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 그 빵 너머에 인간이 있다

기자 2022. 10. 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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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입구에서 “SPC는 사회적 이행 합의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시민을 만났다. 최대한 다정한 눈빛으로 소심한 응원을 하며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섰는데 바로 앞에서 20대로 보이는 여성들이 하는 대화 내용이 들렸다. “직원이 빵을 만들다 기계에 끼어 죽었는데 다음날 바로 그곳에서 기계를 돌렸대. 사람이 죽었는데….” “헐 미쳤네!” “그래서 나 저기 빵 이제 안 먹으려고.” “어 나도!” 사람들이 왜 피켓시위를 하는지 잘 모르는 친구와, 그에게 사연을 설명하는 친구의 대화였다. 지난 10월15일 경기 평택시 SPC 계열사인 에스피엘(SPL) 제빵공장에서 작업을 하던 20대 초반 여성 노동자가 소스 배합기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후 생긴 일상이다.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사고 후 사측의 비상식적 대응은 불매운동에 기름을 부었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라는 생각에 시민들은 SPC 계열사 브랜드 목록을 만들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유하며 불매를 독려하고, 1인 시위를 전개하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최근에는 SPC 제품은 물론이고 계열사 납품 목록까지 구별할 수 있는 바코드 사이트가 개설되었다. 이 와중에 서울중앙지법에서는 파리크라상·배스킨라빈스·던킨 가맹점주들이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 노동조합과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을 상대로 낸 가처분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가맹점 100m 이내에서 59가지 문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다. 이에 시민들은 노조를 대신하여 그 59개의 문구를 SNS에 공유하고 있다. 상세한 문구는 ‘소비자59’(https://c59.dun.land)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는 잠시 스쳐가는 소나기이길 바라겠지만, SPC 불매운동은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민들이 SPC 불매운동에 이렇게 진심인 이유는 SPC뿐 아니라 기업의 반노동·반인권적 행태가 시정되지 않은 채 노동자의 희생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불매운동에 동참하는 이유는 대단하고 거창한 명분이 있어서는 아니다. 최소한의 안전규칙도 지키지 않아 노동자를 위험하게 하는 곳에서 만들어진 것을 차마 목구멍으로 넘길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불매운동’은 어느덧 이벤트가 아닌 생활이 되었다. 이른바 ‘대리점 갑질’을 한 남양유업 제품을 수년째 불매하고 있고, 쿠팡이나 마켓컬리 등 노동자의 안전과 권리를 제대로 지키지 않는 곳의 불매 목록은 늘어나고 있다.

잘못은 사측이 했는데 애먼 가맹점이 타격 입는 것을 염려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 사안을 소비자와 가맹점주의 대결 구도로 만드는 일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불매운동의 목적은 기업을 망하게 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데 있다. 가맹점주 또한 동료 시민의 마음으로 사측에 이 문제를 해결하도록 요구하면 어떨까? 또 어떤 이는 이런 운동의 효과를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생활’로서의 불매운동은 ‘불매’를 넘어 근본적 문제를 고민하게 한다. 우리가 구매하는 제품 너머에 인간이 있음을 깨닫게 하는 일 말이다. 이런 감각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윤리다. 이런 윤리를 거스르는 기업은 타격을 입는다는 사례를 만들어야 우리는 동료 시민을 지킬 수 있고, 죄책감 없이 우유와 빵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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