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억울한 필라델피아 필리스
미국 필라델피아는 정치·경제적으로 역사가 깊은 도시다. 영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던 미국이 1776년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곳이다. 미 제헌의회가 열렸고, 워싱턴으로 옮기기 전 10년간 임시 수도였다. 미국인이 자국 화폐를 사용할 수 있게 한 주조국이 처음 설립됐고, 증권거래소도 여기서 생겨났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이 발표하는 제조업지수는 미국 산업 동향을 보여주는 지표로 널리 쓰인다. 극성 스포츠팬이 많기로 유명한 필라델피아에는 야구(필리스)·농구(세븐티식서스)·아이스하키(플라이어스)·풋볼(이글스) 등 4대 프로 스포츠팀이 있다. 한 도시명이 4대 스포츠에 모두 들어간 미국 도시는 7곳뿐이다.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에 진출해 29일부터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맞붙는다. 필리스는 박찬호가 2009년, 김현수가 2017년 뛰었던 팀이어서 한국에도 친숙하다. 경제전문 일간 월스트리트 저널이 최근 ‘필리스가 이긴다면, 경기침체에 대비해야 한다’는 칼럼을 내보냈다. 필라델피아 연고팀의 월드시리즈 우승 때마다 경기가 침체했다고 한다. 1929년 필라델피아 애슬레틱스(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우승한 뒤 1930년 대공황이 미국을 휩쓸었다. 이후 필리스가 창단 98년 만인 1980년 우승했는데, 이듬해 경기침체가 닥쳤다. 필리스가 두 번째 우승한 2008년은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이었다. 필리스가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올해는 40년 만에 최악의 인플레이션이 진행 중이다.
과학적 근거가 없는 우스갯소리지만, 가벼운 징크스로 여길 수는 있다. 징크스만 놓고 보면 프로스포츠 사상 첫 1만패 기록을 갖고 있고, 14년 만에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는 ‘언더독’ 필리스의 우승을 가리키는 쪽이 더 많다. 6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강팀 애스트로스는 포스트시즌 전적이 7전 전승인데, 전승으로 월드시리즈에 올랐던 팀은 준우승에 머물렀다. 2019·2021년 월드시리즈에서 애스트로스는 내셔널리그 동부 팀에 잇따라 패했다. 필리스도 내셔널리그 동부 소속이다. 더스틴 베이커 애스트로스 감독은 2000승이 넘는 명장이지만 월드시리즈 우승은 없다. 징크스는 깨지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말도 있다.
안호기 논설위원 haho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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