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잊혀진 대법관 인선

박미영 2022. 10. 28.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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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제주 법조계는 겹경사를 맞았다.

제주 법원·검찰의 수장을 맡던 두 사람 중 한 명은 대법관 후보자로, 한 명은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됐기 때문이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당장에야 대법관 1명 없는 게 타격이 없어 보이지만 점진적으로 문제가 커질 것"이라며 "대법원은 변론하는 곳이 아니라 검토해서 결론을 내리는 곳인데도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있으니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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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제주 법조계는 겹경사를 맞았다. 제주 법원·검찰의 수장을 맡던 두 사람 중 한 명은 대법관 후보자로, 한 명은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됐기 때문이다. 당시 오석준 법원장과 이원석 지검장은 그렇게 비슷한 시기 서초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두 사람의 현재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먼저 서울로 향한 이원석 총장은 대검 차장검사로 총장 직무대리를 맡으며 검찰 조직 재정비에 나섰다.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보다 일주일 늦은 9월5일 총장 인사청문회를 치른 이 총장은 청문회를 마친 뒤 11일 만에 검찰총장에 임명됐다. 여야의 대치로 청문보고서 채택은 불발됐지만 검찰총장은 국회 동의 없이도 대통령이 직권으로 임명할 수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이 총장은 취임 후 민생범죄 척결을 위한 각종 합동수사단을 발족하고 여러 외부 기관을 찾아 소통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박미영 사회부 기자
반면 8월 초 이임식을 마치고 대법원으로 간 오 후보자는 창밖만 바라보고 있다. 같은 달 29일 인사청문회를 마친 뒤 이렇다 할 진전 없이 출퇴근만 하고 있다. 대법관은 총장처럼 직무대리도 할 수 없는 자리다. 밀려드는 사건은 미봉책으로 나머지 대법관이 나눠서 처리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 14층에 마련된 사무실은 있지만 대법관으로 임명된 것이 아니라 기록을 볼 수도, 재판을 준비할 수도 없다. 대법관은 국회의 동의가 없으면 대통령이 임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국회가 하루빨리 일하도록 해주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지난 4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법원을 향해 ‘재판 지연’ 문제를 계속해서 지적했다. 법원의 사건처리 기간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오래된 미제사건이 계속 쌓여가고 있다는 것이다.

‘재판 지연’ 문제는 상고심도 예외가 아니다. 법사위 소속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실이 최근 대법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30일을 기준으로 대법원 민사본안 상고심 사건의 미제분포지수는 소송남용인 사건을 제외하고 37.8을 기록했다. 미제분포지수는 법원이 심리 중인 미제사건의 분포 현황을 나타내는 지수인데, 장기 미제사건의 비율이 높을수록 낮은 수치를 나타낸다. 미제분포지수는 통상 60∼70을 유지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대법원조차도 절반 수준인 30대까지 떨어진 것이다. 한 현직 부장판사는 “당장에야 대법관 1명 없는 게 타격이 없어 보이지만 점진적으로 문제가 커질 것”이라며 “대법원은 변론하는 곳이 아니라 검토해서 결론을 내리는 곳인데도 사건 처리가 지연되고 있으니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야는 27일 국회 본회의를 열고 44개 법안과 국정감사 결과보고서 채택 등 45개 안건을 의결했지만 오 후보자 임명동의안건의 본회의 상정은 무산됐다. 추가 검증이나 더 이상의 공론 과정도 없이 대법관 인선은 하세월만 보내고 있다. 2022년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해 대법관 1명은 3665건의 사건을 처리했다. 최소 7000명이 넘는 사람이 대법원의 판결을 손꼽아 기다렸을 것이다. 정쟁에 밀려 뒷전이 된 대법관 인선에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만 침해되고 있다.

박미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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