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한국은 불나기 쉬운‘메마른 숲’

2022. 10. 2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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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어렵다. 주위의 어떤 이가 석 달 후 주가지수를 맞출 수 있다고 하거나, 어떤 벤처 기업이 일 년 뒤에 대박 터진다고 하거나, 어떤 미래 기술이 인류를 구한다고 예측한다면 감히 장담컨대 100% 거짓말이라고 보면 된다.

사회는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고 비선형적 작용을 통해 요소의 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창발현상(emergence)을 보인다. 미래는 희망, 불안, 두려움, 믿음 등 개인들의 가치가 격하게 부딪히는 곳이기 때문에 불확실하고 예측이 어렵다.

「 경제·사회 상황 불확실하고 위험
언제든 ‘대형산불’로 번질 가능성
아무 대책도 못 세우고 당할 수도
지금이라도 미래 논쟁 시작해야

선데이칼럼
사회과학분야에서 나름대로 정확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인구 전망도 마찬가지이다. 2022년 유엔이 발표한 세계 인구추계에 따르면 2100년에 104억(오차 ±17.5억)에 이르며, 50% 확률로 그 이전에 정체되거나 줄어들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추계 값은 연구기관마다 다르다. 국제응용시스템연구소(IIASA)는 2070년께 최고치 98억 명에 다다른 후 감소한다고 전망했고, 미국 워싱턴대 의학정보평가연구소(IHME)는 2064년 97억에 이른 후 2100년에는 88억으로 줄어든다고 했다. 각 연구소가 사용하는 자료와 가정 등 추계 모델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당연한 전망이지만 기관별 전망치의 편차는 예상보다 크다. 향후 20~30년의 단기 전망은 매우 정확하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점집에서 예측을 잘하는 방법을 아는가? 먼저 정량적인 전망은 피하는 것이 좋다. ‘좋다-나쁘다-잘될 것이다’는 등 정성적인 용어를 써야 한다. 해석은 독자 몫이라고 했다. 예측은 다중으로 해석될 수 있도록 모호한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주어를 생략하는 것도 방법이다. 리디아 왕국의 왕 크로소스가 페르시아와 전쟁을 해도 되겠냐고 델포이에 있는 아폴로 신전에 신탁을 물었다. ‘한 왕국이 멸망할 것’이라는 신탁을 들은 그는 확신을 가지고 페르시아와 전쟁을 했지만 패했다. 신탁이 틀렸다고 항의하는 그에게 되돌아온 답은 신탁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신탁의 주어는 ‘너’의 왕국이었다.

또 긍정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독자가 듣고 싶어 하는 전망을 말해 주면 된다. 사업이 잘될 것이다, 건강해질 것이다, 여름에는 강 조심하라, 겨울에는 산 조심하라 등등이 그 예이다.

부정적인 예측에는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복채를 더 많이 뽑아낼 가능성이 크다. 인간은 손해나 부정적인 단어에 더 민감하다.

미래 사건을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미래 상황에 대비해야 할까? 복잡계 과학자 존 카스티 박사에 따르면 어떤 사건의 발생은 두 가지 세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무작위한 행위’와 ‘분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숲에 담배꽁초를 습관적으로 버리는 나쁜 등산객을 생각해 보자. 그는 오늘도 평상시처럼 등산 중에 숲에 담배꽁초를 버릴 것이다. 비에 젖은 숲과 가뭄 때문에 메마른 숲을 비교해 보면 어느 쪽에서 산불로 커질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카스티 박사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과 같은 사건이 언제 발생할지 미리 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분위기 또는 환경 변화는 끊임없이 그 변화 신호를 내보내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살펴보면 미리 대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얼마 전 강원도 지사가 레고랜드 조성을 위해 발행된 어음에 대해 지방정부의 지급보증 철회 의사를 밝히자 금융시장 경색으로 이어지는 사태가 있었다. 이 사건은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금융 시장은 오랜 가뭄에 바짝 메마른 풀처럼 위험한 상태로 이미 변화되어 있었고, 어쩌다 어떤 무책임한 도지사의 담배꽁초 때문에 산불로 번졌다는 것이다. 평상시 호황기에는 그냥 단순한 실수로 치부될 도지사의 한마디가 이번에는 대형 참사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상관없이 분위기는 터지기 직전에 무르익은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무책임한 언사에 대한 책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경제·사회 분위기는 딱 그런 방향으로 계속 몰리고 있는 것 같다. 지나친 우려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향후 5년간 여러 번의 위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 부닥쳐 있다. 인구구조, 미·중 패권경쟁, 양극화 및 기후변화 등 외부 환경의 불확실성뿐만 아니라 중국특수 종식, 줄어들지 않는 격차와 커지는 사회적 갈등,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멸 등은 마치 산불 나기 좋게 마른 풀과 나무가 가득 찬 상태이다.

작은 충격만 가해져도 잘못하면 대형 산불로 커질 것이다. 이제라도 미리 논의하고 적절한 논쟁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녹록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당면한 환경은 매우 불확실하고, 언제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위험한 상황으로 한 발자국씩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당연히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 2015년 빌 게이츠가 TED 강연에서 팬데믹 유행에 대해 경고했을 때도 세계 각국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거나 예산이 없다고 핑계를 댔지만 결국에는 큰 인명과 경제적 손실로 그 비용을 치르고야 말았다. 이제 더 늦기 전에 논쟁의 키워드를 바꾸어야 한다. 다행히 예상되는 상황을 피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항상 행운이 따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박병원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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