을 꿰뚫어 보게 될’ 빨간 알약을 선택한다. 당시 내 오랜 지인들은 조국 전 장관 부부가 자식들을 의전원과 로스쿨에 보내려고 저지른 입시 서류 조작에 대해 “표창장 하나로 한 가족을 도륙하는 검찰”이라며 조국 부부를 옹호했다. 나는 이 사람들이 여태껏 내가 알던 그들이 맞나? 어찌나 충격이었는지 마치 영화 속 빨간 알약이라도 삼킨 것 같았다.

1980년대 중반에 대학을 다녔다. 수감이나 퇴학 같은 불이익이 무서워 ‘운동권’이 되진 못했다. 그러나 서슬 푸르른 군사독재에 항거했던 이들의 용기와 헌신에 항상 감탄하고 감사해왔다. 그 운동권 출신들이 사법고시나 박사 학위, 정계 진출 등을 거쳐, 학생 시절에 몸이나 사렸던 나는 되지 못한 엘리트가 된 후에도 내 존경심은 변함없었다. 그들이 주축이 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역사의 사필귀정을 당대에 목격한 것 같아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내가 존경하고 감사했던 586 운동권 출신 엘리트들의 주장처럼 검찰 개혁이 목표였다면 조국 전 민정수석은 잠시 물러나 사법 대응을 하고 다른 인물이 장관을 맡아 개혁을 추진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어제의 용사’들은 조국 개인 엄호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며 서초동으로 몰려갔다. 그들은 조국 부부가 무엇을 했는지 사실을 밝히는 일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들의 진영과 오래전 신념이 모욕당하고 위협받는다며 분노하고 있었다. 정의연 사건 때 대표 개인의 배임·횡령 혐의를 제기했을 뿐인데 여성 및 시민 단체 관계자들이 ‘우리의 역사 바로 세우기 노력을 폄훼하지 말라’며 뛰쳐나온 것도 마찬가지였다.

정치인들이 권력을 갖고 무엇을 했는지가 아니라 그가 우리 편인지 아닌지를 판단 기준으로 삼는 모습은 올해 3월 대통령 선거에서 정점을 찍었다. 내 지인들은 “일생 동안 민주당만 찍었으니 미워도 다시 한번 찍겠다”고 했고 “실수 좀 했다고 버린다면 그게 신뢰인가. 계속 밀어줄 것”이라고 했다. 내가 “백현동, 대장동 비리, 성남FC 후원금, 변호사비 대납 등 사법 의혹이 이렇게 많은 사람을 어떻게 대통령으로 뽑을 수 있느냐”고 묻자 한 친구는 “난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보수 정당 지지할 일은 없어”라고 대답했다. 지구의 종말이 온대도 한 정당만 지지한다면 그건 정치가 아니라 신앙이다.

586세대는 앞으로 다시 오기 힘든 경제 호황 성장기의 단물을 누렸다. 대학 졸업장 하나로 골라서 취업했고, 신도시 개발 시기에 내 집을 마련했다. 단군 이래 최대 혜택을 누렸으니 정치적 결정은 자식 세대를 위해 내려놔도 좋으련만 소싯적 신념에서 고장 난 시계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으려고 한다. 서민과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겠다던 문재인 정부 아래에서 서민과 약자는 숨이 끊어지기 직전이 되었다. 지난 정부는 소주성, 탈원전, 부동산법 개악으로 나라 살림을 거덜 내고 젊은이들의 계층 상승 의지를 작살낸 끝에 정권을 교체당했다. 국민 생명 보호라는 기본 중 기본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통치를 잘못한 정권을 심판해 절치부심, 환골탈태할 기회를 주는 것이 국민의 역할이다. 자랑스러운 과거의 영광은 그만 추억으로 남기고 이제는 다음 세대가 살아갈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정치를 선택해야 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