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자백' 소지섭, 새로움을 갈망하는 배우의 결과물
배우, 래퍼, 영화 투자자, 소속사 대표. 소지섭의 이름 앞에 붙는 수많은 이름이다.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고 변화를 꿈꾸는 그의 소신이 보이는 행보다. 그런 그가 배우 데뷔 28년 만에 스릴러 연기에 도전했다. 그의 이유 있는 변화는 제대로 통했고 스펙트럼은 더 넓어졌다.
소지섭 주연의 영화 ‘자백’(감독 윤종석)은 내연녀 김세희(나나) 살인 사건 용의자가 된 유민호(소지섭)가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승률 100%의 변호사 양신애(김윤진)를 찾는 이야기다. 스페인 영화 ‘인비저클 게스트’가 원작으로 반전이 포인트인 서스펜스 스릴러다.
“스릴러를 못해서 아쉬웠다기 보다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어요. 그동안 했던 것을 피하고 싶었거든요. 시나리오를 받을 때 윤종석 감독님에게 편지를 같이 받았어요. 감독님이 시나리오에서 부족한 것, 궁금한 부분을 편지에 써줬죠. ‘이 작품으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을까’라는 게 담겨 있었어요.”
작품은 유민호와 양신애의 치열한 대화를 통해 사건의 퍼즐이 맞춰져 가는 흐름이다. 같은 상황, 다른 감정의 신이 반복되면서 유민호의 실체가 밝혀진다. 종잡을 수 없는 유민호의 본 모습에 관객들의 몰입도가 높아진다.
“저도 헷갈리거나 힘든 부분은 감독님께 여쭤봤어요. 워낙 오래 준비도 하셨지만 원작도 있잖아요. 감독님이 고민을 많이 했고 섬세하기도 하거든요. 같은 상황을 다르게 연기해야 할 때 많이 의지했어요. 감독님도 모르겠다고 하는 부분은 다양하게 촬영했고요.”
소지섭도 윤 감독도 유민호를 악역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소지섭은 “처음부터 악역이라고 밀어붙였다면 그렇게 연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유민호는 나쁜 놈이긴 하지만 다른 형식의 나쁜 놈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무조건 악인으로 시작하는 건 아니에요. 변해가는 과정이 중요한 영화죠. 가면 갈수록 나쁜 놈이 돼잖아요. 이미 어떤 선택을 하고 시작되는 것이니 다음 선택도 그렇게 되는 것이에요. 첫 단추를 잘못 뀄으니 결과적으로 나쁜 놈이 될 수밖에 없는 거죠.”
별장이라는 한정적인 장소에서 대화를 하는 것이 작품의 대부분의 배경이다. 마치 연극 같기도 하다. 일부러 연극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했던 건 아니다. 대사도 많고 대본 리딩도 많이 했던 게 그렇게 비춰진 것 같다.
“좁은 공간에서 촬영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지, 어떻게 편하게 연기할 수 있을지 사전에 리허설을 많이 했어요. 김세희와 양신애는 표정이 중요한 역할이라 드라마 타이트 샷처럼 얼굴을 잘 쓰는 것이 기술적으로 필요했고요.”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것은 긴장감을 한껏 높인다. 원작의 매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백’은 반전의 타이밍을 엔딩에서 중반부로 바꿨다. 한국 정서에 맞지 않는 부분도 과감하게 변경했다. 원작의 큰 틀을 가져가면서 ‘자백’만의 매력을 첨가한 것이다.
“원작대로 가면 재미없었을 거예요. 범인의 정체는 반전이 아닌 것 같거든요. 계속 보다 보면 ‘아닐 수도 있겠는데?’라는 것과 ‘이건 도대체 어떻게 끌고 가려는 거지?’라는 궁금함이 더 재밌는 영화인 것 같아요. 방 탈출 게임이나 추리소설을 보는 것 같이 추리해가면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고민하면서 보면 더 재밌을 거예요.”
김윤진과의 호흡은 탁월했다. 주고받는 대사 속 고도의 심리전이 쫄깃함을 더했다. 소지섭은 “리허설할 때 (김윤진이) 대본을 전체적으로 머릿속에 넣고 계신 것에 정말 놀랐다. 감정도 컨트롤하는 게 대단했다”고 감탄했다. 이어 “대본을 안 보고 하셔서 ‘이거 어떡하지? 난 보고해야 하는데’ 싶었다. 난 보통 전날에 채워 넣는 스타일”이라며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좋은 자극을 받았다”고 말했다.
나나와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소지섭이 본 나나의 가장 큰 강점은 눈이다. 그는 “내가 조금 더 연기를 오래 했으니 어떻게 하면 좋은 느낌을 줄지 알려줬다. 그걸 빨리 캐치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더라”며 “센스가 있었다”고 극찬했다.
새로운 장르에 대한 도전, 상대역과의 차진 호흡 등 어느 것 하나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 없었다. 촬영이 즐겁고 재밌을 정도였다. 실제 상황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매력도 느꼈다. 반면 괴로운 감정도 동반됐다.
“솔직히 그것 때문에 힘들었어요. 잠만 자면 누굴 때리거나 해치고 있었거든요. 그런 긴장감이나 텐션이 현장에 나갔을 땐 도움이 됐어요. 장르적인 게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몇 개월 동안 감정에 시달리니까 잠들기 전까지 그 사람이었다가 눈 뜨면 다시 그 사람이었어요. 마지막 촬영이 끝나니까 악몽이 거짓말처럼 사라졌고요.”(웃음)
연기 스타일에 대해서는 매 작품마다 고민한다. 다르게 한다고 하지만 쉽지 않다. 불같이 감정을 호소하고 세게 지르는 연기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크게 다른 점이 보이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연기는 하면서 어려워요. 혼자만 잘해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요즘은 많이 도움을 받아요. 부족한 부분을 서로 채워나가죠. 저도 오래 하다 보니까 새로운 걸 한다고 하지만 안 돼요. 캐릭터에 대한 갈증이기도 하고 좋은 감독님을 만나서 새로운 모습을 찾아주길 바라는 것도 있어요.”
개인적인 변화가 마음의 여유까지 가져다줘 좀 더 다양한 방면에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 최근에는 tvN 예능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몸 개그를 하는 친숙한 모습도 보여주고, 별명 소간지를 활용한 아이디로 SNS 계정을 만들며 팬들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많은 분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결혼을 하고 나니 확실히 안정감이 생겼어요. 불면증도 사라지고 생활이 여유가 생겼죠. 결혼을 추천합니다.”(웃음)
“소간지라는 별명도 정말 감사하고 재밌잖아요. 그걸 활용해 보고 싶어요. 만들어주신 분들과 놀아보고 싶기도 해요.”
아직 연기적으로 하고 싶은 것도 무궁무진하다. ‘자백’을 기점으로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연기 외에는 ‘지금 하고 있는 걸 잘 하자’는 생각이다.
“겹치는 건 연달아 안 하고 싶어요. 밑도 끝도 없는 악역은 별로 안 하고 싶고요. 그런 건 제가 촬영할 때 너무 힘들 것 같아요. 캐릭터가 싫다기 보다 이유 있는 악역이 더 나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멜로를 끊을 생각은 없고요. ‘자백’이 나중에 제 필모그래피에서 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어요.”
추승현 기자 chush@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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