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동정담] 양자경과 장쯔이의 선택
주인공 에블린을 연기하는 양자경(양쯔충)은 '제3의 전성기'를 맞은 것 같다. 영화에는 그녀의 얼굴 클로즈업이 수없이 반복된다. 광활한 우주에 살고 있는 수천, 수만의 다른 그녀다. 한 작품에서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행운이라 하기엔 영화에서 양자경의 존재감이 너무나 크다. 전성기 때처럼 화려한 발차기를 날릴 때에도,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을 걸을 때에도, 삶에 찌들어 히스테리를 부리는 중년 아줌마로 돌아와서도 그녀는 반짝반짝 빛난다.
영화 '에에올'에서 양자경 멀티버스를 가르는 열쇠는 '선택'이다. 2000년대 초 할리우드에 진출한 그녀는 20년 가까이 고군분투하며 다양한 작품을 선택했다. 아웅산 수지를 연기한 '더 레이디' 같은 영화도 있었고, 마블 히어로물과 '아바타' '스타트렉' 같은 대작도 있었다. 1962년생으로 올해 환갑인 이 배우의 할리우드 활약상을 보고 있노라면 '일흔 넘어 생의 전성기가 오기도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배우 윤여정 씨가 생각난다. 한눈 팔지 않고 묵묵히, 스스로를 갈고닦으면서, 수많은 선택지에 두려움 없이 맞선 인생이 참 멋지구나 감탄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장쯔이의 뉴스를 들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3연임 직후 중국 CCTV에 출연해 충성 맹세를 했다던가. 장쯔이는 "앞으로 일을 할 때 시 주석의 지시를 따르고 중국의 문화적 태도를 준수할 것이며 중국의 이야기를 더 나은 방식으로 얘기하겠다"고 했다.
영국 더 타임스는 '그녀가 공산당의 치어리더가 됐다'고 썼다. 양자경과 출연한 영화 '와호장룡'과 '게이샤의 추억'에서 장쯔이가 얼마나 반짝였던가 생각하니 입맛이 썼다. 이제 두 사람은 전혀 다른 우주에서 살게 됐다. 누구나 제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지만, 이럴 때 보면 삶이 참 얄궂다.
[신찬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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