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말 대신 문자’ MZ세대
얼마 전 일이다. 한 출판사의 협조를 얻을 게 있어 전화를 걸었더니 젊은 목소리의 편집 담당자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하시는 내용을 e메일로 보내주세요.” “그렇게 어려운 질문 아니고요, 왜 이런 책을 기획하게 됐는지 짧게 듣고 싶어서요.” 취재할 게 산더미인데 언제 e메일 써서 보내고 또 답을 기다리나. 통화한 김에 말로 몇 마디 주고받으면 될 일을 몇 시간씩 기다리기 싫었다. 사실 질문과 답이 오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질문이 가지를 치면 취재내용은 훨씬 풍부해진다. “제가 지금 마감이 막바지라 좀 급해서요.” “그럼, 지금 질문을 불러주세요. 제가 그걸 받아 적고, 거기 맞춰 e메일로 답 드릴게요.” 강적이다! 결국 나는 원하는 질문을 전화기에 얘기했고, 그는 하루 뒤 e메일로 답을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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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라인 글에 ‘이모티콘’ 등장 40주년
우리는 충분히 문자로 소통하고 있나
」
‘촉박한 마감 시간’을 핑계로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답을 요청하는 기자들이 얼마나 ‘진상’인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건 좀 너무한 듯 싶다. 그는 나의 전화 말투 어디가 맘에 안들었던 걸까. 처음 인사하는 기자라 확실히 하고 싶었겠지, 언론에 나가는 코멘트이니 신중하고 싶었던 거겠지. 끝까지 문자로만 소통하겠다던 그의 태도가 여전히 이해가 안 된다.
홍보담당자들도 젊은 기자들 때문에 난감하긴 마찬가지란다. 전화를 걸어 “이런 이슈가 있는데요…” 말 꺼내기 무섭게 “e메일로 보내주세요” 한단다. 몇 번 행사장에서 만나 인사도 나눈 사이지만 전화를 걸면 늘 건조한 말투로 대화보다는 e메일 또는 메신저를 고집한단다. “보낸 자료를 봤는지 아닌지 확인도 안 되고, 전화하면 또 ‘톡 주세요’라는 말뿐. 부연 설명을 하고 싶어도 기회를 안 주니 답답하다”는 게 시니어 홍보담당자들의 푸념이다.
올해는 기네스북이 인정한 세계 최초의 이모티콘 :-)이 온라인에 등장한 지 40주년이 되는 해다. 1982년 9월 19일 오전 11시44분 미국 카네기멜런대 게시판에 처음 등장한 이모티콘은 컴퓨터공학과 스콧 팔먼 교수의 작품이다. 당시 과내에서 운영되던 인트라넷 게시판에서 글의 뉘앙스를 오해한 이용자들끼리 빈번하게 싸움이 벌어진 것. 이에 팔먼 교수는 쌍점(:), 하이픈(-), 괄호( )를 이용해 사람의 눈·코·입을 형상화해서 유머로 받아들일 글에는 :-), 진지한 글에는 :-( 표시를 문장 뒤에 붙이자고 제안했다.
지금은 다양한 캐릭터를 활용한, 심지어 움직이기도 하는 수십 만 개의 이모티콘이 인간의 희로애락을 대변하고 있다. 단순한 글자 조합 끝에 이모티콘이 더해지면서 지난 40년 동안 모바일 메신저는 활성화됐지만 그만큼 악영향도 끼쳤다. 전화 한 통이면 해결될 일도 굳이 문자 메시지, e메일을 몇 번씩 주고받는다.
그 문장 끝에 붙는 각종 이모티콘은 날로 화려해지고 있지만, 과연 이것으로 화자가 전달하려는 말의 뉘앙스가 충분히 전달될까. 지금도 새로운 이모티콘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단순히 캐릭터의 차이뿐만은 아니다. 좀 더 정확하고 디테일하게 감정과 의사를 표현하고 싶은 수요가 크기 때문이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우리는 모두 비대면 시대를 경험했다. 그런데 그 시간이 결코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버텨온 시간일 뿐. 그런데 감성이 풍부한 청년기에 비대면 시대를 경험한 MZ세대는 이제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 대면조차 거부하고 문자를 통한 철저히 비대면인 소통에만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답답하다. 이들은 진짜 문자 소통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는 걸까. 요즘은 문장 끝에 붙인 ^^ 이모티콘이 진심인지, 마침표처럼 으레 붙는 기호인지 의심이 간다. e메일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거리감도 여전하다. 그래서 얼굴 맞대고 목소리 들으며 대화해 보길 원하는데, 이런 내가 ‘꼰대’인 건가.
서정민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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