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사태’ 아닌 ‘김진태발 금융위기’

정남구 2022. 10. 2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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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정남구의 경제 톡
지자체 채무 디폴트 선언 후폭풍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2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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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위가 레고랜드 사업을 사실상 승인했습니다. 만약 이거 안 되면 소양강에 뛰어내리겠다고 했는데, 안 그러게 돼서 다행입니다.^^;;”

2014년 9월26일 트위터에 이런 글을 쓴 사람은 당시 강원도 춘천 지역구의 새누리당 소속 김진태 국회의원이었다. ‘레고랜드 코리아’ 개발사업은 춘천 소양강에 있는 섬 중도의 도·시유지에 테마파크를 짓는 일이다. 강원도는 2011년 9월 영국의 멀린 엔터테인먼트그룹과 5683억원을 투자해 132만2천㎡ 넓이의 테마파크를 조성하는 투자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 그런데 개발 과정에서 고인돌 101기 등 청동기 시대 유구가 대량 발견됐다. 이 때문에 개발이냐 보존이냐 논란이 벌어졌다. 결국 문화재청이 유적을 보존하면서 레고랜드를 조성하라는 조건부 승인을 했다. 김 의원의 트위터 글은 이런 결정에 반색하는 내용이었다.

도지사의 폭탄선언 ‘디폴트’

레고랜드 개발사업은 그 뒤에도 상당 기간 표류했다. 강원도는 2012년 8월 엘엘개발을 설립해 사업을 추진했는데, 2015년 총괄개발 대표가 배임·횡령 혐의로 구속되는 등 비리 사건이 터졌다. 자금도 부족해 사업을 진척시키지 못했다. 결국 2018년 멀린 쪽이 개발과 투자를 맡고, 엘엘개발은 주변 부지 매각과 기반조성 공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엘엘개발은 2019년에 강원중도개발공사(GJC)로 이름을 바꿨다.

자금 조달이 늘 문제였다. 강원도와 중도개발공사는 주변 부지를 매각해 자금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부지 매각은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 중도개발공사는 아이원제일차라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대출을 받고, 아이원제일차가 대출채권을 담보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이를 만기 연장하는 방식으로 살림을 꾸려갔다. 2021년 사업보고서를 보면, 중도개발공사가 아이원제일차 기업어음을 통해 조달한 자금은 2050억원이다. 비원제일차를 통해서도 50억원을 조달했으나, 이는 2021년 11월27일 만기에 청산한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는 중도개발공사가 아이원제일차를 통해 빌린 2050억원의 대출 약정에 대해 ‘레고랜드 테마파크 주변부지에 대한 환매조건부 보증’을 제공하고, 중도개발공사 소유의 사업용 토지(장부가 1305억원)에 대해 1555억원의 담보권을 설정해두고 있었다. 2021년 말 현재 중도개발공사의 자산은 이 토지를 포함하여 2713억원, 부채는 아이원제일차를 통해 조달한 단기차입금을 포함해 2578억원이다. 불확실성은 컸지만, 심각한 위기 상황은 아니었다. 5월5일 어린이날에 맞춰 개장한 레고랜드 코리아 리조트에는 8월에 12만3천여명, 9월 13만8천여명이 방문했다. 코로나 대유행의 영향도 있어서, 애초 기대했던 연간 200만명에 크게 미달했다.

9월29일은 중도개발공사가 아이원제일차에서 빌린 대출의 만기일이었다. 그런데 하루 전 문제의 사건이 일어났다. 6월1일 선거에서 당선한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폭탄선언을 했다. 강원중도개발공사에 대해 법원에 ‘기업회생’ 신청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강원도가 안고 있는 2050억원의 보증부담에서 벗어나는 것이 이번 회생 신청의 목적”이라고 김 지사는 밝혔다.

‘기업회생’은 파산 위험에 처한 기업이 법원에 ‘회생시키는 것이 더 가치있으니 채무를 조정해 살길을 열어달라’고 하는 것이다. 중도개발공사는 파산 위험에 처했던가? 아이원제일차를 통해 기업어음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을 바로 갚을 능력은 물론 없었다. 그러나 대출금 만기 연장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실제 서류 준비도 다 끝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김진태 지사가 ‘강원도의 지급 보증’을 철회한 것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전조는 있었다. 잘 풀리지 않은 레고랜드 개발사업은 최문순 지사의 약점으로, 선거 때부터 좋은 공격 재료였다. 도지사직인수위원장을 맡은 김기선 새로운강원도준비위원장은 6월29일 “강원도 및 중도개발공사가 유치한 레고랜드 사업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불공정 계약으로 도민의 혈세가 막대하게 투입되었음에도 수익성은 거의 없다”고 비판했다. 김 지사는 8월17일 기자회견에서 “강원도 빚이 약 1조원인데 임기 4년 동안 채무 6천억원을 감축하겠다”며 “레고랜드에서 들어올 2050억원 청구서는 최대한 막아보겠다”고 했다.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거부하자, 아이원제일차가 발행한 2050억원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은 9월29일 1차 부도가 났다. 한국신용평가는 최고등급인 A1인 이 기업어음의 신용등급을 C로 낮췄다. 기업어음은 10월5일 최종 부도 처리됐다.

광야를 불사르는 데는 성냥개비 하나면 충분하다. 강원도의 채무 불이행은 기업 자금조달 시장을 뒤흔드는 사태의 시작이었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장금리가 크게 오르는 가운데, 신용이 낮은 기업어음이나 회사채를 사려는 사람들이 싹 사라져버렸다. 투자자들은 건설사의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관련 증권을, 증권사를 믿지 못했다. 국가나 다름없는 지방자치단체가 지급보증을 해놓고는 나 몰라라 해버렸으니, 신용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지방자치법(제139조 제4항)은 “지방자치단체는 조례나 계약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채무의 이행을 지체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강원도는 지급보증을 중단하는 순간 이미 했던 지급보증에 따라 채무를 갚아야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에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는 당시 판교 특별회계에서 갖다 쓴 돈(5200억원)의 정산 시기를 늦추자는 것에 불과했다. 자금시장에서 지방채 신용과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계속되는 ‘김진태발 금리상승’

지방자치단체의 지급보증은 자금시장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최한수·이창민)이 2015년 내놓은 ‘공기업 부채와 도덕적 해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공기업은 정부의 암묵적 보증에 의해 작게는 0.66%포인트(2012년), 2009년 세계금융위기 때 같은 시기에는 4.01%포인트 낮은 이자율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투자자들이 “떼일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김 지사는 이런 제도에 폭탄을 던졌다. 강원도는 뒤늦게 12월15일까지 보증채무를 갚겠다고 밝혔다. 행정안전부는 지자체 13곳이 보증하고 있는 1조701억원에 대한 채무를 충실히 이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회사채와 기업어음 등을 매입하기 위해 50조원+알파(α) 규모의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그러나 9월28일 이후 폭등한 기업어음 금리는 상승세가 멈추지 않고 있다. 10월17일부터 28일까지 하루 평균 기업어음 할인액도 9월1일부터 27일까지 평균액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이 솥뚜껑만 봐도 놀라는 상황이 한동안 이어질 것 같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한겨레 논설위원. 경제부장, 도쿄특파원을 역임했다. <통계가 전하는 거짓말> 등의 책을 썼다. 라디오와 티브이에서 오래 경제 해설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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