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일호의미술여행]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가

2022. 10. 28.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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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4월26일 스페인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에 나치 콘도르 군단이 수만 발의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다.

나치가 스페인공화국에 대항하는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반란군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 목적은 폭탄과 전투기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왼쪽 위 황소를 두 눈과 콧구멍이 기형적으로 삐뚤어진 괴물처럼 만들어 나치의 실체를 묘사했고, 귀를 날카로운 단검 형태로 그려 나치의 포악함을 상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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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년 4월26일 스페인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에 나치 콘도르 군단이 수만 발의 무차별 폭격을 퍼부었다. 도시는 쑥대밭이 됐고, 1654명의 사망자와 889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나치가 스페인공화국에 대항하는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반란군을 지원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 목적은 폭탄과 전투기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충격적인 비극을 전해 듣고, 파블로 피카소가 ‘게르니카’에 분노의 감정을 담았다. 왼쪽 위 황소를 두 눈과 콧구멍이 기형적으로 삐뚤어진 괴물처럼 만들어 나치의 실체를 묘사했고, 귀를 날카로운 단검 형태로 그려 나치의 포악함을 상징했다. 그 아래로 죽은 아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이 있고, 반대편에는 몸이 잘린 채 이 비극에 대한 하늘의 답을 구하듯 절규하는 여인이 있다.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1937)
창에 찔려 죽으며 괴성을 지르는 말은 몸통과 꼬리와 하반신이 산산이 부서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바닥에 쓰러져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사람, 한이 맺힌 영혼처럼 떠도는 사람 얼굴이 도시 전체를 배회하듯 화면 여기저기에 있다. 피카소는 화면 중앙 위에 전구를 품은 태양을 그려 넣어 나치의 이 만행과 잔혹함을 지켜보는 신의 눈을 상징했다.

‘게르니카’가 당시 참상을 우리에게 더욱 진실하게 전하는 것은 입체파 방식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나타낸 그림보다 전후좌우 다양한 각도에서 본 참상의 부분들을 분석하고 해체한 후 재구성한 입체파 방식이 실감을 더한다. 피카소가 길을 연 입체파는 하나의 시점에서 바라본 모습으로는 물체나 사건의 실체적 모습을 완전하게 나타낼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설득력이 있다. 단색조로 구성된 색이 엄숙하고 장엄한 비극적 분위기를 만들어놓고 세로 3.5m, 가로 8m에 가까운 거대한 크기도 당시의 생생한 느낌을 울림 있게 전달한다.

나치의 이런 만행에 대한 반성의 시간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곳곳에서 전쟁과 폭력의 광기가 나타나는 걸 보면 인간은 정말 망각의 동물인 것 같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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