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받을 여성의 자격” 따진 신문 논설 향한 시골 부인의 일갈[플랫]
1898년 11월7일, ‘제국신문’에는 여학교 교육에 관한 흥미로운 논설이 실렸다. 사람은 모두 평등하기 때문에 조선의 계급 간의 차별, 남녀 차별이 없어져야 할 악습이라는 비판으로 시작하는 이 논설이 실제 주장하는 바는 여학생들의 입학 조건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배경을 알기 위해서는 1898년 가을에 일어났던 일들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1898년 가을은 북촌 벌열가의 부인들, 외국인, 귀화인, 기생, 평민, 과부 등 다양한 배경의 여성들이 모여 만든 찬양회라는 여성단체가 형성되어 정치, 교육, 문화 등 다방면에서 운동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찬양회는 <여권통문>, 즉 여성의 교육권, 정치권, 경제권을 명시한 ‘여학교 설시 통문’을 발표한 뒤 연명 상소를 올리는 등 관립 여학교 설립을 위해 적극적인 정치활동을 벌인다.
[여적]여권통문(女權通文)
그들은 남성이 중심인 단체들의 집회, 연설회, 토론회에 참여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조직하기도 하고, 정치 사건이 발생하면 나가 다른 단체들과 함께 시위에 참여하였다. 그런데 이들의 활동에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당시 여성들이 참여하는 사람들의 계급과 배경의 구분 없이 서로를 동료로 인정하고 보편적인 권리의 확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국신문의 논설은 여성을 내부적으로 분리해서 “자격” 논쟁을 하게 만드는, 운동의 확장에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다. 제국신문은 모든 여성이 같다고 말할 수 없다면서 여학교를 만들 때에는 반드시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원칙은 다름 아닌 첩들을 배제하는 것이었다. 첩은 하늘이 준 권리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부류의 사람들과 여성들이 자신을 구분할 때 평등을 말할 권리가 정당화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분의 논리는 배경, 계급, 출신으로 사람들을 구분하고 나와 너를 가르며 나에게 주어진 권리를 다른 배경이나 계급의 사람들과 나눌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나보다 나은 배경, 계급, 출신의 사람과 만날 때 내가 남에게 했던 동일한 배척을 나 역시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국신문의 평등을 위한 여성의 “자격” 논쟁은 결과적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지나지 않는다.
이 논설을 읽은 한 시골 여성은 논설의 논지를 비판하는 글을 제국신문에 투고한다. “어떤 유지각한 시골 부인의 편지”에서 이 여성은 첩제는 결국 구조와 관습의 문제이지 개별 첩의 문제는 아니라고 반박한다. 그녀는 논설처럼 자격을 논한다면, 그 기준에 따라 여자도 남자도 무수히 층위를 나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렇게 나눠놓고 보면 남자 중에도, 정실과 그 자식들 중에도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첩이라는 존재들이 어떻게 구조적으로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약술한 뒤 그녀는 이와 같은 구분과 특정 계급에 대한 폄하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인터랙티브] 여성, 외치다
사회의 진보란 특정 여성들에게만 자격을 줄 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그녀는 여학교를 만들기도 전에 이런 논란이 생기는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모든 여성들이 교육을 받아 구조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녀의 글을 읽을 독자들에게 11월7일에 발간된 제국신문의 차별적 논설을 기억할 것을 요구한다. 제국신문은 ‘별보’란에 실은 그녀의 글 뒤에 짧은 설명을 부기한다. 제국신문 측은 사실 그 시골 여성에게 설득되지는 않았다. 그들에게 첩이 천하다는 것은 바꿀 수 없는 고정된 사실이었다. 그러나 입장은 다르다 하더라도 그녀가 추구하는 발전에 대한 생각에 감명되었고, 그래서 “편지를 쓴 부인의 뜻과 같이 진보하기”를 바라며 글을 신문에 싣기로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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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진형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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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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